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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May 18. 2020

내 앞엔 넘어갈 수 없는 선이 있다

아득바득 평범해지고 싶어 노력했다

작가  『김미아』


나누다

대상들 간의 선을 그어 서로의 영역을 구분하는 행위. 다만 원치 않을 때도 선이 그어져 다른 영역으로 넘어갈 수 없을 때도 있다.


'나누다'라는 동사를 선정했을 때, 랄라는 남들과 나눠먹는 그 나눔을 떠올리고, 나는 정품과 불량을 나누듯 분류되는 나눔을 떠올렸다. 나는 내게 선을 긋는 사람들이 싫다. 무리에 끼고 싶고, 다 같이 어울려 놀고 싶다. 친구와 함께 평범하게 수다 떠는 행위가 누군가에겐 일상이지만 내겐 치열한 노력 끝에 얻어진 산물이다. 그만큼 나는 어렸을 적부터 불량으로 '나눠져' 왔다. 내가 나누지 않았다. 그냥 어느 순간 내 앞엔 선이 있었다.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내 앞에 선이 그어진 걸 알게 됐다. 이유는 단순했다. 무리 중 나만 핸드폰이 없었다. 무리는 나 포함 총 세 명이었고, 3이란 숫자만큼 불안정한 것도 없다. 그들이 아침마다 전 날 저녁 문자로 주고받은 이야기를 나눌 때 나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했다. 처음 몇 번은 "무슨 일인데?"하고 물었지만, 곧 묻지 않게 되었다. 내가 물으면 "별 거 아냐"하고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들 사이엔 유대가 있었다.


그들을 친구라고 불러도 될지 모르겠다. 만약 연락이 닿아 그들에게 '우린 친구였어?'라고 물어본다면, 아마 난처한 표정을 짓지 않을까. 그 흔한 카톡 프사도 확인하지 못한다. 결혼하면 소식을 알 수 있을지 모르겠다. 동창들에게 건너 건너 듣게 되겠지. 그 정도 사이를 나는 친구라 부를 수 없다. 그들은 단지 그들이었고, 나는 나였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자 선은 조금 더 명확해졌다. 그땐 핸드폰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앞에 이미 새겨진 선을 지울 수 없었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무리, 드라마 정주행 하는 무리, 공부하는 무리, 다이어트하는 무리, 웃긴 무리...... 수많은 무리 중에서 나는 교집합을 찾지 못했다. 그렇게 이 무리, 저 무리 돌아다니다가 무난한 무리와 함께 밥을 먹게 됐다. 그들과 적당히 웃고 떠들고, 함께 회전초밥처럼 운동장을 돌며 이야기를 나누고, 밥도 먹고, 이동 수업 시간엔 함께 움직였다. 난 그게, 무리에 들어간 건 줄 알았다.


근데 너 왜 우리랑 다녀?

2개월 정도를 같이 다녔을 무렵, 무리의 한 아이가 말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를 빙 둘러싼 채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랑 밥 먹자고 부탁도 안 해놓고 왜 같이 다녀? 우린 허락한 적 없어"라고 말했다. 그들에게 허락을 받아야 했던 일이었다. 내 앞에 그어진 선을 넘어가 그들의 영역 안에 들어가기 위해선 허락이 필요했다. 그런데 내가 무작정 난입을 한 것이다. 그들은 모두의 앞에서 "우리 이제 미아랑 안 다녀. 처음부터 쟤가 따라다닌 거야"라고 말하며 선을 명확하게 그었다.


그 날 이후, 나는 수없이 고민했다. 왜 2개월 후였나, 처음부터 말해줄 것이지, 하며 그들을 원망하기도 했다. 앞으로 혼자 어떻게 지내지, 하며 걱정도 했다. 그러나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나는 왜 속하지 못하나'하는 자책이었다. 도대체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사람들과 친해지고 그들의 영역을 공유하는지 알 수 없었다. 모두가 하는 그 행위가 나에겐 왜 그리 어려운지도.


"미아는...... 특이하지"

나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면 항상 돌아오는 대답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문집에서 반장이 학우들 한 명 한 명에게 짧은 한 마디를 쓰는 란이 있었는데 우리 반 반장은 내게 "미아는 참 특이한 친구였어"라고 적었다. 그게 전부였다. 도대체 어떤 말을 적어야 할지 몰랐을 반장에게 지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을 전한다.(물론 진심은 아니다. 안 미안해)


특이하다는 말을 정말 싫어했다. '넌 우리와 달라'라며 선을 벅벅 긋는 것 같아서 싫다. '미아는 둥글둥글하지, 무난하지'란 말을 듣고 싶어 정말 부단히 노력했다. 좋아하는 취향 따위 버리고 사회가 좋아하는 기준에 맞춰 열심히 꾸몄고 남들이 다 보는 건 따라서 봤다. 정 재미가 없으면 요약본이라도 보고 갔다. 남들은 이 상황에서 어떻게 말하는지 열심히 듣고 따라 하려 했다. 그러니 한 박자가 항상 늦었다.


예를 들어, 모두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는 세계에서 나 혼자 "방가"이렇게 말하는 게 상식인 줄 살았다고 가정해 보자. 다들 이상하게 쳐다보니, 나도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싶어 졌다. 그래서 남들이 어떤 상황에서 "안녕하세요"를 하는지, 언제 말하는지를 열심히 보고 배웠다. 그러니 남들 인사가 끝난 다음 나 혼자 "안녕하세요"를 말하고 있었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남들처럼 사는 게 숨이 찼다.


사는 게 벅찰 무렵, 이러다 죽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남들 따라 하느라 감정도, 생각도 사라지고 있었고 더 이상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무리에 어찌어찌 속하게 돼도 항상 나는 관찰자, 객식구였다. 내가 아닌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들 역시 나를 믿을 리 없었다.

고등학교 때, 그땐 사람보다 동물이 편했다
"미아는 속을 알 수 없어서 무서워"

이 말을 대학 동기에게 들었을 때,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이젠 특이한 애가 아닌, 속을 알 수 없는 무서운 애가 되어 있었다. 당연할 게, 나도 내 속을 몰랐다. 남들 따라 하는 데 익숙해져 내 생각은 저 멀리 처박아 놨는데 알리가.


그래서 이젠 반대로 조금씩 나를 드러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너무 오랜 시간 감정 표현을 안 해 이젠 감정을 표출하는 게 어려워졌지만 먼지 훅 털어내고 꺼내려한다. 특이하단 얘긴 다시 듣기 시작했다. 여전히 내 앞에 선을 긋는 사람들도 있다. 예전이라면 전신 무장을 하고 그들의 세계에 뛰어들었겠지만 이젠 무장해제하고 다른 곳으로 떠난다. 함께 웃고 떠들다가도 집에 가선 인기 없는 영화를 본다.


여전히 내 앞엔 넘을 수 없는 선이 있다. 평범해지고, 무리에 끼고 싶은 욕구도 있다. 그러나 무리와 나는 같지 않음을 이젠 안다. 더 이상 자책하고 싶지 않다. 내 잘못이라고, 내가 특이하고 이상해서 받아들여지지 못한 거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내 앞에 선을 그을 때, 최소한 내가 나한테 만큼은 선을 긋지 말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p.s. 강제로 나눠졌던 분들이 이 글을 읽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많이 헤맸지만 이젠 괜찮아요. 한 번 소리 내서 말해보세요,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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