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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Feb 28. 2020

아이들의 공간은 어디에

'한국, 이런 건 아쉽더라' 3 - 아이들 놀 곳이 없어요

해외살이를 통해 본, '한국, 이런 건 아쉽더라' 2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사라져 가요



서로를 막아버린 높은 담벼락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이다. 활동성이 높은 아이들이 집에서만 지내는 일은 답답하고 무기력한 일이다. 집 근처에 초등학교가 있어 그 넓은 운동장에서 놀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어제 아이들과 함께 방문을 했다. 지킴이 아저씨가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오전에 전학 문제로 이미 교무실을 방문할 때,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놀 수 있냐고 물었는데 그때는 아저씨가 흔쾌히 그럴 수 있다고 했었다. 우리가 학교를 들어가던 것을 보던 지나가던 한 엄마도 여아 2명과 함께 와서는 나에게 "안된대요?"라고 물으며, "아이들 스쿠터 좀 넓은 데서 태우려고 했는데.." 하셨다. 나도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나왔어요."라고 대답하며 텅 빈 운동장(쓰는 것을 막아버려 그 가치가 순삭 돼버린)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나는 어떻게 아이들의 에너지를 쏟아내게 할 것인지 방법을 찾으려 애썼다. 아마 그 엄마도 그랬을 거다.


결국 마을버스를 타고 가까운 공원에 가서 운동 기구도 탐색하고 이리저리 뛰어놀았지만 계속 머릿속에서는 정리되지 않은 기분 나쁜 것이 머물렀다. 그리고 나의 어릴 때를 떠올려보니, 우리는 주로 온 동네를 탐색하고 다녔고 그 중심에는 늘 학교 운동장이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땅에 갖가지 그림을 그려가며 게임도 하고 땅따먹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색깔 놀이, 숨바꼭질, 잣치기, 별스런 놀이들을 다 가져와 규칙을 정하고 재미있게 놀았다. 엄마가 "얘들아~ 저녁 먹자" 하기 전까지 말이다.


그런 모습을 떠올려보고 오늘을 다시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했다.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뛰어놀 공간이 사라진다


아이와 부모는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놀이터 유목민을 자처한다. 우리는 그리고 돈을 써서 키즈카페라는 인공적으로 계획된 놀이터로 들어간다. 공기청정기가 돌아가고 각종 공간들은 그것들을 기획한 디자이너와 교육자들의 머릿속에서 짜인 계획된 놀이터로 아이들을 밀어 넣는다. 그리고 산천어 축제에도 간다. 산천어는 양식으로 잘 길러졌고 우리는 세련되게 디자인된 곳에서 낚시를 즐긴다.


혹은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아이들을 스크린의 세계 속으로 밀어 넣는다. 편하다. 사악하기까지 한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아이들의 성향을 이내 분석해 입맛에 맞는 갖가지 현란한 영상들을 눈 앞에 펼쳐준다. 엄마의 놀이는 심심한 것이 되고, 책은 지루한 것이 되어 버린다. 앞마당에 나가 뛰어노는 일이 싫어져 버린다. 머리만 커지는 괴물이 되는 건 아닌가 무섭기까지 하다.


꿈꾸는 공간


자메이카에서는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그전에 해가 정말 뜨겁다) 온 동네 아이들이 다 집 앞으로 나온다. 국적도 나이도 다양한 아이들.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너 몇 살이야?"라고 묻는 아이는 없다. 각종 게임들을 제안하고 합의해 나가면서 어우러져 함께 논다. 하루는 아이들을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달라고 해서 주었더니 작은 종이로 잘라 붙여 커다란 신호등을 만들고 경찰차, 소방차 등도 곧 만들었다. 그것을 들고나가 도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재현해가며 재미있게 놀았다.


