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육체적인 것이 얼마나 중요할까?

중요함

by 사각사각

오늘 쓰려고 하는 이야기는 19금이다. 하지만 최대한 표현은 우회적으로 하려고 한다.

이것은 내가 겪은 기묘한 일들에 대한 반추이기도 하고 그 당시 상황에 대한 분석이며 내 자신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일 수도 있다. 그냥 찌질하게 계속 끝난 관계에 집착하며 매달리고 있는 걸지도.


그렇다. 최근에 만난 그 분은 난데없이 자신은 "욕망이 없다."라고 하셨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부터 무언가 꺼림칙하고 의아하기는 했다. 나에게 이성적으로 관심을 표하고 같이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고 그리고 욕망이 없다?


이건 앞 뒤가 들어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우리가 미성년자도 아니고 중년이 넘어가는 나이에. 헐, 나에게 원하는 것은 좀 다를 수 있다? 아마 남자에게 욕망이 없다는 말을 듣는 건 내 평생 처음 이었을 것이다. 반대라면 모를까.


그러면 나에게 원하는 것은 여자 친구 역할인가? 단순한 지인인가? 여행을 같이 가는 여자사람 친구인가?

참 묘한 문장이어서 줄곤 의아하기는 하였다. 아직 연애를 시작하지도 않았는 데 욕망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민망하였다.


농담쯤으로 여기고 살짝 웃으며 "저도 욕망이 없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다. 아마 이 분은 내 말이 진심인가 아니면 자기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인가 궁금했을 것이다. 슬프지만 후자이다.

그리고 또 한번 이 '욕망 없음'에 대해서 들었을 때 대체 그 말을 왜 계속 반복하는 지 재차 물었다. 그 때 그는 나이도 좀 있고.. 하면서 얼버무렸다.


그렇다면 남녀 사이에 육체적인 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연인일 수 있는가? 결혼을 해보고 다른 기혼자와 대화를 해보면 보통 결혼 생활 십 년 이상이 지나가게 되면 실제 육체적인 관계가 없는 경우가 많다. 이런 저런 바쁜 일상의 일들로 지치고 처음 만났을 때의 로맨틱한 감정이 상실되고 정신 없이 바쁜 육아로 관심사가 밀리게 되고 등등의 이유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가벼운 농담처럼 아내가 남편 손을 잡으려하면 “가족끼리 왜 이래?” 라고 한다는 건 사실 현실 생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함께 한 시간이 길어지고 불타던 사랑의 감정이 식고 평소에 손도 잡지 않으면 그것 조차 어색한 느낌이 들게 된다.


고로 가끔 손을 잡고 산책만 해도 로맨틱한 감정이 살아날 수도 있다. 결혼을 하면 연인에서 서서히 가족 같은 관계가 되어가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이 상태가 건강한 부부 관계는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무덤덤한 가족 같은 관계가 이어지면 문득 마음에 싸늘한 바람이 한 줄기 불며 허망해지는 때가 있다. 내 인생에 더 이상 사랑이 없는 것인가? 사랑 없이는 살 수가 없다는 주의인데. 새삼스럽게도 '십 년을 넘게 결혼 생활을 하는 저 남자와 대체 무슨 관계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게다가 아이까지 없으면 더더구나 이 냉냉한 관계에 회의가 생긴다. 그야말로 험난한 세상에서 같은 편이 되어 싸우는 동지이자 전우?


이 시점에서 새로운 사랑을 찾으며 바람이 나는 사람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 실천에 옮기느냐 마느냐의 문제랄까. (오해마시라. 바람을 장려하는 건 절대로 아니고 그 감정 상태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그 방면에서는 보수적인 편!)


부부들이 종종 하는 ‘아이 때문에 산다.’ 라는 표현도 참 서글프지 않은가? 법적으로 부부이고 아이의 부모이긴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남, 여 관계인데 정체성을 포기하는 것인가. 아이가 부부 사이에 끊을 수 없는 끈 같은 것이기는 하나 무엇보다 부부 둘 사이에 사랑으로 연결된 돈독한 관계가 있어야 할텐데.


어찌 되었든 부부 사이든 연인 사이든 적절한 성 관계는 있어야 서로의 사랑이 다시금 확인 되는 것이다.


이 만남이 깨어진 이후로 새삼 ‘욕망 없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과연 이제 시작이 되려는 연인 사이에 성 관계가 없는 게 가능한 일일까? 이건 아무리 재고해도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정신적인 사랑만으로 만족한다는 플라토닉 러브는 지적이고 멋있게 들릴 수는 있지만 아쉽게도 완전한 사랑의 모습은 아니라고 하더라.


결국 '욕망 없음'을 반복하여 말하는 것은 내가 그 부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것일까? 사실 이 문제는 내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었고 나중에 다른 이가 일깨워 주었다.


그 말은 과거의 연인과 어떤 노력을 해도 힘들었다는 이야기다. 아하, 그제서야 욕망 없음이 욕망의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뜻인 걸 알아차렸다.


역시 난 바보인가? 이 주제가 주부들 사이에서는 자주 거론되는 주제이고 실제 부부 사이에 욕망 없는 분들이 주변에 꽤 있다고 한다. 그리고 한편에서 욕망이 없어지면 다시 욕망을 불태우려는 쪽에서는 매번 거절을 당하는 입장이라 매우 모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 이 두 가지 입장차는 남녀의 역할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남과 여가 상황에 따라 다르다.


어떤 유부남들이 말하는 "아내가 밤에 샤워를 하는 물소리가 들리면 무섭다." 이런 웃기고도 슬픈 이야기. 아내편에서도 거절을 당하면서 민망함과 서운함이 커지는 순간이다. 서운함 정도가 아나라 성적인 문제는 엄연히 법적인 이혼 사유 중 하나!


아무튼 연인 사이에 ‘욕망 없음’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단어이다. 없는 욕망도 끌어 올리고 가능한 노력을 다해 보아야지(?)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만남을 시작하기도 전에 미리 경고를 한 것인지 아직도 완전히 이해가 되진 않지만 이젠 이 관계가 정리되었으므로 이해를 할 필요도 없다.


플라토닉한 교감은 있었으나 연애를 시작도 하지 않은지라 이 부분이 미진하여 더 논해 보고 합의점을 찾아보고 싶지만 혼자 찾을 수는 없으니 여기까지.


결론은 원만한 연인 혹은 부부 사이를 위해서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로맨틱한 순간들이 필요하고 처음에 느꼈던 사랑의 마음을 다시 되새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날마다 현실에 치여 바쁘게 살아가지만 누구나 마음속에 간질간질한 사랑의 감정이 깨어나는 때가 있을 것이다.

마치 봄이 아스라이 꿈처럼 아련하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지금처럼.

봄은 우리를 감싸고 온 몸으로 전해지고 마치 겨울 동안 죽어 있는 것 같은 만물이 다시 살아나는 걸 느끼게 해준다.

천천히 다가오는 오는 따스한 봄의 온기, 위로, 역동하는 생명의 시작.

봄과 함께 사랑이 우리에게 오길 기대하면서. 욕망을 되살려야!

봄은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