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가을이 갔다. 곁에 붙잡아 놓고 싶어도 가을은 간다. W도 그렇게 짧은 열흘을 불태우다가 다시 싱가포르로 갔다. 가을이 간 후 남은 것은 붉게 물든 단풍 혹은 스러져 가는 검은 점이 생긴 잎들이다. 계절에 따라 시간이 흐르고 삶도 무심하게 흘러간다.
S는 산책을 나섰다. 토요일 저녁 수업이 있다. 공부방에서 블로그 포스팅을 마치고 단풍이 떨어지는 길을 걸었다. 가을의 풍경은 눈이 시리게 타오른다. 우리의 삶도 어느덧 가을쯤에 와 있는지도. 그러나 어느 새 뚝뚝 눈물을 흘린다.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니 제 자리를 내어줄 수 밖에.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죽어간다. 다만 아름답게 죽어갈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
온갖 고운 빛깔을 뿜어내던 가을도 늙어간다. 인간도 마찬가지. 제아무리 빛나는 절세 미녀도 서서히 죽어갈 수 밖에는. 젊음의 끝자락을 간신히 붙들고 결국에는 색이 바래 검은 검이 생기고 바싹 말라 뚝 떨어진다.
S는 모두가 사랑하길 소망한다. 그들은 이 외로운 세상에 혼자 던져진 이후로 끝없이 호소하고 있다. 나의 존재를 처절하게, 외로운 나를 알아달라 외친다. 밤마다 울부짖는 그들에게 이 세상 단 한 명의 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 시지프스의 몸부림은 보상을 받아야 마땅하리.
짝을 찾는다면 인간의 외로움이 완전히 치유될 것인가? 미안하지만 그건 아니다. 그럴지라도 차가운 겨울바람을 조금은 막아주고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맨몸으로 부둥켜 안는 건 서로의 외로움의 덩어리를 안고 있는지도.
외로움과 외로움이 만나면 그 가혹한 현실이 사라질까? 그렇지 않다. 잠시 외로움을 속이는 것뿐이다.
‘자...내가 있어. 그러니 넌 외롭지 않아.’ 하지만 얼마 후 떨어져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24시간 붙어 있을 수도 없고 억지로 하나로 붙여 놓는다면 외로움은 자기의 길로 가겠다고 서로의 살을 떼어내 피를 낼 것이다.
뭐지? 넌 외롭다고 하지 않았니? 하지만 난 외롭지만 외롭고 싶어. 외로움이 극치에 이르는 순간에만 잠시 외로움을 덜고 싶어. 이기적이지 않아. 이게 정상이라고.
왜냐? 이 세상에 홀로 떨어졌을 때처럼 여기를 떠날 때도 훌쩍 떠날 것이거든. 천국에 가면 비슷한 영혼들을 만날 수도 있지만 지구의 사람과는 이별이야. 사랑하는 사람들과도. 혼자 가야 해. 그러니 외로운 존재를 받아들이렴. 우리는 모두 혼자니까. 조금은 위로가 되니? 인간의 외로움은 숙명. 이렇게 정리하고 받아들이면 되잖아.
S는 꿋꿋하게 살아가는 듯 보인다. 그야말로 사주 속의 무신처럼 살아간다. 당당하고 늘 역마살을 달고 움직이며 분주하다. 외로움이 다 무에냐.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고 누누이 공언하기도 한다.
하지만 W가 떠나간 삶은 지극히 외로웠다. 평일은 그렇다 해도 주말에라도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을 찾아 나설 수 밖에 없다.
밴드의 사람들도 저마다의 일상이나 의견이나 뉴스 등을 올린다. 그걸 하나하나 읽어보는 것도 외로움의 대체품을 찾는 행위 중 하나일 것. 그들도 역시 외롭다 고백하는 날들이 많다.
짝을 찾다 찾다 지쳐서 ‘나를 떨이떨이 하겠다’는 사람조차 있었다. 다음 날 슬쩍 게시글을 지워버렸지만 다른 외로운 영혼들도 그 글을 읽었을 것이다.
‘에구구. 이건 너무 직접적이고 격이 떨어진다. 이렇게 외로움을 만방에 소문내면 그걸 이용하려는 심리가 발동할 수도 있는데.’
S는 K 언니와도 이 일화를 이야기하며 안쓰러운 마음을 드러냈지만 인간이 외롭고 그래서 짝을 찾아다닌다는 건 엄연한 사실이다. 일부 짝을 찾은 이는 헤어지고자 안달을 하고 짝이 없는 이는 내 곁에 둘 한 사람을 쫒아 다니는 아이러니한 현실. 다들 외롭다 한결같이 고백하면서 또 고만고만한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것도 참 희안하다.
나와 잘 어울릴만하고도 매력적인 상대를 만나는 게 그리도 어려운 걸까? 세상에서는 사랑을 이루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인가?
누구도 누구를 비난해서는 안 되지 싶다. S는 외로움을 말하는 이들을 막고 은근히 일침을 가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이 땅에 떨어진 외로운 사람들임을 인정하고 보듬어 볼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