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eagarden Sep 29. 2021

쉽게 긴장한다

경단녀가 다시 일을 시작했더니 1

경단녀가 다시 일을 시작했더니 1

경단녀로 산 지 5년이 넘은 어느 시점에, 다시 일하게 된 나는 이전에는 없었던 특이한 증상들을 겪고 있다.



수시로 가슴이 뛴다


경단녀가 되기 전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없었던 증상이다. 누군가 떨면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면 안타까워서 대신해 주고 싶다 생각이 들만큼, 사람들 앞에 서는 것과 사람의 시선에 부담이 없었다. 대학시절엔 과 선.후배들이 그랬다. 네가 앞에서 발표하면 그 내용이 다 맞는 것 같이 들린다고. 지금 미국 IT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후배는 당시, 내 순서 뒤에 발표하면 왠지 모르게 자기도 잘 되는 것 같다고 발표 순서를 재기도 했다.


취직을 하고 가장 어렵고 적응이 안 되는 것은, 바로 전화가 울리는 소리였다. 거기다 외부에서 걸려오는 전화는 거의 패닉에 이를 정도로 혼을 빼놓았다. '뭐라고 하지?', '기자면 어떻게 말하지?' '말실수는 하지 않을까?', '말하다가 말이 꼬이면 어떻게 하지?'... 머릿속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걱정했고 가슴속은 심장이 콩닥콩닥 두근댔다.


아이 키우면서 간이 쪼그라들었나?


사무실이 조용할 때 전화가 울리고 그 전화를 받는 내 목소리가 온 사무실에 울려 퍼질 것을 상상하니 간이 쪼그라들었다. 업무 파악도 안 됐는데, 기자가 전화를 해서 민감한 사안에 대해 물어보면(당연히 아무도 그런 질문을 막 입사한 나에게 하지 않았다) 실수할까 봐 겁이 났다. 이런저런 이유로 전화벨 소리에 노이로제가 걸릴 지경이었다. 모두들 내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워 들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면접 볼 때 사시나무 떨 듯 떨리는 내 목소리를 들으면서 '오늘 면접은 다 끝났구나' 생각했다. 코로나로 마스크는 썼고 호흡은 가빴으며 그래도 목소리는 들려야 된다는 신념 하나로 쩌렁쩌렁 큰 목소리(다만 떨리는 목소리)로 면접을 치렀다. 면접을 보고 엄마와 여동생에게 사시나무 떨 듯 떨다 왔다고 하니, "네가? 상상이 되지 않는다"라고 했다. 그 말도 위로가 전혀 안 됐다.


아니야, 예전에 내가 아니더라고..
언제 이 병을 고칠 수 있을까


입사한 지 3개월 정도 지났을 때다. TF팀 회의를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데 (예상은 했었지만, 준비하지 않았던) 내가 작성한 자료 발표를 하게 되었다. 말을 하기 시작한 지 약 1분 여가 흘렀을 때 내 목소리는 다시 떨리고 있었다. 이 정도면 분명 병이 맞았다, 떨림병...


사무실 전화기 모니터에  모르는 번호가 떴다. '아, 누굴까' 벌써 가슴이 두근댄다.


네, ㅇㅇㅇㅇㅇㅇ  이남경입니다.


이남경 씨입니까, 통화 가능하세요?


... 네.


경아야~ (나를 경아라고 부르는 사람은 친정어머니와 남편밖에 없다)

허걱.. 그제야 들리는 남편의 목소리. 자기 사무실 전화로 내 사무실에 전화를 건 거다.


(엄청 작은 목소리로 소곤대며) 오빠, 하지 마, 죽는다!

나도 모르게 막말이 나왔다.


정말 놀랐고 이런 장난할 정도로 난 지금 여유롭지가 못하다는 의미였다.

나 지금 정신없단 말이야


내가 속한 세계의 대변환


세상과는 단절된 채 아이를 키우는 일에 오로지 집중했었던 내가 다시 사회의 일원이 되어 동료들의 네트워크를 하고 소통해가며 일에 적응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사실 지금도 적응 중이다.


지난 2월 떠밀려서 언론 브리핑 사회를 맡게 됐다. 최선을 다하고 제대로 급체했다.


가 다시 일하게 되면서 나타난 특징 중 첫 번째는 바로 '쉽게 긴장한다'다.



* 사진 출처: gettyimages.com




이전 07화 나는 가고 그는 서울에 남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