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어린이는 학교에 다녀와서 공부를 하려니 힘들어보였다. 하교 후 바이올린 수업 바로 다음에 영어 수업을 하느라 쉬는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잠시 신나게 춤을 추기도 했으나 졸리다고 하더니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린다. 누워서도 다리를 머리까지 들어올린 요가 자세로 노래를 부르는 귀여운 어린이. 학교를 다니지 않는 어른(바로 나, 학교를 안 가니 좋긴 하다)도 부럽고 코로나 때문에 휴원를 한 유치원 동생들도 부럽단다.
'아이야~ 너의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마카롱같은 시간을 즐기렴. 어느 새 뒤돌아보면 어른이 되어있을테니앞당길 필요가 없단다.'
여덟 살 인생도 나름 고되다.
선생님은 내 친구
시종일관 반말을 하는 어린이가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니 반말을 할 나이는 아니나 그냥저냥 이런 저런 사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무심코 심기를 건드리면불 같이 화를 내신다. 이 아이는 자기는 영어 수업을 받고 싶지 않으나 미래에 미국에 갈 수도 있어서 기본만 배우고 싶다고 공언을 하였다.(내 팔자야~)
"그래 이건 기본 중에 기본이야."
약간은 놀리는 분위기로 몇 번 반복을 했더니 아이가 버럭 화를 내기 시작했다. 눈치가 없다면서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소리소리 질렀다. 초등아이에게 눈치가 없다는 꾸중을 들으며 꿋꿋하게 돈을 벌고 있다.
이쯤 되면 아무리 늙은 어른이라 해도 감정이 상한다.
"너가 그런 갑작스러운 반응을 보여서 마음이 상했어. 나는 네 선생님이지 친구가 아니지 않니?"평소와 다르게 꽤 정색을 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억울하다 억울해.
아이가 나를 빤히 보면서 '나는 자기의 친구'라 주장 하였다. 그건 아니라 부정하니 진짜 절친이라도 잃은 것처럼 고개를 푹 숙이고 들지 않았다. 진심으로 나를 친구로 여기는 듯 하다. 헐~
"그래, 친구야 친구."이 나라가 망한 것 같은 침울한 상황을 끝내고 싶기도 하여 마지못해 한마디 하였다.
그제서야 아이는 고개를 들었고 평온을 되찾았다.
이로써 오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초등학생 친구 하나를 얻은 것인가. 차라리 미국영화에서처럼 영어로 계속 말해주면 아메리칸으로감정이입이 되고 좋으련만.나이 따위는 친구가 되는 데 문제가 없다! 동방예의지국에서 한국말로 반말 짓거리를 하니 아쉽다.
원양 어선을 타겠다
고등학생 아이와 수업을 하고 있었다. 공부를 하라는 의미로 장래에 무엇을 할 것이냐 채근하니 난데없이 원양 어선을 타겠다고 한다. 일억은 벌 수 있다면서.
그동안 무수한 학생들이 공부는 하지 않겠다고 하며 들은 말 중에 가장 신박하긴 했다. 하지만 원양 어선을 타본 사람의 경험담을 들어본 적이 없고 실제 급여라든지 근무조건에 대한 정보도 알수가 없다. 현재로서는 원양 어선에 타라고 권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일단 공부를 일년은 해보라고 종용하는 것이 과외를 하는 자로서의 책무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원양어선을 태워서 이 업이 얼마나 고되고 힘든지, 그래서 일억을 준다해도 섣불리 이 일에 뛰어드는 사람이 없는지 체험을 시켜주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예상과 달리 이 학생은 배멀미도 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는 일이 좋다고 하니 적성에 맞을 수도 있다.
그리고 본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한일로 즐겁게 일억을 번다면 굳이 뜯어말릴 일은 아니지 않을까. 그래서 나중에 육개월이라도 한번 직접 타보라 하였다. 경험만한 선생님이 없다!
수업의 모습은 세상의 수많은 인간 군상들만큼이나 천태만상이다. 그래서 인간을 만나는 것이 재미있는 일일수도 있다. 어린아이이든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옳든 그르든, 검증이 된 것이든 아니든, 각자가 가지고 있는 신념은 분명하다. 그래서 비판을 하지 않고 서로의 각자 다른 상황과 삶을 인정해주는 자세가 필요한것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가 믿는 대로, 가치관 대로 행동하고 자기 삶을 살아간다.
비가 그친 수요일 오후. 의외로 맑은 정신과 몸으로 파릇파릇하고 신선한 인간들과 새롭게 하루를 살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