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를 하러 갔는 데 어머님이 매우 친절하시다. 매번 돌아가는 길에 운전하며 드시라고 과일을 깎아서 도시락에 넣어주시거나 김밥을 싸주시거나 한다. 주먹밥 스타일로 대충 싸셨다는 김밥은 밥에 간을 적당히 하고 청양고추를 다져서 살짝 넣은 듯 매콤 담백하며 맛있었다.
과외를 할 때는 저녁 식사를 거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수업 후에 이동이 반복되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차 안에서 끼니를 때우게 된다. 저녁 시간에 몇 시간 동안 공복이 되면 밤늦게 이성을 잃고 폭식을 한다. 이 생활이 계속되니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가능한 이동 중에라도 배를 적당히 채운다. 당 떨어져서 배고픈 상태를 못 참기도 하고. 그러니 이 공복 중에 받은 김밥은 어느 때보다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인간 사이에 오가는, 마음이 느껴지는 작은 정성은 사람을 감동시킨다. 유독 먹을 거에 자주 감동하는 것 같지만 서로 부담도 적고 에너지도 끌어올려주니 이렇게 주고받기 좋은 것도 없지 않은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초코파이 정' 이런 광고도 있을만큼.
수년 전에 베트남을 여행하고 있었다. 피싱 빌리지라는 곳에 들렀는데 바닷가에 베트남인들 특유의 바가지 같이 생긴 알록달록한 배가 가득 떠 있는 곳이었다. 점심시간이라 길거리에서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빵을 몇 개 사들고 한가로이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다. 어디 철퍼덕 앉아서 먹어볼까나. 바닷가에는 얼기설기 지은 쓰러질 듯한 가건물의 집들이 모여 있었는데 실로 가난해 보였다.
어떤 아저씨가 약간은 낮술에 취하신 것으로 보였지만 지나가는 나를 붙들고 평상 같은 자리를 내준다. 집 안을 둘러보니 할머니 한분과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눈이 까만 아이가 한 명 있었다. 아저씨는 만면에 웃음을 띄고 나를 자리에 앉히더니 식사 중이었는지 안주인지 고기 국물 같은 걸 떠서 연신 권했다. 사람이 좋아 보이셔서 넙죽 앉아서 받아먹었다. 고기는 거의 없고 국물뿐이었지만 낯선 이방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그 마음이 고맙지 않은가. 말이 한마디도 안 통했는데도 정을 받아먹으며 할머니와 아이의 사진을 찍고 평화롭게 잠시 놀다가 내 갈길을 갔다.
여행을 하면서 표현할 수 없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은 이런 때이다. 아무 대가나 사심 없이 인간 사이에 주고받는 마음 같은 것. 코로나 시대를 지내며 마음이 많이 닫히는 걸 느낀다. 이건 아마도 반복되는 만남과 헤어짐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마음이 길을 잃은 것일 수도 있다. 허해지는 내 마음을 지키기 위해 문을 닫아걸게 되고 빼꼼 열어볼까 하다가도 상대방의 진심이 시시때때로 의심이 된다.
인간 관계의 적정선에 대해서 고민을 해보았지만 매 순간에 마음을 다하고 나누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되는 삶에서 마음의 문을 종일 닫아걸고 사느니 함께 하는 시간은 최선을 다하고 헤어질 때는 미련 없이 보내주자. 세상 무엇에도 연연하지 말지어다. 스스로에게 건네는 위로이자다짐. 내가 값없이 받은 호의는 또 다른 이에게 적절하게 나누면서 살면 된다. 말년에는 쌓이고 쌓인 복을 받으리(라 믿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