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by 모단걸



똑. 똑. 똑. 방금 설거지를 끝낸 나는 컵에서 무기력하게 떨어지는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8시간째 서빙과 설거지를 번갈아 하면서 이 좁은 카페의 구석에 서서 멍하니 개수대에 떨어지는 물만 쳐다보고 있어도 기운이 조금 나는 것 같았다.

앞치마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에 진동이 울렸다. 아빠였다. 12시가 넘은 시간에 아빠가 나에게 전화를 할 일이 없는데. 이상했다.

“아빠?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할아버지께서 운명하셨다. 올라오너라” 아빠의 목소리는 잠겨있었다. 할아버지께서 이렇게 갑작스럽게 돌아가시리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개강이 내일이었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서둘러 매니저에게 소식을 전하고 자취방으로 걸어갔다. 7월의 새벽 공기는 서늘했다. 콧잔등에 땀이 맺히도록 빠른 걸음으로 걸어가는 동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오늘 저녁 버스로 시골집에서 돌아온 동생은 곤히 자고 있었다. 동생을 깨웠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대. 우리 지금 가야 해.” 버스가 없는 시간이었으므로 차를 가지고 있던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미안하지만 지금 고향집까지 우리를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자다가 뛰어나온 선배는 무릎이 나온 추리닝에 모자를 눌러쓰고 새벽을 달려 우리를 고향집으로 데려다주었다. 그 누구도 할아버지가 그렇게 급작스레 떠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장례식장은 이미 준비가 되어있었다. 아빠와 삼촌들은 상복을 입고 장례식장에서 허망한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고모들도 모두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치열하게 80년을 살아온 한 남자가 세상을 떠났는데 해는 솟아났고, 아침은 밝아왔다. 우리는 머리에 상장을 꽂았고 조문객이 올 때마다 육개장과 떡, 약간의 과일을 바삐 날랐다. 눈물이 나올 틈이 없었다. 할아버지를 생각할 시간조차 없었다. 조문객들은 전국 각지에서 매 시간마다 몰려왔다. 잠깐 앉아서 쉴 여유조차 없었다. 가족을 잃은 가족들은 장례식장에서 조차 그 슬픔을 나눌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의 조문객이 없는 저녁, 나는 가방 깊이 넣어둔 담배 한 갑을 손에 쥐고 장례식장 뒤에 있는 언덕으로 향했다. 자리를 잡고 앉아 내려다보니 어둠이 내린 이 작은 산골마을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곳은 장례식장이 유일했다. 담배에 불을 붙였다. 며칠 만에 담배연기를 마시니 약간 어지러웠다. 이런 느낌이 좋았다.

“이 가시나 니 담배 피나?”

낯선 목소리에 놀라 쳐다보니 오랜 동네 친구 녀석이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네가 여기 무슨 일이야?”

“이 가시나 대학 가디만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담배나 배웠는갑제? 나도 한대 줘봐라”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어?”

“오기는 아까 왔는데 내가 뭐라고 너그 할배한테 절 하겠나 싶어 가지고 차에 앉아있다가 니가 일로 올라가는 거 봤다 아이가. 뭔 일 저지를까 봐 이래 따라 안 왔나.”

“미친놈”

“내가 니 좋아했던 거 알제? 나는 겨우 담뱃집 둘째 아들이고 니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 똑똑한 가시나 아니었나. 내가 니를 엄청시리 좋아해도 니랑 잘될 거라 생각은 안 했다. 근데 너그 할배 돌아가셨다 하니까 니가 걱정되긴 하대.”