전문가들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곳이 필요하다고 하고, 핀란드의 교육 시스템을 언급하며 이렇게 우리도 키우자고 이야기하지만, 정작 현실에 반영되어 있는 교육 환경은 다른 위험 요소들에 더 기울어진 정책을 반영하고는 한다. 미세먼지, 그리고 범죄자 등 우리를 멈칫하게 만드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들이 무섭다고 행정적으로 보수적인 방침만이 답일까 하는 생각이 이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형상이다. 우리는 토론을 해서 합의에 이르는 방식을 추구하기보다, 문제를 단순하게 해결해 버릴 때가 많다. 책임 회피를 위해 아예 원천 차단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행정적으로 얼마나 편한 방식인가. 흑백논리, 이데올로기적 사고, 그것을 가져온 우리의 과거,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과연 이런 교육 환경에서 어떤 사람을 키우고 있는 걸까.


아이에게 물었다.

J야, 한국 학교가 좋아 자메이카 학교가 좋아?
응, 난 자메이카 학교가 좋아. 더 자유롭고 편해.


규율과 방침이 아이를 숨 막히게 한다. 확 트인 운동장을 바라보며 느낀 것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솔루션이 있나


그러면 이런 환경에서 나는 어떻게 아이들을 양육할 것인가가 고민이다. 균형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토론하며 합의에 이르는 방식을 외부에서 배울 수 없다면 집에서 가르치면 된다. 작은 일에도 명령이 아닌 생각해보기로 접근하고 부모의 요구사항과 아이의 욕구 사이에서 줄다리기하며 합의에 이르면 된다. 그리고 공간도 찾으면 된다. 아파트가 빼곡한 도시지만, 잘 둘러보면 우리가 애정 할 공간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우리는 그런 곳을 아지트라고 불렀다. 그런 곳을 탐색해서 찾아내는 것도 사실 신나는 일이다. 시스템을 바꾸는 적극적인 솔루션은 아니지만 소극적일지언정 일단은 내 아이에게만큼은 좋은 것을 가르치면 된다. 부지런해야 가능한 일이다. 편한 것과 좋은 것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선택해야 하지? 결국 부모의 몫이다. 사회가 그 몫을 다해 주지 못해 넘어온 숙제.


공간 찾기가 시작됐다


동생은 아예 산자락을 하나 사 버렸다


동생에겐 예쁜 딸아이가 있다. 우리 집 둘째 S와 같은 해에 태어났고 그래서 둘은 수준이 딱 맞아 베프다. 동생은 아이와 '주말 자연인이다'가 하고 싶어 산자락을 하나 샀다. 주말마다 가서 나무도 심고 우물도 파서 그곳에서 사는 개구리와 개구리알, 소금쟁이와 물방개를 구경한다. 때로는 시골에 있는 진돗개를 데리고 간다. 더덕을 손으로 따 와서 나물을 무쳐먹는다. 서울로 이사 오기 전 함께 몇 번 가서 솔방울을 줍고 작은 공간을 만든다고 나무를 베어 잇기도 했다. 동생은 앵두나무 6그루와 호두나무를 심었다. 아이들 스스로 논다. 화려한 공간이 아닌데 심심할 틈이 없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니 이제 그 공간은 더 자주 주말마다 동생 가족에게 시스템이 줄 수 없는 것을 선물해 줄 것이다. 바이러스도 피하고 말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선사한다 (출처: gettyimages.com)


균형 잡기


균형은 내가 아이들을 양육하며 항상 머릿속에서 생각한 단어다. 균형 잡기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중요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것. 자메이카에서도 내 입맛에 딱 맞는 학교란 존재하지 않았다. 베프 알리시아와 늘 이런 이야기를 하며 내린 우리의 결론은 어떤 학교를 선택하든 우리가 아이를 집에서 양육하는 방식으로 균형을 잡아주자는 것이었다. 학교와 내가 추구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 Balance! 그것이 한국에서도 내 숙제다. 어떤 시스템을 선택하든, 어떤 나라를 선택하든, 이상적인 것을 모두 실현해 줄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시스템이 차단해 버린 세상을 가정에서는 다시 창조해 내어 제공해 주어야 한다. 그 시스템을 품고 아이에게 좋은 것을 제공해야 해서 어렵기만 하다.




오랜만에 쓴 해외살이를 통해 본 한국 시리즈. 해외살이를 통해 본, '한국, 이런 건 좀 그렇더라' 3은 바로 아이들의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담벼락 양육 을 개선하자. 위험 요소를 제한하되 아이들이 창의적으로 뛰어놀 수 있는 양육 환경이 많이 마련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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