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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Jun 22. 2020

전날 밤부터 내일의 식사를 생각합니다

먹어서 행복한 사람의 인생 마지막 식사는?

작가 『김랄라』


먹다
과 마음에 영양을 보충하는 행위. 화학적 보충과 정신 안정이 함께 이루어진다.


불알친구와 만나는 날이면 학창 시절 과거 이야기부터 시작해 겪지도 못할 먼 미래 세상까지 수다의 주제가 된다. 그날도 역시 무의미한 주제를 가지고 둘이서 심각하게 토론을 하고 있었다. TV에 나온 초밥 맛집을 찾아간 날이었고 대화는 초밥을 먹으며 또 다른 음식 이야기로 이어졌다. 주제는 미래의 식사.


나: “미래에는 알약 하나만 먹어도 한 끼 식사를 대체할 수 있대.”

S: “정말 끔찍해. 디스토피아가 따로 없겠어!”


나와 나의 불알친구는 고등학생 시절 자칭 ‘부타팸’이었다. 부타(ぶた)는 일본어로 돼지라는 뜻이며, 우린 이름 그대로 정말 잘 그리고 많이 먹었다. 석식을 먹기 위해 3년 내내 함께 야자를 할 정도였으니. 그런 우리들에게 캡슐 한 알만으로 끝낼 수 있는 미래의 식사는 절망 그 자체였다.


나: “알약이 나오기 전에 세상의 모든 음식을 먹으러 떠나자.”

S: “그래.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행복했던 기억들을 잊지 말자.”


부타팸에서 ‘타‘를 맡았던 나의 불알친구 S는 소위 ‘막입’ 부류다. 입맛이 전혀 까다롭지 않아 아무거나 잘 먹는다. 반찬 하나 남기는 법도 없다. 반면, 부타팸에서 ‘부’를 맡았던 나는 그에 비해 입맛이 조금 까다롭다. 좋아하는 것만 찾아서 먹고 싫어하는 반찬이 급식에 나오면 눈길도 주지 않았다. 나와 S의 가장 큰 공통점은 음식을 아주 좋아한다는 점이고, 상한 음식을 가려낼 줄 아느냐 그렇지 못하냐로 구별할 수 있다.     


나: “이거 냄새가 좀 이상해. 맛이 간 것 같지 않아?”

S: (이미 다 먹음.)

최근 한 달간 먹은 음식들. 잘은 못하지만 요리를 시도한 흔적들이 보인다. 다양하게 먹는 걸 좋아한다.


내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나는 어렸을 때부터 식탐이 많았다. 엄마는 우스갯소리로 “네가 돌 잔칫날에 실을 잡은 건 실을 국수라고 생각해서 덥석 잡았을 거야”라고 말한다. 지금 나의 다부진 몸을 보고 있자니 합리적 의심일만하다. 어느 날은 아기 때 모습을 담은 앨범에서 식탁 위에 올라가 손으로 쌀밥을 퍼먹고 있는 모습이나 얼굴만 한 핫도그를 입에 쑤셔 넣고 있는 내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도 있다. 과연 떡잎부터 다른 프로 먹방인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삼시 세끼를 다 챙겨 먹기 위해 휴일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기본이고, 어떤 장소를 기억할 때 근처 식당으로 길을 외운다.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향토 음식부터 찾으며, 2n년간 쌓아온 맛집 데이터 베이스로 친구들의 취향에 맞는 가게를 추천해 줄 수도 있다. 나에게 음식은 단순히 먹는 행위 그 이상이다.


이런 나는 S와의 식사가 즐거울 수밖에 없다. 우리의 만남은 나의 제안으로 성사되는 경우가 많은데, 내가 어떤 지역의 맛집을 찾으면 S에게 제안하고 동행한다. S는 백이면 백 맛있게 먹는다. 가끔 나의 추천으로 찾아간 식당에 주인이 바뀌어 맛이 변했다든가 서비스가 엉망이라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식당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러면 S는 이런 나의 마음을 알아채고는 더 맛있게 먹어준다.


나: “여기 맛이 너무 변했네. 전에는 맛있었는데… … .”

S: “왜? 맛있기만 한데. 안 먹을 거면 이리 줘.”


음식으로 대동단결한 지 어느덧 9년. 나와 S는 음식에 얽힌 추억이 많다. 한 번은 이런 날도 있었다. 함께 말레이시아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그곳에서 나와 S는 망고를 아주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감동해 봉지 가득 망고를 사서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게 눈 감추듯 먹어버렸다. 다음에 일어날 불행을 미리 알았더라면 앉은자리에서 그 많은 망고를 다 먹어버리지는 않았을텐데. 여행 마지막 날 나와 S는 극심한 배탈에 시달렸다. 나는 탑승수속 직전까지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렸고, S는 한 번도 겪어보지 않은 배앓이에 비행기 탑승을 거부하는 행동까지 보였다.


S: “나 도저히 안 되겠어. 그냥 날 두고 가… … . ”

: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집에는 가야지!


벌써 3년도 더 된 이야기지만 그때 말레이시아를 함께 갔던 친구들 사이에선 ‘망고사건’이라고 불리며 주기적으로 회자되고 있다. 이 밖에도 나와 S는 음식에 관한 에피소드만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 있다. 지금은 이 기억들이 가끔 찾아오는 우울감을 날릴 수 있는 좋은 무기가 됐다.


“인간은 추억을 먹고사는 존재”라는 말이 있다. 혼자 밥을 먹는 날이 부쩍 많아진 요즘 나는 S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좋은 추억이야 말로 즐거운 현재를 살아가게 하는 거름이 되니 말이다. 알약 하나로 식사가 해결된다면 분명 경제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회상할 추억은 줄어들지 않을까. 친구들과 함께 급식을 먹으며 행복했던 시간들, 엄마가 해준 집밥의 그리움, 요리를 하는 즐거움까지 알약 하나에 모두 압축될 수는 없을 테니까.              


오랜만에 S와 만나 저녁을 함께 먹었다. 이번에도 우리의 식사는 먹는 이야기로 시작해 먹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S: “죽기 전에 한 가지 음식만 먹을 수 있다면 무엇을 먹겠어?”

: “비비큐 황금올리브 반반. 아니다. 역시 떡볶이가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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