우리 집이 지금보다 더 어려웠던 시절, 부모님은 돈이 될 만한 농사는 가리지 않고 지었는데 지금도 두 사람이 혀를 내두르는 것 중에 하나는 담배 농사였다. 담배 농사는 큰돈은 못 벌어도 나라에서 전량을 사들이기 때문에 안정적인 수입원은 되었다. 한 여름에 수확하는 담뱃잎은 끈적했고 그 열기는 대단했다. 담배밭 옆을 지나기만 해도 그 숨 막히는 열기가 느껴졌다. 그랬다. 우리 집은 담배 농사를 지었고, 그 친구네 집은 담배가게를 했었다. 할아버지 담배 심부름으로 자주 그 친구네 집에 방문했는데 말하지 않아도 그 녀석은 우리 할아버지가 피는 담배를 건네주곤 했었다. 도라지니, 청자니, 백자니 하는 예스러운 이름들이 새겨졌던, 할아버지가 즐겨 피우던 담배들을 말이다.


“나는 똑똑한 니도 좋았지만 너그 할배가 참 대단하다 싶었다. 니 기억나나? 강섭이라고. 그 새끼가 니 맨날 놀려가지고 니가 학교 안 간다고 울고 불고 했잖나. 너그 할배가 긴 짝대기 하나 들고 강섭이네 집에 가서 강섭이 이 새끼 나오라고 소리 지르고 난리 쳤던 거 니는 아나? 한 번만 더 니 놀리고 울리면 다리 몽댕이 분질러 분다고 소리 지르고 나리 쳤잖아. 그 새끼 그 이후로는 니한테 안 그랬잖아. 나는 그것도 부럽더라. 나는 할배도 없고, 우리 어매 아배는 맨날 싸우기만 하고, 우리한테는 관심도 없는데 니는 니를 지켜주는 할배가 있었잖아.”

“담배 한 대 더 필래?” 어색한 내가 그에게 담배 한 대를 더 권했다. 그는 말없이 한 개비를 더 꺼내 들고 불을 붙였다.


강섭이. 그 녀석은 나보다 두 살이 많았다. 입 주변으로 마른버짐이 꽃처럼 피어있었고, 항상 콧물이 주렁주렁 달려있어 그 콧물을 닦느라 소매가 반들반들했던 아이. 말을 할 때면 혀로 아랫입술에 침을 바르고 시작하던 아이. 그래서 그 녀석의 턱에는 침독이 올라 크레파스로 빨간색을 칠한 것 마냥 항상 붉으스름했던 아이. 스무 살에 나를 낳은 엄마는 그 산골동네 아이들이 감히 입지 못하는 고급 아동복을 사서 입혔다. 알록달록한 원피스에 하얀 타이즈, 하늘색 에나멜 구두를 신겨서 학교에 보냈었다. 무섭도록 가난했지만 그녀는 나에게 가난이 묻지 않은 것들로 치장해주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강섭이는 나만 보면 아이스께끼라고 소리치며 내 치마를 들추었고, 양갈래로 땋은 머리칼을 잡아당겼다. 하지 말라고 소리치면 소리 지른다고 놀려댔고 악에 받친 내가 울면 운다고 놀려댔다. 아침 등굣길마다 나는 강섭이를 만나지 않기를 바랐지만 그 녀석은 뒤쳐진 나를 기다리거나, 일찍 학교로 출발한 나를 빠른 걸음으로 따라잡아 놀려댔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야 이 씨팔 새끼야. 하지 마!” 나는 처음으로 강섭이에게 욕을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날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울었다. 엄마한테 등짝을 맞았지만 나는 절대로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결국 그다음 날 아침, 엄마가 파리채를 들고 나를 깨우자 나는 죽으러 가는 사람처럼 눈물이 그렁한 채로 대문을 나섰다. 강섭이는 그날부터 나를 놀리지 않았다. 공부를 곧잘 했던 내가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자 속이 상한 엄마가 그 집에 가서 이야기를 한 것이라고 지금까지 생각해왔었다.


