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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정의

회복이란 단어 앞에서 멈칫할 때

by Mia 이미아

회복이라는 단어 앞에서 멈칫할 때


나는 여전히 ‘회복’이라는 단어 앞에서 주저한다. 그 단어에는 기대와 판단이 함께 따라붙는다. 이제 괜찮은 거냐고, 많이 나아진 거냐고 묻는 질문들. 회복했다고 말하는 순간, 다시 아프다고 하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온다.


사람들은 ‘회복’을 직선처럼 생각한다. 아팠다가 나아지고, 결국 건강해지는 과정. 그러나 내 몸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좋아졌다가 무너지고, 멀쩡해 보였다가 다시 아프다. 그 반복 속에서 나는 회복이 직선이 아니라, 무정형으로 흐르는 시간이라는 것을 배웠다.



회복 대신 조정이라는 이름


그래서 나는 회복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조정’이라는 단어를 쓴다. 증상을 없애는 게 아니라, 증상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 완치가 아니라 관리. 좋아졌다는 착각을 경계하며, 무너지지 않도록 내 상태를 조율하는 일이다.


예전에는 통증이 사라지는 날이 오면 남들처럼 살 수 있으리라 믿었다. ‘보통의 사람’이 되는 것이 회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날은 오지 않았다. 결국 나는 방향을 바꾸었다. 건강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몸으로 걸어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앉을 수 있는 시간이 3시간, 어떤 날은 1시간. 그마저도 점점 줄어들어 컨디션은 예측할 수 없었고, 나는 그 안에서 일과 휴식, 식사와 대화를 분배했다.




변화 없는 고통과 외면


회복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었다. 그러나 병원은 그 과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변화 없는 고통 앞에서 병원의 관심은 멀어지고, 의료 시스템은 ‘나아지는 증거’를 원했다. 차도가 없다는 이유로, 치료의 여지가 없다는 말로, 환자는 쉽게 배제된다. 심지어 1년 전 MRI로 확인된 병변이 오늘은 ‘그럴 리가 없다’는 말로 부정되기도 했다.


진단은 흔들리고, 설명은 달라진다. 아프다는 사실은 그대로인데, 원하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존재 자체가 의심받는다. 그래서 나는 더 조심스럽게 내 상태를 기록하고, 일상을 설계하기 시작했다. 가능할 때만 조금 더, 무리하지 않을 만큼만. 내 몸이 허락하는 선에서 에너지를 쓰고, 남겨두는 법을 익혀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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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을 묻는 질문들


“요즘은 좀 어때요?”라는 질문을 들으면 여전히 망설인다. 회복된 것처럼 보여야 할까, 아니면 여전히 힘들다고 말해도 될까. 사람들은 변화를 기대하고,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내 몸은 단선적이지 않다. 한 주가 좋아도 다음 주엔 무너질 수 있다. 그 불안정 속에서 나는 내 상태를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않게 되었다.


나 자신조차 매일 몸의 리듬을 읽어야 하는데, 타인에게 내 컨디션을 설명하는 일은 더 어렵다. 말하는 순간, 오해와 기대가 덧붙는다. 그래서 나는 선택했다. 증명을 포기하고, 조용히 내 일상을 조율하는 쪽을.


멈추는 신호를 정하고, 외출 일정을 제한하고, 사람을 만나는 횟수를 조율한다. 어떤 날은 할 수 있는 만큼, 어떤 날은 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 그것이 내가 해온 회복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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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의 또 다른 정의


누군가에게 회복은 더 이상 약을 먹지 않는 상태일 수도 있다. 누군가에겐 진단명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 회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회복은 내 몸을 이해하고 조정하는 과정 그 자체다.


나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살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유지하고 지켜내는 방법을 조금씩 익혀가고 있다. 때로는 더디고, 때로는 휘청거리지만, 멈추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회복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없는 날들 속에서도, 나는 살아가고 있고, 나름의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다. 완벽하지 않은 하루 속에서도 버텨내는 나를 인정하며, 아프지만 좌절에 무너지지 않고, 흔들리지만 멈추지 않는 삶을 이어간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일, 그것도 분명 회복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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