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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May 16. 2021

일요일의 떡국 한 그릇

먹는 것에 유독 약하다

수업을 하러 갔다. 일요일 아침에 수업을 하러 간다는 건 진정 힘든 일이다. 내 아무리 평일 날 노는 듯 일하는 듯 다 하여도 일요일은 휴일이니 아무 것도 안하고 마냥 쉬고 싶은 것이다. 일주일간의 피로가 어느 새 쌓였는지 아침에 눈을 떠도 일어나지 못하고 피부 같은 이불 속에서 한없이 뒤척이며 꾸물거리게 된다.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외출할 준비를 하는데 대략 한 시간 이상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지는지 알람을 맞춰 놓지 않아도 아침 여섯시 경 일찍부터 눈이 떠졌다.


다시 눈을 감고 한 시간 또 눈을 살짝 떠서 시간을 확인하고 한 시간 .마침내 나갈 시간 한 시간여를 남겨놓고 겨우 비비적거리며 일어났다. ‘아, 그만두어야 할 것인가?’ 마음속으로 고민에 고민을 더한다. 결국 버리지 못하는 의무감에 간신히 이불을 떨쳐내고 일어나기는 하지만.


아이의 집에 도착해보니 할머님이 계셨다. 거의 늘 혼자 있었던 아이인데 부모님이 계시면 새삼스럽게 긴장이 되기 마련이다. 가끔씩 아이의 방이 작아서 거실에서 수업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부모님이 방에 계셔도 소리는 들릴 터이니 불편하다. 평소에 제멋대로이고 간해서 집중을 하지 않던 아이도 눈치가 빤하게 있는지 소곤댔다. “끝나고 할머니가 물어보시면 숙제는 했다고 말씀해 주세요.”


왜 그러냐 했더니 아침부터 숙제를 했다고 거짓말을 했고 할머님이 계속 숙제를 하지 않으면 과외는 그만두게 한다고 엄포를 놓으셨나보다. ‘이.참에 겸사겸사 잘 된 것인가?’ 인간의 마음은 참 복잡하고 알 수가 없는 것이 막상 그만둘까 수시로 고민을 했어도 아이 편에서 그만 두겠다 하니 또 한편으로는 섭섭한 마음이 든다. 아, 갈팡질팡하는 인간의 마음이여.


아이는 아침부터 일어나 머리를 감았는지 아니면 물만 축여서 머리를 빗었는지 빗자국이 선명하고 포마드를 발라놓은 것 같아 좀 우습다. 유치원 아이처럼 할머니가 단정하게 빗어놓으신 것 같기도 하고. 평소와는 정반대의 태도로 잖게 않아서 조금은 올드한 스타일로 머리를 한쪽으로 빗어 넘기고 사뭇 진지하게 공부에 임하는 아이를 보니 기가 차기도 하고 나의 교사 자질이 좀 의심스럽다. 너무 느슨하게 지도를 한 것인가 뒤늦게 자책도 되고.


아무튼 할머니 효과로 아이는 한 시간 삼십분 동안 얌전하게 앉아서 중간에 고양이를 데리고 오긴 했으나 평소보다는 상당히 양호한 태도로 수업에 임했다. 여러 가지로 반성이 되는 시간이었다. 좀 더 다부지고 깐깐하게 가르쳐보리라. 엣헴.


한 시간 반의 수업이란 사실상 상당히 길다. 일대 다수가 아니라 일대일로 독대를 하고 한 시간을 수업 하다보면 중간에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 제 버릇 개 줄 새라 아이가 방에 가두어둔 고양이를 번쩍 안아 올려서 데리고 나온다. 일주일 만에 보는 고양이가 반가우니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인사를 다. 고양이는 항상 데면데면해도 나의 일방적인 뜨거운 애정은 아직 식지 않았나보다.


 영어 단어장 위에 턱하니 앉아 자리 잡고 누운 고양이를 이리저리 각도를 잡아서 사진을 찍어본다. 카메라만 들이대면 고개를 돌리거나 아예 외면을 하고 등을 돌려 버리지만 그래도 귀엽기만 한 고양이. 눈병이 있는지 가끔씩 재발을 하고 눈물을 흘리며 한쪽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것이 안쓰럽다.

‘고양이야 너도 나이가 들어가니 곳곳에 고장이 나는 거니? 쯔쯔.’ 고양이와 동병상련을 느끼는 한 어처구니없는 인간.


수업은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게 끝나가는 데 방에 계시던 할머니께서 갑자기 부엌으로 나와 요리를 시작하셔서  마지막까지 긴장감이 흐르게 되었다. 지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은 각성된 분위기 때문에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도 약속이나 한 듯이 얌전하게 세상에 다시 없을 모범생처럼 동조를 하고.


할머니는 툭탁툭탁하시면서 부엌에서 계속 요리를 하고 계셨다. 시간도 거의 끝나가서 막 일어서려는 참이었다. 그런데 몇 십분 이나 되었을까? 할머님이 쟁반에 떡국 두 그릇과 반찬 몇 가지를 차려서 우리 앞에 가져다 놓으셨다.


별말씀도 없으시고 빨리 하느라 떡이 불어버렸다고 하시며 떡국을 먹고 가라신다.  미리 묻지도 않으시고 점심을 차려 내오시다니. 사실  끝나자마자 동생과 약속이 있어서 집으로 어서 달려갈 계획을 하고 있었는데. 점심시간에 맞추어 놓느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고. 


하지만 가타부타 말도 없이 차려오신 소박한 떡국 한 상은 오색찬란하고 맛깔스럽게 보였다. 한 마디로 거절을 하고 나갈 상황이 아니다. 할머님은 다시 방으로 들어가시고 나는 아이에게 몰래 떡을 덜어주며 얼른 그릇을 비우고 일어나려 다. 부드럽게 퍼진 떡국은 참 간간하고 구수하며 입맛에 딱 맞았다. 자에 먹을 복은 확실하게 있는 듯.  


일어서려는데 할머니는 아이에게 아침에 숙제 때문에 또 한바탕 혼을 내셨다면서 푸념을 시작하신다. "이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우시다, 나와는 다르다." 등등.

'저도 모르옵니다. 제 말도 듣지 않습니다. 쉽게 제어 못할 사춘기가 왔나 봅니다.'

할머님의 말씀에 적극 옹호 하면서 한편이 되어 아이를 꾸짖고 앞으로 열심히 할 것이냐 추궁하며 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하고 몇 마디 호들갑스러운 당부를 덧붙인 후에나 총총거리며 나왔다.


마음은 이미 정성 가득한 떡국 한 그릇에 다시 녹아내렸다.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일요일 아침의 수업은 계속되리라. 연약한 인간의 마음은 또 이리도 말없이 오가는 마음 한 조각에도 움직이게 되어 있다.  개월동안 미운 정 고운 정 들기도 했고 다른 것보다 먹는 것의 인정에 유독 약한 것 같기도 하고. 이러하니 다이어트가 될 리가 없다.


갈대 같이 바람결에 따라 락가락하는 인간의 마음이여. 비는 또 장마비처럼 줄기차게 내리는구나.

고양이야 너도 당분간 계속 만나자~
동병상련하는 사이
난 인간에겐 관심 없다. 내 갈길을 가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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