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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Nov 07. 2019

나는 가고 그는 서울에 남았다

서울역 앞에서 짧은 헤어짐


남편을 서울에 (?) 집으로 내려가는 ktx 안이다. 헤어진 지 십여분.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사랑해.


정말 오랜만에 적어보는 텍스트였다.

그리고 이어서 한마디 더 붙였다.


씩씩하게 잘해~


헤어지기 전 남편이 기분이 좀 이상하다고 했다. 결혼 후 떨어져 산 기간이 꽤 됐지만 최근 4년간(둘째 아이의 수술 후 자메이카로 가도 된다는 의사 선생님의 허락이 있은 후)은 같이 살았고 한국에 와서는 둘 다 시간이 많아 꼭 붙어 있었다. 도서관도 같이 다니고 우체국에 응시원서 부치러 같이 갔다. 밥도 같이 먹고 아이도 같이 보고. 심지어 빨래도 같이 널었더니 엄마가 한마디 하셨다.


느그는 빨래도 같이 너나.


듣고 보니 그러고 있는 우리가 웃기긴 했지만 그냥 그렇게 늘 되는 걸. 자메이카에 살 때도 주말 오전 빨래를 널고 있으면 남편은 항상 물었다.


경아야, 빨래 같이 널까?


아니야, 얼마 안 돼. 내가 하면 돼.


어떨 때는 이런 말에도 양이 좀 있다 싶으면, 파티오(한국에서는 테라스라고 하나요?)로 나와서 빨래를 같이 넌다고 부산스러웠다.


그러니까, 항상 날 잘 도와주는 남편이고 아이들의 좋은 친구이자 훌륭한 롤모델이기도 하다. 첫째 아이는 2여 년 전부터 자기는 결혼해서 아기를 많이 낳고 싶다고 했다. 그것이 사회학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아이지만, 집에서 우리 부부가 보여준 모습이 꽤나 긍정적인 것이었나 보다 정도로 해석했다.




그와 함께 걸었다. 숙소에서 나와 종각, 광화문, 시청, 덕수궁. 수도 없이 바쁘게 왔다 갔다 했을 때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삶의 템포를 늦추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 여행들의 소리, 청계천으로 나이 나온 사람들의 웃음소리. 소리가, 때로는 그 모습이  멈춰버린 순간들이 되고 나는 그것들을 눈에 담았다.


청계천은 불빛 축제로 빛이 서로를 비춰주고


신인 가수는 노래를 선물할 준비를 했다


달은 모든 종류의 빛을 안다는 듯 그들을 모두 품었다


그러는 중에 페북은 4년전 사진을 환기시켜 주었다. 둘째가 만 1살 때다. 며칠 못 보았다고 엄청 보고 싶다.


남편 출근을 앞두고 한 편으로는 긴장도 된다고 했다. 대학원 졸업 후 한국에서 일해 본 적이 없어 더 그런 것 같다고.


결혼 전에는 그냥 커 보였던 사람이 이제 그 속마음이 읽혀서 때로는 어린아이 같기도 해서 '옆에서 챙겨줘야 하는데'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서울과 근교 집을 몇 군데 알아보고 내려가는 길. 마음이 분주하다. 분주하다고 해서 부산을 좀 떤다고 좋은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추운 계절이 오고 지만 우리 마음만큼은 뜨겁길 바라며, 다시 두 손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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