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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와 랄라 Jun 22. 2020

편식쟁이는 사회생활이 어려워요

못 먹는 게 많은 사람의 투정

작가 『김미아』


먹다 영양소를 채우는 것 이상의 행위. 사회적인 범주 안에 들어가지 못하면 가장 많은 참견을 들을 수 있다.



어렸을 때부터 고기나 햄, 생선류 등 살아있는 것들을 죽여서 만든 음식들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급식에 오늘 삼겹살이 나온다고 하면 혼자 나가서 커피를 사 먹었다. 배가 부르게 소이라떼로. 특식이 나올 땐 대부분 고기였기 때문에 밥하고 김치만 받을 때도 종종 있었다. 깐깐하게 철칙을 지키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고기 씹는 식감이 너무 역했다. 그들이 도축될 때 모습이 먹으면서도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물컹, 하고 살을 씹는 느낌. 시체를 태워서 만들었다는 거부감. 그러니까 나는 채식주의자도 아니면서 고기를 피하는 사람인 셈이었다. 이렇게 설명하면 힘드니까 그냥 락토 오보 채식주의자(계란, 유제품까지 먹는 채식주의자)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했지만 사실 아니다. 난 그냥, 편식쟁이였을 뿐이다. 그리고 세상은 고기를 싫어하는 편식쟁이에게 굉장히 가혹하다.


"네가 아직 고기 맛을 몰라서 그래"

"한 번만 먹어보면 안 돼? 안 먹어보고 어떻게 알아"

"아, 미아는 고기 못 먹으니까....... 뭐 먹지?"

"무슨 재미로 살아?"


고기를 못 먹는다고 말하면 다들 위처럼 반응했다. 신기한 눈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 때론 불쾌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있었다. 괜히 유난 떤다며 너 때문에 먹을 게 없다고 핀잔을 주던 팀장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식성이 죄인처럼 느껴졌다. 나는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구나. 그래서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억지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처음 먹었을 땐 목구멍이 울컥하고 치밀었다. 도저히 삼킬 수 없는 걸 넘기는 기분이었다. 고작 회식 하나에 내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기분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쿡 찌르면 살아 움직일 것 같은 텍스쳐, 불 위에서 기름을 뚝뚝 흘리는 모습,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 공간. 도저히 좋아할 수가 없었다. 고기를 먹으라고 하면 이젠 자연스럽게 먹을 수 있지만 굳이 찾아 먹지 않는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이젠 꼭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단백질이 너무 부족해서 위험할 정도라고. 도저히 고기를 주기적으로 먹을 엄두는 안 나서 결국 단백질 셰이크를 샀다. 알약 한 번에 식사가 충족되는 미래가 얼른 도래했으면 좋겠다. 매번 영양가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먹으면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되는 유토피아가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먹을 수 있는 게 한정적이다 보니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면 전부 먹었다. 맛있다는 개념도 사실 대학 와서 알았다. 음식에 대한 열정이 전혀 없는 사람에게 사회생활은 너무 가혹하다.

최근 일주일 간 식사다. 기본적으로 빵과 계란, 우유를 먹고 무더운 날에는 냉면(봉지라면)을 끓여 먹었다. 모두 다른 날이다. 친구는 이 사진을 보더니 '지겹지 않냐'고 물었는데, 아무리 똑같은 음식을 매일 먹더라도 나는 그다지 지겨움을 못 느낀다. 식사는 어렸을 적 내게는 고통의 시간이었고, 어른이 된 지금은 숙제와도 같은 존재다. 최대한 균형 맞춰서 먹으려고는 한다. 그러니 얼른 알약 식사가 나오기를 바란다 그래서 더 이상 식사 가지고 골머리를 썩지 않길. 그리고 제발, '고기 안 좋아해요'라고 하면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는 날이 오지 않길! 모두가 알약을 먹는 시대에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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