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밖에는 답이 없다

우리 모두가 살기 위해서

by 사각사각

간밤에 심한 마음의 부침으로 몸도 고통을 겪었다. 소화불량과 배탈로 지쳐 쓰러지게 되었다. 요 며칠간 최대한 먹는 것을 줄였음에도 마음이 괴로우면 몸도 바로 눈치를 채고 파업의 상태로 간다. 이러하니 마음을 잘 다스리는 것이 몸도 함께 건강해지는 방법이다.


내 마음의 상처는 꽤 깊었다. 혼자 그려보고 기대하던 일이 무너져 내리는 상황을 보았고 내가 믿었던 상대방이 전혀 다른 낯선 모습을 보이고 내 희망을 저버리는 것, 나 자신을 스스로 그 곳으로 몰아넣은 것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나의 어리석은 결정으로 인한 되돌리지 못할 파멸의 결과를 바라보자니 비통한 심경이었다. 상대방의 경솔함도 화를 치밀게 했지만 내 자신의 판단 부족이나 어쩌면 가벼운 간과나 부주의함, 헛된 바람이 빚어낸 결과가 나를 무너져 내리게 하였다.

감정의 심연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갔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로. 통곡과 눈물로 하루 밤을 지새운 후 수업을 하고 왔다. 그나마 아침 수업 하나가 미루어진 것이 천만다행이랄까. 마음이 이미 통제 불능의 슬픔에 빠져 들어가서 현실 세계에서 주어진 대로 기능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충전이 필요한 핸드폰처럼 가까스로 몇 시간을 버틸 배터리만 남아있다. 게다가 잠도 너무 부족하고.


차를 운전해 오면서 조금 더 울었다. 감정 하나에 매달리고 빠져들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감정을 타고 질주할 때가 있다. 그저 슬프다, 고통스럽다, 참을 수 없다 등의 단어에 집착하기 시작하고 마음을 놓아버린다. 간밤에 무서운 경험이 떠올랐다. 새벽까지 깨어서 슬픔을 유영하는 중에 문득 자살의 충동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죽고 싶은 적은 없었건만. 생각은 있었어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상상해보지를 못했었는데. 갑자기 손목을 긋고 물에 담그면 죽을 수도 있을 거라는 또렷한 상상을 해보았다. 아마 수면 상태와 현실 사이에서 만들어낸 허상의 결과물일 수도 있으나 잠깐이나마 유혹적이고도 강렬했다. 그것이 어려우면 자해를 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스쳐갔다. 선명하게 흐르는 피를 보면 자책의 마음에 위로를 받을 수도 있을까?커터칼 같은 것으로 허벅지를 긋는다면. 아마 생에 대한 무거운 절망감, 상실감, 막막함이 거대한 괴물이 되어 삶을 놓아버리라 속삭인 것 같다. 삶이 없다면 지극히 편안한 우주와 같은 진공 상태로 갈 수 있지 않을까. 무거운 삶을 들어올려 지고 버티고 바라고 살아가기가 지긋지긋하고 싫어졌다. 내 아무 욕심없는 작은 바람도 들어주지 않는 이. 아~ 아무 고통이 없이 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시의 절망적인 마음 상태로는 아무 주저함 없이 덥석 그 매력적인 손을 잡았을 것 같다.


이 모든 무시무시한 상상을 하나도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마음이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 들다보니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악마의 희미한 손짓을 보았뿐이다. 그 짧은 순간 자해나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심경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두려운 일이지만 조그만 더 이성을 잃거나 약물이나 술의 힘을 빌리면 선을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언젠가 자살 전화 상담을 하는 분에게 들었는데 자살을 선택하는 사람들을 그 마지막 상황에서 이십분 정도만 상담을 하면 살려낼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고 하였다. 단 이십분, 극단적인 마음이 들고 생을 끝내고 싶을 때 누군가 이성적이고 차분한 전문가와 대화를 할 수만 있으면.


다시 깨어나 용서하기를 선택하였다. 상대방을 용서하면서 동시에 나 자신도 용서하기로. 나의 믿음이 조용하나 굳건하게 다시 나를 다독이며 일으켜 주었다. 결국 상대방을 용서하고 놓아주어야만 나도 같이 살 수 있는 것이었다. 어쩌면 자기 자신의 과오를 끝까지 용납하지 못하고 삶에 대한 처절한 상실감의 늪에 빠진 사람들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음의 물길에 속절없이 떠내려 가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의 감정선은 한끗 차이로 삶과 죽음으로 어마어마하게 바뀔지도.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지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의 상반된 가치관으로 빚어진 전쟁 같은 참상일뿐 수도 있다. 서로 다른 생각, 가치관으로 각자 자기가 옳다고 판단한 일을 했을 뿐이다. 다만 그 상대방의 삐뚤어진 가치관과 교묘한 속임수을 아직도 완전하게는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인간이란 살아가다 보면 실수를 하게 마련이지 않은가? 나 또한 암묵적, 무의적인 동조를 하였던 부분도 있었으니 이 부분을 받아들이며. 결국에는 우리 모두가 함께 살고자 한다면 용서밖에는 답이 없다. 몸과 마음은 분리할 수가 없다는 극명한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고.

장미는 아름다울 뿐이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