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가든 Apr 07. 2021

어깨를 빌려준 사람

하루에 두 시간 이상 대중교통을 타고 다닌다. 퇴근하는 길은 누구나 어느 정도 지쳐있다. 옆에 앉은 분이 점점 몸이 기울어지더니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들었다. 오십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 여성은 좀 통통한 편이다. 근육이 별로 없는 내 어깨가 그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겠다.


나는 눌린 어깨를 살며시 들어 올리며  "그쪽 벽으로 기대는 게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깜짝 놀란 그녀가 "아이고, 내가 심장이 나빠서….라는 예상치 못한 대답을 한다.

"여기가 어디예요. 미금역 지났나요?"

" 다음이 미금이에요."

미금에서 내릴 생각을 안 하길래

"여기 미금인데요." 했더니 다음 역에 내린단다.

동천에서 내리다가 나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떡이며 잘 가라는 시늉을 한다.


그녀가 말할 때마다 익숙한 그 냄새가 났다. 삼겹살과 잘 어울리는 그것. 약간 비틀거리듯 전철 문을 나가는 모습이 왠지 귀여운 아줌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철에서 가끔 옆 사람이 내 앞으로 고개를 가로저을 때 불안해진다. 그 사람이 남자라면 슬며시 일어나서 다른 곳으로 피한다. 기대는 사람 매몰차게 대하기도 불편하니.


일산에서 송파로 두 시간씩 출근을 하던 때가 있었다. 어느 겨울 아침, 전철에서 졸다 잠이 들었다. 갑자기 편안한 느낌에 퍼뜩 놀라 깨보니 옆 사람 어깨에 떡하니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경황 중에 죄송하다고 두어 번 중얼거리고 정신을 차렸다. 어깨를 빌려준 사람은 옆에 앉은 남자였다. 민망해서 얼굴도 바라보지 못했다. 구두를 보고 점잖은 남자였을 거란 생각을 했다.


계면쩍어하던 내 손과 입고있던 체크무늬 재킷만 기억난다. 다행히 나는 다음 역에서 내렸다. 넓은 차창으로 아침 햇살이 스며들어 나란히 앉은 사람들의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당시 나는 서울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되는 삼십 대 워킹맘이었다. 아이는 어리고 새 업무 배우느라 지치고 통근 거리는 멀었다. 직장-어린이집-집을 매일매일 반복해서 드나드는 딱한 아줌마였다. 잠이 부족해서 싫도록 자보는 게 소원이던 때였다. 어쩌다 출장으로 몇 시간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날은 길가다 지폐라도 주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경험해본 사람은 안다. 나른한 햇살이 쏟아지는 날, 버스 유리창에 머리 부딪치며 졸 때의 꿀맛을. 졸게 하는 상황은 괴롭지만 졸고 있는 시간은 괴롭지 않다. 버스는 개별적인 졸음이라 민폐가 아니지만 전철은 몸을 붙이다시피 앉아 있으니 나만의 졸음이 아닌 거다. 누군가에게  불편감을 주던지 다행히도 어깨를 내주는 사람을 만나는 복을 얻든지.

졸고 있는 사람에게는 졸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모두가 건강하고 생기 넘치는 상황이 아닐 수 있으니 말이다.


모르는 이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었던 그 일로 누가 내게 머리를 기댈 때 짜증 내지 못한다. 든든한 어깨를 잠시 빌렸던 빚 때문일 것이다.























이전 04화 그 봄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