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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작은 젤리 곰

얻는 게 생긴다는 것은 잃을게 생기는 것이다.

by Jane

아직도 마음 정리는 안되고, 할머니 집에서 보낸 사일 동안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나는 조용히 우리 집에서 밥만 먹고, 말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 그러다 우울증 올까 봐 엄마가 할머니 집에서 산후조리를 하라고 하는 것인가

집에 돌아와서 안 보던 드라마들을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멜로가 체질. 뭐야 뭔데 재밌아.

아가 네가 없어도 나의 삶은 돌아가고 지나가는구나. 오늘도 그저 시간이 지나가는구나.

이모가 전화와 서는 말했다. 너의 잘못이 아니니 너무 울지 말고, 아파하지 말라고.

그래 놓고는 이모가 운다. 뭐야. 눈물 나게.






생애 처음 산부인과 방문 후, 2주 뒤 오빠와 함께 병원을 찾았다.


"아, 오늘은 저번에 봐주신 선생님이 휴진이셔서, 다른 선생님이 봐주실 거예요. 괜찮으시죠, 엄마?"

"네, 뭐 어쩔 수 없죠."

"네, 그럼 혈압이랑 몸무게 먼저 재볼게요."


아, 오빠가 살 좀 찌라고 했는데 겨우 2주 만에 살이 찔 리가 있나. 몸무게는 그대로다.

엄마가 되려면 살도 쪄야 하는데 말이지.


역시나 오늘도 오래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드디어 진료순서가 되었다.


"엄마, 어디 불편하신 곳은 없으셨죠?"

"네"

"그럼 저쪽에 누워볼게요."


또다시, 경건한 마음으로 의식을 치르듯 얌전히 운동화를 벗어두고 침대에 얌전한 고양이처럼 누었다.


"아기는 잘 크고 있네요. 아직도 배는 많이 당기고 아프죠? 자궁이 늘어나는 과정이니까 너무 걱정은 마세요.

입덧은 하시나요?"

"아니요, 울렁거리거나 그렇지는 않은데. 소화가 잘 안 되는 것도 입덧인가요?"

"네, 그것도 입덧이에요."

"아.... 네.. 그것 말고는 없어요."

"엄마, 이쪽에 보면 피고임이 조금 있어요. 혹시 출혈 있으시면 병원으로 바로 오세요."

"그게 뭔가요?"

"원인은 따로 없고, 스트레스받거나 장시간 서서 있거나 몸에 무리가 가면 있을 수 있는 현상이에요. 아랫배가 많이 당기거나, 출혈 보이시면 바로 병원 방문하셔야 해요. 이제 심장소리 들려드릴게요."


쿵쾅쿵쾅은 아니고, 콩콩콩콩 아니, 저 콩알만 한 아기한테서 나는 심장소리가 이렇게 클 수가 있나?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놀라고, 뒤에 있던 남편의 표정에 웃음이 났다.

웃으려면 웃고, 놀라려면 놀라기만 하던지. 저 복잡 미묘한 표정은 뭐야.

남자들은 결혼 때도 그렇고, 아기가 생겨도 그렇고, 고민할게 참 많은 표정이다.


나는 자꾸 웃음이 났다. 저 작은 게 내 뱃속에 있다니. 살아있다니. 나 진짜 엄마가 되었구나.

나의 작은 아가가 심장이 뛰고, 움직일 수 있게 자라는구나 하며.

아기 심장소리보다 긴장되고 신나는 나의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괜스레 웃음이 나는 걸 진정시키며, 다시 경건하게 신발을 신었다.


"일단 피고임이 보이니, 무리한 일정은 피하시고 2주 뒤에 다시 볼게요. 엄마"


병원은 일부러 엄마라는 말을 많이 하나. 생각하며 감사의 인사를 하고 진료실에서 나왔다.


"오빠, 어때? 신기하지? 근데 초음파를 봐도 뭐가 뭔진 잘 모르겠어."

"응, 나도"


아 우리는 아직 멀었구나. 하고 생각하다가 먼 세상 이야기였던 게 맞는 거지.

이제 우리는 부모가 되었고, 콩콩콩 뛰는 자그마한 아가에게 콩알이란 태명을 지어줬다.

너무 작아서 소중해서. 우리의 콩알이.


예정일은 2020년, 내년 3월이라고 했다. 내가 12월생이라 내심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그냥 그런 생각 있잖아, 괜히 3월생은 더 크고 잘 자라고, 12월생은 엄마들이 미안해한다는 거.

겨울에 태어나서 미안하고, 산모도 추워서 힘들고, 아가도 작아서 미안해하는 말도 안 되는 속설 같은 마음.


"우리 이제 둘이 놀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네? 게임도 열심히 하고, 일도 열심히 해야겠다. 그렇지?"

"응, 우리 여행도 가고 그러자. 아가 나오기 전에."




조금 자란 아가를 엄마들은 보통 그거 알지. 하리보. 곰젤리라고 비유하고는 한다.

괜히 내 아가는 더 귀엽고 그랬어.

귀여운 나의 아기곰. 콩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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