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가 참석했던 모임이 끝난 후, K 언니는 날마다 카톡을 보냈다. J는 S에게 야릇한 호감을 보내고 어느덧 K 언니에게 옮겨가서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아마도 K 언니가 S는 남자친구가 있음을 넌지시 알린 것 같지만.
S는 아직도 이상한 호기심을 거두지 못했으나 K언니와 J의 만남을 지지했다. K언니 역시도 적토마의 질주하며 달려오는 매력에 흠뻑 빠진 듯 하니. 늘 자신만만하고 자기애가 가득하며 인기가 많은 적토마는 K 언니에게 상스러운(?) 제안을 했다.
주말 하루 데이트를 하고 전화로 썸을 타던 중에 적토마는 속삭였다.
“아.. 지금 너를 안고 싶어. 내가 갈까?”
“전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는 안 자요.”
“그건 앞으로 우리 사이가 더 발전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잖아.”
“그래서 전 거절하고 싶어요. 전 사랑하는 남자와만 해요”
K언니는 J의 대담한 구애에 촉에서 오는 의문을 가졌다. 적토마는 진지하게 사귀어 보자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먼저 성관계를 해보자고 한 것이다. 그 이후에는 친해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황당무계한 주장을 하며. 보통의 여자라면 질색팔색을 할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던지다니 참. 비상한 머리를 가진 적토마가 잠시 이성을 잃었었던가 혹은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가.
S는 K 언니의 몇 주 동안 계속되는 지지부진한 연애사를 들으며 좀 지쳐갔다. 사람마다 연애를 시작하는 모습에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K는 신중하게 오래도록 지켜보며 이 사람이 진정 교제를 시작할 만한 사람인지 요모조모 판단해 보고 최종 결정을 한다.
S는 그보다는 훨씬 빠르게 사랑에 성큼 다가간다. 직관적(N)인 데다가 인식형(P)이기 때문에 연애를 시작할 때조차도 선택이 빠르다.
사람의 성향에 관한 것이므로 어느 쪽이 옳다 그르다 평가할 수는 없다. 다만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중립을 지향할 뿐.
하지만 지천명이 넘은 자들에게 연애란 그리 녹록하지가 않다. S의 경험상으로 밴드 모임에 나가서 마음에 들어오는 상대를 만날 가능성이란 거의 열에 하나 정도다. 남자나 여자나 비슷한 상황이니 그 10%에 들어가는 인물들에게만 큐피드의 화살이 일제히 날아간다.
그러하니 마음에 드는 상대를 두고 오랫동안 맛보고 씹고 즐길 시간이란 한정적이다. 그전에 이미 질주본능이 있는 누군가가 홱 낚아채서 입 속에 넣고 음미하고 있을 테니.
S는 날마다 계속되는 K언니의 연애 상담에 몇 번이나 그냥 만나보라 조언을 했지만 K언니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유지하며 도도한 밀당을 고수했다. 그 연애 대상자에 J만 있는 게 아니고 또 다른 인물 T도 있으므로.
뭐 아직 본격적인 연애가 시작되기 전에는 큐피드의 화살은 여기저기 사방팔방으로 옮겨 가지 않는가? S는 T가 쓰는 게시물이나 댓글도 유심히 읽어 내려갔다. 이만하면 직업을 연애 상담 쪽으로 틀어도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T도 연구하여 K의 온갖 걱정과 상념에 팁을 줬다.
대망의 빼빼로 데이, K는 T에게 빼빼로를 키프트로 수줍게 보냈다. 그야말로 고백을 했는데 T는 다음에 커피를 사겠다는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아, 미끼를 던져서 물었다면 지체하지 말고 홱 낚아채어야 하지 않는가? K는 여전히 미끼를 들었다 놨다 하며 고기의 모호한 반응을 살폈다. 고기는 미끼를 툭 한번 건드렸다가 물러섰다가 다시 돌아와서 툭. K 역시도 미끼를 가지고 줄까 말까 장난을 한다. S라면 미끼를 문 고기를 뜰채로 바로 건져 올려 회를 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고기를 먹어보고 취향에 맞지 않으면 버리면 되는 거 아닐까?
S는 남의 좌충우돌 연애사에도 꽤 관심이 많은 여자이다. 타인의 사랑 이야기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도 드물기 때문에. 아무튼 이 스산한 가을에서 겨울 사이에 모두에게 든든한 핫팩 같은 짝이 생기를 기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