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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May 22. 2021

돈의 문제

돈아 돈아 어디로 가니?

어떤 분을 만났다. 건물의 일부를 소유하고 직원이 수십 명에 이르는 대표님이셨다. 이 분의 자산은 얼핏 들은 건물만 해도 수십억에 이른다. 누구나 일생에 한번쯤은 남몰래 복권을 사며 꿈꾸어 보는 조물주 밑에 건물주 아닌가? 하지만 자수성가를 한 분들을 보면 육십이 어도 일을 놓지 않고 결코 돈을 허투루 쓰는 법이 없다. 아마 죽어라 일을 하고 절약 정신이 남다르게 투철해야 부자가 될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부럽지도 열망하지 않는 삶이랄까?


돈을 소유하려는 목적은 무엇일까?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자유롭고 싶어서이다. 나의 미래의 꿈이 있다면 적당히 일을 하나 생계와 연관되어서는 하고 싶지 않다. 마치 취미 생활을 하듯 일을 하면서 돈에는 연연하고 싶지 않다. 무슨 멍멍이 짖는 소리냐 하겠지만 돈에 얽매이지만 않는다면  내 가르치는 일을 훨씬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


교회에서 자원 봉사로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친 적이 있는데 늘 그 시간이 행복했다. 상대방도 수업에 만족하고 좋은 선생님이라 칭찬을 아끼지 않고. 설마 공짜여서 그랬던 건가? 언젠가돈의 충분한 보상이 없어도 스스로 느끼는 소소한 보람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면 참 만족스러우리.


어떤 형태이든 일을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다. 백세시대라며 평균 수명은 계속 늘어 가는데 긴긴 세월을 놀기만 하면서 살기도 힘든 일이다. 아직 은퇴를 하기에는 어리고 어린(?) 나이다. 은퇴야 자기가 하고 싶고 경제적인 여유가 있으면 언제든 과감하게 하면 되는 것이나 그래도 일을 아예 놓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일하는 시간은 현저하게 하루 한 대여섯 시간 정도로 줄이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다. 현재도 반강제 격리 생활과 함께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리 하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이 건물주님과 만나자마자 급속도로 친밀함을 느끼게 되었다. 공적인 관계로 시작하였지만 성격이 잘 맞았고 휴일에 함께 산에 오르며 더욱 친한 관계가 되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근심이 쌓이기 시작했다. 왜냐? 나는 이 분에게 과외비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은 관계의 단절을 가져온 지난 경험을 통해 지인에게는 과외를 하지 않겠다 결심을 했고 가능한 과외생의 부모님들과 거리감을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천성이라는 게 있는데 난 대체적으로 솔직하고 허물이 없고 다정한 다가가기 쉬운 인간이다.(ㅋ) 성격적인 면에서 상당히 비슷한 면을 발견했고 만날 때마다 깔깔대며 유쾌한 시간을 보낸 후 이 분은 나를 매우 좋아하고 자주 찾게 되었다. 실은 코로나의 길고 긴 고립 시대에 외로움에 지쳐가는 나도 가깝고 따뜻한 사적인 만남이 그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이 공과 사의 애매한 관계의 선을 어디에서 그어야 하는가?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왜냐면 나는 생계형 과외교사이기 때문이다. 대배우 윤여정 님도 생계형 배우라는 단어를 쓰셨기에 한번 비슷하게 써본다. 이 표현을 매우 공감하는 것이 이것은 본인이 하는 일이 없이는 생계가 불가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생계형 일자리에 지인이라는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게 되면 돈의 문제를 확실하게 언급하기 어려워진다. 공과 사의 관계에서 어느 로 갈지 모르고 방황하게 다. 그래서 이 새롭게 시작되는 인간관계에 거리를 두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홀로 몇 주간 괴로워하고 다양한 억측의 시나리오를 짜면서 불행한 결말을 예측하였다.


그러나 이 분은 내 고민 가득한 공적인 문자에 두말 없이 깔끔하게 과외비를 송금해 주심으로 이 문제를 단번에 종결시켜주셨다. 더 이상 나는 이 분과의 거리를 조정할 필요가 없다. 돈의 문제만 정리된다면 우리는 공적이며 동시에 사적인 관계가 될 수도 있다. 이 분이 공적인 예의를 계속 지켜주시면 난 얼마든지 사적인 인간일 수도 있다.


프리랜서라는 건 돈의 문제를 자기가 결정해야 하는 지대한 어려움이 있다. “나는 시간당 얼마를 받소.” 하고 처음 만나는 이에게 당당하게 제시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타인이라면 그리 어렵지 않으나 지인이라면 감정이 결부되어 복잡해진다. 과외 생활 처음에는 돈의 문제를 잘 계산하지 못했으나 나름의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다 보니 조금은 뻔뻔해지고 현실적이 되어 가 있다.


수업을 하러가는 거리와 시간도 가늠하고 직접 해보니 왜 과외비가 꽤 높이 나와야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이 금액이 너무 높다고 어필하면 마음은 흔들리게 마련이다. 왜냐면 나 역시도 적지 않은 금액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허나 기름값이며 수업시간이며 보통 한 시간에 이르는 왕복 이동시간을 고려하고 먹고 살아야 하는 엄연한 현실을 마주하면 또 마냥 양보할 수가 없다.  


아무튼 요 몇 주간 문득문득 머리속에서 계속되던 결국 파국을 만나는 막장 드라마 시나리오인 돈과 관계의 문제는 해결이 되었다. 돈의 문제는 한동안  관계를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가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지만 정리가 되어서 기쁘고 이제 다시금 친밀한 인간관계를 계속 유지하며 만들어 가보고자 한다. 어떤 사람과 어느 정도의 선까지 가까워져야 하고 또 어느 시점에서 기약 없이 멀어지게 되는가? 이 문제는 늘상 쉽지가 않고 관계가 틀어지면 매번 마음이 아프다.


어떤 이상적인 인간관계건 예상치 못한 문제는 항상 생겨나는 것 같다. 사람이란 첫 만남이 아무리 짜릿하고 만족스러워도 오래도록 보고 겪어보아어렴풋이  진정성을 알 수 있는 존재이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영원히 모를 수도 있고. 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살만큼 살아왔는데도(?) 아직도 인간관계는 어렵기만 하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인간 사이에서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고 속고 속이고 만나고 헤어지며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계절마다 시시때때로 흔들릴 것이다. 그래도 깨끗이 버리지 못하는 인간관계의 끈질김.

얼그레이나 한잔 할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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