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저것 모으고 기운 모양새
작가 『김미아』
내가 가진 것들은 항상 초라해 보였다. 남이 갖고 있는 건 항상 아름다워 보였다. 저 애의 쌍꺼풀이 갖고 싶고, 그 애의 마른 몸이 갖고 싶고, 그 사람의 유머러스함을 갖고 싶고, 그 친구의 해사한 성격을 갖고 싶었다. 내게 없는 걸 욕망한 게 아닌, 남이 가진 걸 욕망했다.
언제부터 남을 부러워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아주 어렸을 적부터 "걔가 참 부럽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유치원에 다닐 때, 웃는 게 귀여운 친구가 있었다. 말랑말랑한 성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귤 맛있게 먹는 법 알려줄까? 흰 걸 다 떼어내면 돼!' 하면서 자그마한 손으로 일일이 까주던 친구였다. 마법소녀 놀이를 하는 것에 부끄러움이 없었고 솔직하게 자기를 표현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그런 사랑스러운 친구였다. 나 역시 유치원생이었으면서, 나는 그 친구가 사랑스럽다고 느꼈다.
나 때는 꼬마 마법사 레미 놀이가 아이들 사이에서 한창 유행했는데, 내 친구들은 유난히 보라를 좋아했다. 신비롭고 예쁜 아이돌 포지션인 보라. 항상 보라 역을 누가 할지를 두고 쟁탈전이 벌어졌는데, 나는 항상 '나는 아무나 해도 좋아'라고 말하며 끼지 않았다. 결국 나는 매번 메이를 맡았다. 안경 쓰고, 조용한 캐릭터. 나중엔 내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미아는 메이 해~'라며 자리를 지정해줬다. 사실은 나도 보라를 하고 싶었다. 중심에 서고 싶었고, 예쁜 애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때도 남들 눈을 신경 쓰느라 내가 원하는 걸 말하지 못했다.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치열한 노력이 필요하단 걸 알지만 무서워서 끼지 못했다. 그래서 나를 메이의 위치에 뒀다. 아무도 찾지 않는, 조용한, 욕망하지 않는 메이.(메이 팬 분들께는 죄송합니다. 지금은 메이를 좋아해요.)
그 애는 항상 당당하게 보라를 했다. 때론 가위바위보에서 져서 사랑이를 하거나, 레미를 할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나는 보라를 하고 싶었다'며 하고 싶은 바를 분명히 말했다. 바라는 걸 속으로 꽁꽁 숨기며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 나와 스스로 쟁취하기 위해 매번 경쟁에 참여하는 그 애. 그 애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그 애가 했던 행동들을 자꾸 따라 하고 싶었다. 귤을 하나하나 까주던 다정함, 찌푸리고 웃는 표정, 작은 덧니까지.
<치즈 인 더 트랩>으로 생각하면 나는 손민수에 가까운 사람 아니었을까. 주인공 홍설의 쿨함, 세련됨을 닮고 싶어서 그의 오리지널리티를 넘보는 주제넘은 캐릭터. '모두에게 사랑받는 그 애처럼 하면 나도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헛된 믿음으로 오히려 제 무덤을 파는 캐릭터. 그의 행동을 동정하거나 두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해가 간다. 나도 사랑받고 싶어서 레퍼런스 모으듯이 누군가를 따라 했으니까.
유치원 땐 그 애의 사랑스러움을 따라 했고, 초등학교 땐 그림 잘 그리고 쿨한 친구를 따라 미술학원에 갔고 중학교 땐 소설 쓰는 친구를 따라 소설을 썼고 고등학교 땐 영화감독이 꿈인 친구를 따라 영화 각본을 썼다. 대학교 땐 랄라의 성격을 따라 하려 했다.(랄라 본인도 몰랐던 것 같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타고난 성격이 너무 강해서 아무도 내가 그들을 따라 하는 줄 몰랐다. '어떻게 이렇게 성격이 다른데 같이 다녀?'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까.
랄라를 만났을 때 '맑게 웃는다, 나도 맑게 웃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처럼 말하고 행동하려고 했지만 잘 안됐다. 그처럼 긍정적인 말을 하려고 노력하다가도 정신을 잠깐 놓으면 어느샌가 부정적인 내가 튀어나왔다. 그때마다 '타고나길 우울해! 지 팔자 지가 꼬을 팔자야!'라며 혀를 끌끌 차던 스님이 떠올랐다. 스님, 그때 절 뒤에 몰래 침을 뱉고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영혼의 모양을 볼 수 있다면 나는 조각보처럼 되어 있지 않을까. 이 사람, 저 사람을 이어 붙인 모양새를 띠고 있을 것이다. 한때는 그게 너무 슬프고 비참해서 '나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야. 나만의 아이덴티티는 아무것도 없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정말 우연히 조각보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게 됐는데 장인이 조각보도 하나의 예술이고 오리지널리티가 있는 작품이라고 말해주었다. 이것저것 이어 붙인 거라도, 색 배열과 위치 선정, 크기 등 하나라도 어긋나면 완전히 다른 조각보가 된다고.
비유를 썩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나 역시 조각보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와 닮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이어 붙여 내가 되었지만 결국 이 배열은 지금의 '김미아'밖에 없을 테니까. 언젠가는 이 조각보가 완성되어 김미아가 완성되었을 때, 나는 고유한 내가 되어 있을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