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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May 25. 2020

Too much passion is a poison

언젠가 열정이 내 몸을 불태울지라도

*이전에 발행했던 내용을 수정해 다시 올리는 글입니다.


작가 『김랄라』


넘보다 보여지는 것을 넘보면 불행이 되지만 보여지지 않는 것을 넘보면 기적이 된다.



한때 힙합씬에서 ‘리스펙트’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진 적 있다. 리스펙트(respect)는 상대에게 존경심을 느꼈을 때나 그 의미를 축소해서 대단한 인물이나 실력을 마주했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누군가가 멋진 랩과 춤, 노래를 선보였을 때 상대를 추켜세우는 의미로 주로 쓰이며 ‘님좀짱’, ‘킹왕짱’과 의미가 같다.


당시 나는 이 단어를 남들보다 신중하게 썼던 것 같다. 단순히 멋지고 쿨하다는 의미뿐만 아니라 진심으로 존경심이 느껴졌을 때 엄지를 들어 “리스펙트!”를 외쳤다. 귀하디 귀한 나의 리스펙트를 받은 사람들은 누구인가. 도시에서 자급자족 생활을 하시던 외할머니, 사회에서 만난 생활 체육인C, 결혼과 함께 유튜브 크리에이터 소식을 전해온 동창H가 있었고 모두가 알만한 사람 중에는 배구선수 김연경, 예능인 송은이 그리고 그 중심엔 유노윤호가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쉬지 않고 일을 벌인다는 것. 자신의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거나 이미 최고로 불리는 사람도 있다. 또 이들은 아주 작은 일에도 열정을 다한다.


물론 미디어에서 보여지는 모습이 모두 진실 일리 없다. 좋은 부분은 과장하거나 안 좋은 부분은 생략하여 만들어낸 이미지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그들에겐 브라운관을 뚫고 전해지는 무언가가 있다. 내가 가장 리스펙트하는 동방신기의 유노윤호의 경우 불꽃을 삼킨 듯한 눈빛, 근거 있는 자신감에서 나오는 말투와 제스처, 상대를 존중하는 모먼트를 가졌다. 괜히 ‘열정 만수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방송으로 이런 모습들까지 꾸며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높은 온도의 열정으로 무장된 사람들, 내가 그들의 열정에 리스펙트를 전했던 이유는 나 역시 그들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의 눈치 안 보고 마음껏 삶의 정열을 발산하며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부류 말이다. 80이 넘는 나이에 도시에서 작은 텃밭을 가꾸고 국제정세에 관심을 두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체조와 계단 오르기로 체력을 단련하시던 나의 외할머니와 커리어는 물론 인연과 일상을 소중히 할 줄 아는 사회 선배C, 자신의 사랑에 확신이 있었던 동창H 역시 옆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열정이 전이되는 듯했다. 그들의 허리는 항상 꼿꼿했으며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고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여유가 있었다.


그들에게서 보이는 빛나는 열정이 내게도 있을까. 그때부터 나는 그들의 열정을 따라 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단 무작정 하기’였다. 일을 많이 할수록,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활동할수록, 넓은 인간관계를 만들수록 사람들에게 나의 열정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은가.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없던 일도 만들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속한 집단의 수는 늘어갔고 어느 날은 한 번에 3가지 일을 도맡아 했으며 그 와중에 돈을 버는 일도 빼놓지 않고 이어갔다. 처음엔 무척 설렜다. 새로운 일을 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좁디좁았던 나의 세계를 넓혀가는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가 내게 “랄라 정말 열정 넘치는구나!”라는 말을 해주면 더욱 신이 났다. 보십시오! 제게도 뜨거운 열정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얼마 못 가 나의 열정은 급하게 마무리된다. 논어에는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나온다. 욕심부려 이것저것 일을 벌여놓고 뭐 하나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당시 활동했던 인턴, 에디터, 봉사활동 모두 1년을 못 가 그만두었으니 변명의 여지도 없다. 눈치챈 사람도 있겠지만 이 글 역시 급하게 마무리된다.


유노윤호 그는, 21세기 살아있는 철학자가 아닐까. (사진 JTBC 예능 ‘아는형님’ 캡처)


급하게 베낀 열정은 티가 나는 법이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급급했던 과거의 열정은 지금의 내게 하나의 깨달음을 남겼다. 투 머치 패션 이즈 어 포이즌. 지나친 열정은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 과거의 나는 남들의 열정을 따라 하기 바빴다. 열심히만 하면 되고 인정받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공허함만 남았다. ‘나 자신, 뭐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이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없는 내가 남아있었다.    


지금의 내가 리스펙트하는 사람들은 과거와 다름이 없다. 하지만 이제는 열정이 아닌 다른 게 보인다. 그들의 열정을 만든 꾸준함이 보인다. 내가 베껴야 했던 것은 그들의 뒷면에 있는 성실함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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