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과외 인생 14화

아이에게 내리는 상금

더 잘하기를 바라는도다

by 사각사각

기말 고사가 끝나고 한 가지 고무적인 일이 있었다. 두 명의 과외가 날아갔지만 한 명의 아이는 성적이 극히 미미하나 조금은 올랐다는 점이다. 시험을 보기 전 이 교사의 타들어가는 마음은 아랑곳없이 하등 열심이 없는 것 같은 아이들을 보고 초초해져서, 공약을 하나 내걸었다. 시험 성적이 몇 점(이 점수는 하도 낮아서 밝히기도 창피하다!) 이상을 받는다면 문화상품권을 상으로 지급하겠노라. 탕탕!


여자 아이들도 그렇지만 남자 아이들은 승부근성이 있는 편이다. 그래서 아이들은 잠시나마 이 먹음직스러운 미끼를 덥석 물것처럼 눈이 반짝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의 힘이란. 어찌하여 나에게 이렇게 바닥을 기는 점수의 아이들만 대거 몰려서 과외 생활을 간당간당하게 하는지. '신이시여 살아보려 불철주야 노력을 다하는 불쌍한 영혼을 굽어 살피소서.'

과외를 하는 입장에서는 아이의 점수가 단 십 점이라도 올라가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곧 짤릴 위기감도 몰려오고 면이 서지 않는다고 할까?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지만 꼬박꼬박 과외비를 받고 있는 데 신경을 쓰지 아니할 수 없다. 그 뿐 아니라 가르치는 자로서의 보람이라는 것도 찾고 싶지 않겠는가?


하지만 요즘 학교 영어 시험이란 그리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문법이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문장을 쭈욱 나열하고 단어에 줄 하나 쳐주지 않는 야박한 상태에서 ‘다음 중 문법상 어색한 문장을 모두 고르시오.’ 이렇게 다짜고짜 묻는 질문들이 많다. 1번) a, b 2번) b. c. d 3번) a b, c, d, e, f 이런 아리송하고도 마냥 찍기도 어려운 문제들.

하위권의 점수를 가진 학생이 풀기에는 시험 자체의 난이도가 전체적으로 높다. 점수를 보자면 상위권은 80, 90대 점수이고 중간은 텅 비어있고 하위권이 50점 이하로 쫘악 깔려 있는 형태. 과거 시험 문제를 냈던 사람이지만 쌤들과 시험 문제의 난이도를 조절하고 합의에 이르기가 쉽지 않았다. ‘시험이 무진장 어렵다.’ 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쌤들. 상위권 아이들의 수준도 만만치 않은 점이 있지만 공부를 더 알차게 시키기 위해서일까? 중, 하위권 아이들이 단박에 포기에 이를 수도 있는데.


시험이 끝나고 일주일 후, 이미 다른 아이들의 점수가 신통치 않음을 눈으로 확인하였기에 이 아이게도 기대는 접어두었다. 하지만 낮은 기대와 달리 이 아이는 꽤 자신만만하게 시험지를 꺼내들었다. ‘ 웬 일?’ 지난 번 보다는 이 십 점 정도는 향상이 된 것 같았고 본인의 생일도 다가오니 약속한대로 상품권을 증정해야 한다고 씩 웃으며 말했다. 인간의 마음이란 참으로 간사한 것이 이 보다는 더 점수가 높아야 하지 않느냐는 핀잔이 나올 뻔 했다. 점수가 확실하게 향상이 되었지만 인간의 욕심은 ‘조금 더, 그보다는 조금 더 잘하면 어떨까?’ 끊임없이 채근하면서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의심과 억지가 있었지만 쿨하게 상품권을 현금으로 증정하기로 했다. 현금을 그냥 내밀기는 예의가 아닌 것 같고 생일 알림 메시지까지 받았으니 고심하여 아이에게 전달할 카드와 돈 봉투를 고르기로 했다. 생일날이든 기념일이든 짧더라도 카드를 받는 기분은 흐뭇하다. 그 카드에 꾹꾹 눌러 쓴 글씨가 몇 자 안 되더라도 메마른 마음에 단비를 내릴수 있는 것이다. 고심 끝에 장미꽃이 그려진 핑크 빛 돈 봉투와 풍선이 날아오르는 밝고 희망찬 카드를 골랐다. 이 아이는 남자 아이치고는 매우 섬세하고 예민한 스타일이다. 공부에 매진하는 모범생 타입은 아니지만 간간히 내가 쓰는 짧은 메시지에 보답하고자 최소한의 노력은 한 흔적이 보인다.


예전에 학교에서 담임을 하던 시절이 문득 떠올랐다. 스승의 날이었던가 반 아이 중 한명에게 편지를 받았다. 그 편지지의 겉봉투에는 ‘건강하세요. 사랑합니다. 응원합니다!! 사랑하는 나의 담임선생님. o!o!o! 쌤’ 이라는 문구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는데 보자마자 그.몇 줄의 문장에 무척 감동을 받았다. 이미 육년 여 전에 일이지만 그 편지의 문구를 사진으로 찍어 놓았고 아직도 내 카톡의 바탕 화면에 그 사진이 깔려있다. 그 사진을 볼 때 마다 그 감동이 다시 기억나고 ‘이런 응원을 받을만한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단호한 의지가 불타오른다.


그 당시 날이면 날마다 다양한 문제와 말썽을 부리는 기상천외한 구성의 반 아이들 때문에 삶이 무척 힘들고 고달팠다. 밤마다 쌓여가는 답이 안 보이는 근심과 걱정으로 몇 개월을 불면증에 시달려 좀비와 같은 상태로 출근을 하곤 했고, 정신과에 가서 상담을 받고 수면제을 처방받을까할 지경이었다. 그 쩍쩍 갈라지는 마음에 내리는 가뭄의 단비와 같은 응원 몇 마디. 그 아이는 그다지 총애하는 아이도 아니었고 딱히 더 신경을 써 준 것 같지도 않은 데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아이는 어떻게 이렇게 단순하나 시의 적절한 위로를 건네준 것일까?


우리가 살아가는 힘은 타인의 엄청난 도움이나 위로에 있지 않다는 것을 다시 되새겨 본다. 다른 사람을 향한 따뜻한 마음, 작은 응원 이런 것들이 우리를 힘든 현실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고 살아가는 기쁨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해준다. 미래에 3D 영상 메시지를 보내고 우주로 이민을 가는 시대가 온다고 해도 나는 한 사람을 생각하며 문구점에 걸어 가서 가장 예쁜 카드를 고르고 손 글씨로 또박또박 쓴 카드를 보내리. 아~ 말리는 옛날 사람.

카드와 돈 봉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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