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판도라의 상자에 들어 있었을까
요즘 자주 떠오르는 말이 있다.
“희망고문은 이제 그만하자.”
그 말은 단호하게 들렸지만, 사실은 지쳐서 꺼낸 말이었다.
성실했으니까, 노력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런 기대가 늘 나를 더 아프게 했던 것 같다.
좋은 건 누구에게나 좋고, 나쁜 건 누구에게나 나쁘다.
하지만 나의 성실은 자주 오해받았다.
노력의 결과는 드러나기도 전에 부정당했고,
때로는 이유 없는 불편함과 거리 두기로 돌아왔다.
‘성실하니 괜찮을 거야’라는 말은, 나를 위로하지 못했다.
도리어 그 기대가 무너질 때마다 더 큰 고통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마음속으로 선언했다.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겠다고.
희망이 나를 살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갉아먹는 고문 같다고.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판도라의 상자가 떠올랐다.
수많은 재앙이 세상에 퍼진 뒤,
그 상자 안에 희망만 남았다는 이야기.
희망은 마지막 선물일까, 아니면 마지막 재앙일까.
어쩌면 희망은 바람일 뿐이지 가능성은 아닐지 모른다.
희망은 증거도, 계산도, 구조도 없다.
그저 그렇게 되기를 바라기만 하는 감정.
마약처럼, 만취처럼,
현실을 잠시 잊게는 하지만, 문제를 해결해주진 않는다.
나는 이제 그런 희망을 경계한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쉽게 흔들리고,
눈빛 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렇게 또 기대했다가 또 상처받고—
그 반복을 끊고 싶다.
이건 체념이 아니라, 방어다.
아프지 않기 위한.
살아남기 위한.
그래서 나는 이제 딸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세상은 사실(fact)로 이루어져 있고,
감정은 종종 그것을 흐린다.
희망은 우리를 움직이게도 하지만,
때로는 멈춰야 할 때조차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니 바란다, 너는
희망을 신앙처럼 품기보다,
가능성을 단단하게 깎아낼 줄 아는 사람이 되기를.
기대 대신 설계를,
바람 대신 구조를.
노력은 네 편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노력은 네가 너를 덜 미워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다.
그게, 내가 오늘까지 배운 전부다.
그래도, 그걸 믿고 내일도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