열흘 만에 간 주말농장에는 누가누가 자라나 대회가 한창이었다. 뽀글뽀글 꽃상추는 꽃대가 훌쩍 올라왔고 실파를 모종 했던 건 대파가 되었다. 이웃 밭에는 누렇게 노각이 된 오이가 땡볕에 누워있다. 늦게 심은 팥도 서둘러 꽃이라도 필 기세다. 키가 자랐거나 열매가 달려서 농장은 한껏 에너지로 충만했지만 그만큼 무질서해 보였다.
바랭이 풀이 밭고랑을 점령했다. 풀은 억세고 씩씩하다. 손으로는 도저히 뽑을 수가 없었다. 날카로운 호미 끝으로 캐내기도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쭈그리고 앉아 풀뿌리를 캐내느라 온 힘을 쏟았다.
힘든 일 않던 왼손이 억센 풀뿌리를 잡아당기고 뜯어내느라 나름 괴력을 발휘했다. 한 움큼씩 캐낸 풀을 빈터로 멀리 던졌다. 나중에 뽑힌 풀들을 모아보니 우리가 이렇게 많은 걸 했나 싶었다.
손아귀에 힘이 잔뜩 들어가고 팔의 근육이 긴장한다. 장갑도 안 낀 양손은 흙투성이다. 손톱 밑에는 퍼런 풀물이 들었다. 초록물은 풀이 흘린 피다. 한 시간 반 동안 벌어졌던 싸움 후에는 팔목이 시큰하고 무릎이 후끈거린다. 풀들은 목숨을 잃었고 내 관절은 부상을 당했다.
“인생은 날마다 손을 더럽히는 일이다.” 풀과 싸움을 하면서 문득 생각난 말이었다. 인도 철학자 크리슈나무르티가 쓴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라는 책에서였다. 안 뽑히려는 풀을 잡아당기며 삼십 년 전에 읽은 구절이 생각난 이유가 뭘까.
손을 더럽히는 건 애를 쓴다는 얘기다. 성실히 일하는 모습이기도 하고 정직하게 몸을 움직이는 노동을 말하기도 한다. 하루하루 일을 하느라 손을 더럽히고 깨끗하게 닦는 모습이 뿌듯하게 연상된다. 힘들이지 않고, 손을 더럽히지 않고, 어깨와 팔의 근육이 불거지지 않고 얻어지는 것이 있을까.
손이 거친 사람에겐 믿음이 간다. 얼굴은 곱지만 손이 투박한 사람도 그렇다. 손이 말을 한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얘기해 준다.
손에 힘이 있는 사람은 달리 보인다. 악수를 할 때는 안다. 진심인지 아닌지 눈치챌 수 있다. 악수를 하면서 상대방의 손을 잡지 않는 사람도 있다. 잡아주기만 바라는 손이다. 손가락만 잡는 손도 있다. 어떤 손은 따뜻하고 진실하다. 어떤 손은 새침하고 차갑다. 어떤 손은 반갑고 어떤 손은 그저 그렇다.
큰 위로가 되는 손도 있다. 직장 신입시절 일이다. 어떤 일 때문에 내가 몹시 불안했던 적이 있었다. 아직은 어린 이십 대였고 나는 온통 그 일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침 전체회의 시간에 나는 맨 뒷줄에 앉았고 앞에서 하는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책상 위에 놓였던 내 손이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옆에 앉았던 선배가 말없이 내 손을 잡아주었다. 가장 친한 선배였으니 모를 리 없다. 내 손이 마음의 불안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의 토닥임에 마음이 진정되었고 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
공감하고 위로해 준 손이었다. 손을 잡아주는 것이 백 마디 위로보다 힘이 될 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