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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May 06. 2021

한낮의 산책

좋구나~좋아

오전 수업을 마치고 다음 수업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거의 세 시간 삼십분 정도. 그렇다면 여유롭게 산책을 하다가 점심을 먹으면 되겠군. 수업을 마치고 바로 옆에 있는 대학교의 캠퍼스로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야트막한 산 하나를 깍아서 만든 듯 경사가 꽤 있는 길이다. '코로나로 인한 외부인 금지'라고 안내문이 되어 있으나 학부형 중 한 명 정도로 여겨주면 안될까?


드넓은 캠퍼스에 아직 철쭉이 남아서 피어 오르고 있다. 작은 하얀 돌 사이 사이에 붉게 피어나는 철쭉이 대비되어 더 예쁘게 보인다. 선명한 초록과 빨강과 하양의 대비. 어느 건물 앞에는 작은 정원이 가꾸어져 있었다. 조그만 나무 의자 앞에 자리잡은 색색의 꽃이 눈길을 끌어서 잠시 앉아서 감상을 했다. 거의 언덕의 꼭대기에 다다르니 눈앞에 하늘과 그 아래 아파트 촌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와~수고롭게 산을 오르는 것과 같은 보람이 있다. 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탁 트인 풍경.

정상에서의 캠퍼스 전경

언젠가 대학을 막 졸업했을 무렵에는 가끔씩 학교에 방문하면 대학 시절이 눈물겹도록 그리워지곤 했다. 낭만과 여유와 마음대로 수업을 땡땡이를 치는 시간이 넘치던 시절. 초년의 사회 생활이 힘들기만 했는지 돈 버는 어려움 없이 편안하게 학교를 다니던 때로 타임 머신을 타고 돌아가고만 싶었다. 하지만 이제와 캠퍼스에 들어와 보니 이십 대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픈 마음은 추호도 없다. 이미 살아온 시간이 길기도 길고 다시 그 험난하고 쓸데 없이 에너지가 넘치고 마음이 끊임없이 흔들리는 시절을 반복하고 싶지가 않다. 한층 여유롭고 느긋하고 소박해진 마음으로 남은 삶이나 잘 살아볼 수 밖에는.

꽃 한송이에도 끌리는 나이 ^^

꽃을 찍는 사람은 나이가 든 것이라는 데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예전에는 매일 셀카를 많이 찍었었는데 최근 몇 년간은 내 얼굴을 찍어서 사진으로 마주하고 싶지가 않다. 예전처럼 공을 들여 어떤 각도로 찍어도 마음에 안 들기 때문이다. 카메라의 성능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해도 숨길 수 없는 나이가 드러나는 얼굴이 문제라는. 그래서 세월을 실감하게 되고 마음에 안 차는 내 얼굴 대신 어제 막 피어난 파릇파릇하고 어여쁜 꽃을 찍는 걸수도 있다. 이제야 한사코 함께 사진 찍기를 거부하던 오십 대 분들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니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해심이 깊어지고 하나 하나 인생을 새삼스럽게 배워간다.  아~사십 대도 초, 중, 후반이 다르고 해마다 착실하게 늙어가는구나. (ㅋ)

넌 예쁘다!

하지만 살아있는 한 어쩔 수 없는 나이의 압박이 느껴진대아직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느 분에게 육십이 넘어도 열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 건강 태가 매우 좋은 날도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지. 그 태가 오래 가지는 않으나 잠깐은 불을 켠 듯 반짝반짝 빛이 날 때도 있는 것이다. 살아가는 것은 나이듦 또한 거부하지 자연스럽게 끌어 안고 가야하는 가혹한 것이다. 다만 오늘이 내 남아 있는 생에 가장 젊은 날이라는 건 잊지 말자. 나이에 대해 푸념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는 연인처럼 냉정하게 유수 같이 흐르고 있다.


그리하여 육십 대와 사십 대의 각자의 사정으로 돌아온 싱글녀들은 세상 해맑게 깔깔거리고 웃으며 앞으로의 새로운 연애를 기원해주었다. 영어를 배우셔서 외국인 남자친구를 사귀시라는 철딱서니 없지만 알 수 없는 희망에 가득 농담을 하면서. 뭐 마음만 먹는다면야 얼마든 가능한 일이다. 어디서부터 오는 자신감인지는 모르겠으나 살아 있는 동안에는 무언가는 사랑하면서 넓고도 황망한 세상에서 외로울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처연하게 우리를 비껴 지나가는 봄의 끝자락을 잡고 모두에게 사랑이 찾아오기를. (ㅎ)

피어오르라!
일단 잘 챙겨드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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