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났는 데 한쪽 눈이 무겁게 느껴졌다. 무슨 일인가? 가까스로 주말 아침의 늦잠으로 졸린 눈을 떠서 화장실 거울로 들여다보니 한쪽 눈이 붓고 안구 앞의 투명한 막이 눈밖으로 흘러내릴 듯 부풀어올라있다.
그래도 따뜻한 하루가 되시길...
아..난감하다. 이건 또 무슨 일인가?
뱃속은 여전히 묵직하고 불온한 꾸르럭거리는 배탈의 기운이 남아있다. 외식도 거의 하지 않고 음식도조심하여 먹었는 데도 요즈음 배탈은 자주 일어난다. 올 겨울에는 꼭 대장내시경을 받아야지. 진행되는 노화의 한 현상인지 아니면 혹시 심각한 질병의 시초인지 밝혀내고 볼일이다. 이제 반평생 정도 살아왔는 데 혹시 이른 죽음의 그림자가 닥치면 안되지.부쩍 건강에 이상 신호가 오고 서서히 몸에 노화가 오는 것은 문득 내 마음 속의 아직도 철부지 어린아이를 등골이 서늘하게 놀라게 한다.
아~ 더 이상 청춘이 아니지.자주 입에 올리지는 않지만 불혹이라는 나이를 넘긴 것이다.
그러나 세상 일에 아직도 미혹되는 일이 많으니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세상 일에 더 이상 미혹되지 않는다.'는 불혹이라는 것은 사람의 수명이 오십 정도에 가까웠던 때에 생겨난 단어가 아닐까 싶다. 요즘에는 장수하였다 하면 보통 팔십은 넘겨야 하니 아직도 청춘이라 세상 일에 초연하기에는 정신수양이 덜 된 것일까?
베란다에 놓아 둔 화분 하나가 눈에 띈다. 다른 집에 놀러가서 보았을 때는 푸르른 잎을 늘어뜨리며 풍성하게 자라나던데 우리집에 있는 녀석은 왠지 누렇게 말라죽은 잎들을 가득 매달고 줄기도 초라하여 몇가닥 되지 않는다.
아~귀찮은 마음 한구석에서 그냥 겨우내 저리 놓아두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영하의 날씨에 모두 얼어죽는 다면 그대로 들어서 내다버리면 되지 않을까?
꽃을 사랑하지만 이상하게도 내가 애정에 겨워 사온 화분들은 하나 둘 시들시들 말라죽어갔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은 화분도 사들이지 않을 계획이다. 생명을 키운다는 것은 끊임없는 정성과 관심을 쏟아부어야 하는 일인데 내 몸 하나를 건사하기도 힘이 드는 인간이니 일찌감치 포기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도 매몰차게 외면하지 못하여 화분을 들어 물건들로 어지럽게 가득찬 거실 한구석에 들여놓았다. 쓸데없이 늘어진 가지들이 뒤엉켜 있어서 풀어보려하였으나 여의치가 않고 대충 풀어서 내버려두었다. 보기 흉하게 말라붙은 누런 잎들을 잡히는 데로 떼어서 쓰레기통에 버리며 한숨이 나온다. 어찌 이리 살아가는 데는 해야 할 자질구레한 일들이 많은 것일까?
심지어 인간은 왜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먹도록 만들어 졌는지 모를 일이다. 하루 한끼만 먹도록 되어있다면 귀찮음을 무릅쓰고 일어나 오늘 내 몸을 유지시킬 밥을 해야 할 필요도 훨씬 줄어들 텐데.
창밖은 안개로 완전히 뿌옇게 가려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늘은외출하고 싶지 않다. 겨울이란 이렇듯 인간의 몸을 한없이 움츠려들고 게으르게 만드는 놈인 것이다.
그러나 평화로운 나의 집~오늘의 시간 또한 온전히 나의 것이다. 지인과의 약속도 나를 찾는 전화도 내가 돌보아야 할 사람도 없다. 완전한 자유의 24시간을 부여받았다.
자~ 지금도 이 소중한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있다. 약간의 배탈과 서서히 가라앉는 소소한 눈병으로 구시렁 대기에는 너무도행복한 삶이다.
이제 무엇으로 이 시간을 채워볼까? 다시 하루의 자유를 부여 받은 자로써 슬며시 웃음이 새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