“그거 알아? 우리 할아버지는 항상 무뚝뚝하고 소리 잘 지르셨잖아. 나는 그게 참 싫었거든. 할아버지가 무섭기도 했고. 내가 일곱 살 때였나, 삼촌들이랑 냇가에 고기 잡으러 간 적이 있었거든. 한 밤중에 말이야. 한 밤중에 고기를 잡으려면 횃불이 필요하거든. 내가 그 횃불을 들고 갔었어. 긴 장대에 헝겊을 둘둘 말고 철사로 고정을 해서 휘발유를 적셔서 불을 붙이면 바람이 불어도 불이 안 꺼지거든. 삼촌들이랑 사촌들이랑 다들 반두에 양동이까지 들고 냇가에 갔는데 전날 내린 비로 물이 내 허리까지 오는 거야. 무서웠어. 그런데 무섭다고 징징대면 집으로 돌려보낼까 봐 나는 횃불을 들고 삼촌 뒤를 졸졸 따라다녔지. 그렇게 몇 시간을 물고기를 잡고 집에 왔는데 너무 피곤해서 씻지도 않고 기절하듯이 잠이 든 거야. 다음날 아침에 난리가 났지. 모두들 내 얼굴을 보고 깜디라고, 시꺼먼스라고 놀리고 다들 웃고 난리가 났지. 영문을 몰랐던 나는 거울을 보고서야 가족들이 웃은 이유를 알았어. 어제 내가 들었던 횃불 때문에 내 얼굴에 검댕이 잔뜩 묻었던 거지. 꼭 검정칠을 공들여서 한 것처럼. 나는 울었지. 너무 분한 나머지 주저앉아서 다리를 굴리면서 막 울어댔지. 그러니까 이젠 또 운다고 놀리는 거야. 나는 더 울어댔고. 그런데 할아버지가 나를 안고 수돗가로 데리고 가서 정성스레 비누칠을 해서 내 얼굴을 씻겨주시는 거야. 기름 검댕이라 잘 씻기지도 않았는데 여러 번 비누칠을 해가면서 말이야. 눈물 콧물까지도 다 씻겨주셨어. 그러자 그전까지 다들 배를 잡고 웃던 가족들이 웃음을 멈추었지. 다들 놀랐던 거야. 할아버지는 누구에게도 단 한 번도 그렇게 다정한 적이 없었거든. 물론 나는 그 이후에도 할아버지가 무섭긴 했어.”


언덕 아래 장례식장은 더 이상의 조문객이 없음에도 여전히 밝게 불을 밝혀두고 있었다. 7월의 마지막 여름밤, 공기는 청량했고 별빛은 거침없이 나에게로 와 닿았다. 이런 여름밤이면 마당 곳곳에 모기향을 피워두고 마당에 돗자리를 깔고 둘러앉아 수박을 먹었다. 빨간 고무 다라이에 오후 내내 넣어둔 수박은 시원했고 달았다. 아이스크림조차 귀한 산골동네에서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여름 간식이었기에 그런 날이면 나와 동생들이 수박씨 멀리 뱉기 놀이를 하며 밤하늘에 닿도록 소리를 지르고 웃고 떠들어댔다. 할머니가 우리에게 조용히 하라고 할 때면 할아버지는 나지막이 ‘거 좀 놀게 놔둬”라고 할머니를 말렸지. 그랬었지. 나의 할아버지는.


