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척 어른의 부고를 받고 달려간 장례식장은 도시 변두리 산아래여서 들어가는 길에는 배롱나무 자주색 꽃이 피고 새소리가 들렸다.
영정사진을 바라볼 때 젊던 시절 곱상하고 선했던 고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창백한 얼굴의 상주들과 조용한 인사를 나누었다. 오랫동안 앓다 가신 어른일지라도 부모는 한분이니
허전함이나 비통함은 다를 게 없다.
엄마가 돌아가신 때에도 아카시아가 향기를 뿜고 산새 울던 오월이었다.
분주할 월요일 아침, 장례식장 앞마당을 서성이며 직장에 전화를 했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담담하려 했지만 마른 목소리는 갈라지고 여지없이 떨리고 말았다.
그래도 3일을 지키던 그곳이 산자락이라서, 좋은 계절이라서, 새소리가 낭랑해서, 유난히 꽃을 좋아했던 엄마라서 꽃향기 가득한 곳이라서 위로가 됐었다....
문상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부모님 산소에 들렀다. 작년 여름 남동생한테서 묘를 이장한다는 소식을 듣고도 가지 못했다. 종일 볕이 드는 자리라고 했다.
새로 이장한 곳은 어릴 적 참외 수박밭 원두막이 있던 자리였다. 세월은 가차없이 지나서 잔솔 몇 그루만 있던 그 자리는 곧게 자란 소나무들이 당당히 숲을 이루고 있었다. 종중의 산이라는 이유로 묘를 썼던 이전 장소보다는 새로 모신 곳이 가족 누구나 기억하는 추억의 장소라서 다행이었다.
사실 내가 이 밭을 찾아온 것이 사십여 년은 되었으니 소나무뿐 아니라 많은 것이 변했다.
밭으로 오르는 조심스럽던 비탈길은 뭉그러져 대수롭지 않게 오를만했고 참외밭은 복숭아밭이 되어 있었다.
변하지 않은 듯 보이는 것은 밭을 매고 나서 호미를 씻던 작은 개울, 물길이었다.
긴 세월이 지나도록 내 기억 속 이곳은, 노란 참외 단내 나는 뜨거운 여름방학과 고구마 캐던 가을날만이
바래지 않은 채 선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