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 대한민국 디자이너
학부생 시절 나는 어디 가서 내가 디자인을 배운다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부분에 대해 거리낌이 없었다. 소위 디자인학부생에게 씌워지는 프레임이 그 당시에 나에게는 긍정적인 쪽이든 부정적인 쪽이든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하지만 학생 시절을 마치고 사회에 나와 한 일원으로 일하게 되면서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가지고 대한민국을 살아간다는 것이 썩 유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디자이너처럼 예체능을 기반으로 하는 직업들은 그 직업 자체에서의 인식과 대우의 격차가 매우 심하다. 극소수의 성공한 예술가의 예를 가지고서는 그 직업의 1퍼센트의 현실조차 알기 어렵다. 성공했을 때의 영광과 그렇지 못한 자들의 비참함의 격차는 상상키 어렵다.
대체로 우리나라에는 그러한 인식이 있다. 미술이나 음악은 배고픈 학문이라고. 그리고 실제로 대다수의 경우에 틀리지 않는다. 현재 일반적인 디자인 에이전시에 다니는 디자이너의 평균 초봉은 2000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며 일반 회사에서조차 디자이너를 들일 때는 그에 걸맞게 연봉을 하향 조정한다. 그리고 그것은 거의 기정사실이며 응당 대한민국 디자이너에 대한 대우는 그것이 당연한 순리인 듯 만연해 있다. 우습게도 개인적으로 대면했을 때 디자이너와 함께 일하는 많은 이들은 그것을 어쩐지 미안하게 생각하며 안타까워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거기까지의 인식일 뿐이다.
왜 그럴까. 물론 수요와 공급이라는 단적인 시선에서 보았을 때 현재 디자이너는 지나치게 많이 배출되고 있다. 매년 3만 8000여 명의 디자인 전공자가 한국에서 배출되고 있고 이 수치는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다. 당신이 사회에서 어떤 모임을 하든 그 모임에서 디자이너를 찾기란 생각보다 매우 쉬울 것이다. 뻔하지만 이런 현실에서 디자이너의 가치가 높길 바라는 것은 무리수다. 그런 환경은 점점 더 디자이너들 스스로의 목을 조이게 하고 과다경쟁과 생존을 위한 동족상잔의 씁쓸하고 암담한 경과만을 목도하게 만든다.
이러한 당연하고 슬픈 사회의 흐름은 물론 커다란 이유이며 피해 갈 수 없는 문제이지만 더 큰 문제는 디자인이라는 자체 속성의 가벼움에 있다. 디자인의 목적과 존재 이유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 아니며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편한 것은 아니다. 디자인은 문학 혹은 예술이 아니며 그렇다고 상업적인 자본의 중심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지원이라는 명목 하에 좀 더 나은 시각화를 위한 수단이며 기술일 뿐. 이러한 기저에 깔려있는 속내음이 중심을 흔들리게 하고 디자인이라는 직업 구조를 명백히 하지 못하게 한다.
디자인은 사실 어렵다. 디자인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 거대한 어려움에 한 번쯤은 짓눌려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디자인은 누구나 건들 수 있고 만들 수 있으며 때때로 하찮게 여겨지며 때때로 지나치게 칭송받는다. 하루에도 수많은 이미지들이 소비되고 노출된다. 아무 의미 없이 걸리고 사라지는, 디자이너는 그런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무거움 사이를 누구보다 바삐 오가며 중심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