“우리 막내가 태어나기 전에, 실은 남동생이 하나 있었어. 그 아인 태어나서 몇 달을 살지 못하고 죽었지. 딸 셋만 있던 집에 아들이 태어났으니 할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좋으셨겠어. 그런데 그 아이는 태어나서 줄곧 인큐베이터에만 있었어. 남동생이 태어났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나는 그 아이 얼굴을 보지 못했지. 결국 병원에서 가망이 없다는 선고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때가 딱 지금쯤이었나 봐. 담뱃잎 수확을 해서 건조기에 넣기 위한 작업을 하던 날이었어. 숨 막히게 더운 오후였는데 파란색 방수천으로 뜨거운 햇볕을 막아두고 모두들 담뱃잎 작업에 집중하고 있을 때였지. 남동생이 너무 궁금한 거야. 집에 와서도 그 아이를 보지 못하게 했거든. 그 아이는 안방에만 있었고 우리들은 안방에 들어가는 게 금지되었었어. 다들 나에게 관심이 없는 틈을 타서 손가락에 침을 발라 안방 창호지를 뚫었어. 그 작은 틈으로 남동생을 보고 있는데 그 아이는 웃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그냥 누워만 있더라고. 너무 신기해서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보고 있는데 할머니가 내 등짝을 때린 거야. 이 망할 년이 그 방에 찬바람 들어가면 어쩔라고 이 지랄하고 있느냐고. 그땐 바람 한점도 없는, 푹푹 찌는 한 여름이었는데 말이야. 나는 또 울었지.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서 웅크리고 누워 울고 있으니 할아버지가 들어오셨어. ‘할배, 나도 동생 보고 싶단 말이다. 근데 왜 다들 못 보게 하노!’하면서 서럽게 울었어. 그러니까 할아버지가 그러시더라. ‘곧 헤어질 거면 굳이 보지 않고 참는 게 더 좋을 때가 있다. 가는 운명이 그거다. 니 운명이랑은 다르다. 다른 운명은 만나지 않아도 좋다’ 아마 그 이후였을꺼야. 동생이 죽고 난 이후, 할아버지는 우리 집 족보에 내 이름을 올리셨어. 족보에는 딸 이름은 올리지 않는데 그 고지식한 양반이 나를 집안 족보에 이름을 올린 거야. 족보를 받은 그날 할아버지가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한자로 적힌 내 이름을 찾아주며 ‘여봐라. 여 니 이름이 있다. 니는 시집을 가서 그 집 족보에 이름을 올려도 맹 우리 집안사람이다. 알긋나’ 하셨어. 나는 그때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어. 할머니는 매일같이 가시내들이 기가 세서 남동생이 안 생긴다고 실눈으로 우리를 노려보는 통에 씩씩한 나도 눈치가 보였는데 족보에 내 이름을 올렸다는 할아버지 이야기에 내가 계집아이여도 뭐 어때? 하는 마음 말이야. 까짓것 사내아이처럼 크면 되잖아하는 그런 마음 말이야.”


“좋네. 니는 할배하고 그런 추억도 있고 말이다. 너그 할배는 너들을 많이 아꼈으니 계속해서 너그 지켜줄 거다. 걱정마라”

“미친놈. 웃기고 있네” 피식 웃음이 났다. 이렇게나 뻔한 위로에 웃음이 나다니. 할아버지는 내일이면 땅 속에 묻힐 텐데 지금 나는 이렇게 웃어도 되는 것일까. 80년을 끈질기게 살아온 한 사람이 더 이상 세상에 없다는 데 이렇게 쉽게 웃어도 되는 것일까. 나를 세상에 내어준 내 아비의 아비가 죽었는데 눈물이 나지 않는 나는 괜찮은 걸까. 내뿜은 담배 연기 사이로 별빛이 사라졌다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너그 언니 어디갔노? 좀 찾아봐라” 장례식장 가까이 걸어가자 나를 찾는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 좀 쉬그러 놔둬라” 이어서 아빠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렸다. 더 이상 할아버지를 만날 수 없지만 할아버지는 아빠를 통해 이어지고 있었다. 아빠의 목소리, 걸음걸이, 한숨소리, 사투리에 할아버지가 있었다. 담배 냄새를 없애기 위해 칫솔과 치약을 챙겨 화장실에서 양치를 하는데 뒤늦게 눈물이 떨어졌다. 세면대에 떨어지는 내 눈물이 수돗물에 섞여 배수구로 흘러가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이제야 실감이 났다. 나보다 57년을 먼저 세상에 나온 한 남자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눈물이 계속해서 떨어졌다. 뚝. 뚝. 뚝.





덧붙임) 제가 두번째로 도전한 소설입니다.

소설은 어렵지만 계속해서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조금씩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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