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은 조용하다. '아이와 함께 하는 분주한 일상이 결코 조용할 일 없는 삶을 살면서 뭐가 조용하다는 것이냐?'라고 반문하실지 모르겠다. 내가 말하는 조용하다는 의미는 사회적으로 역동적이고 진취적인 모습이 사라진 삶이라는 뜻이다.
멋진 전문직 여성으로 살고 싶었던 나는 엄마가 됐다. 사실 이 문장은 잘못됐다. 실은 엄마가 되고도 싶었다. 이제는 다시 일하는 여자 사람으로도 살고 싶다.
과연, 그 삶은 언제 어떻게 나에게 올까.
'그가 운다'는 글에 썼다시피 얼마전 남편과 함께 서울에 면접시험을 보러 올라왔었다. 남편은 같은 날 면접이 두 군데 있었고, 그 두 곳이 마침 가까운 거리에 있었고 첫 번째 면접을 볼 때 순번이 1번이어서 가능했던 두 번째 면접과 필기시험까지 분주한 하루였다. 두 번째 시험을 본 곳은 이후에 최종 면접을 한 번 더 보고 합격을 했고 이번 달 첫 출근을 했다. 첫 번째 본 면접은 그것이 최종 면접이었는데 최종 발표가 좀 늦게 났다. 그래서 지지난주 합격 통보를 받았고 남편은 첫 출근을 한 기관에 사직을 하고 발표가 늦게 난 기관에 임용을 기다리고 있다.
나는 한 기관에 면접을 보러 갔다. 1명을 모집하는 자리에 서류전형 합격자를 보니 31명의 명단이 주르륵 보였다. 31명 모두 면접을 보겠다고? 서류전형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지원한 사람은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시험을 보러 오라고 말하는 것 같아 뭔가 다른 곳과는 좀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의 망한 면접기는 다음과 같다.
면접 당일 아침, 순번을 기다리며 대기를 했다. 1번 대기실에서 2번 대기실로 가니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회의 테이블에 앉으라고 해서 4~5명씩 무리를 지어 우린 그렇게 앉아 있었다. 기관장을 만나러 온 민원인들이 곧 들이닥쳤다. 그와 만나게 해달라고 오래전부터 이야기해 왔는데 담당 부서가 계속 모른 척 일관하고 있다고 하며 오늘 꼭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다. 지역의 오래된 예술인들의 모임으로 보였는데 어떤 행사를 앞두고 기관의 지원과 협력이 기대했던 것과는 사뭇 다르고, 다른 단체를 지원하는 것과는 달라 차별한다는 생각으로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 면접을 준비해야 되는데 민원인과 직원 사이의 실랑이에 머리가 시끄러웠다. 담당 부서의 과장이 수습을 하러 나왔지만 수습은 되지 않고 변명으로 보이는 말들이 그들을 더 화나게 했다. 이 정도쯤 되자, 인사 담당자들이 우리를 다른 대기실로 이동시켰다.
드디어 차례가 되어 우리 그룹 4명은 일제히 면접실로 들어갔다. 면접관 5명 대 지원자 4명이 대화를 하는 식이었다. 면접관들의 질문을 듣고 있자니, 내가 제출한 자기소개서와 경력사항 등을 면밀히 살펴보지 않은 느낌이 단번에 들었다. 하긴 31명의 서류를 이들이 다 읽고 숙지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겠다 싶었다. 그중 당연 돋보이는 지원자를 뽑겠구나 싶었다.
면접을 다 보고 난 뒤, 대기실로 가방을 챙기러 왔는데 나와 함께 면접실에 들어간 한 지원자(유력한 합격 후보로 보였다)가 인사담당자에 묻는다.
합격 발표는 언제 나나요?
아마, 4~5일 정도 걸릴 겁니다. 그리고 문자로 공지가 갈 겁니다.
머릿속에 저장했다. 4~5일 후, 그리고 문자라 이거지.
애초에 모집 공고가 났을 때 10월 중 합격자 발표라는 말대로 면접을 본 후 4~5일, 특히 문자는 꼭 챙겨 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각종 문자 알림은 내 마음을 떨리게 했다. 아, 떨어졌으면 어쩌지? 혹시 합격 문자일까? 일주일 동안, 브런치에는 아예 들어올 수가 없었다. 집중은 오로지 그것, 합격 발표에 있었기 때문이다. 면접을 본 뒤 일주일이 지났는데 연락이 없다. 발표가 왜 이렇게 늦어지지? 기다려도 오지 않는 소식에 지쳐가고 있을 때쯤, 혹시나 해서 기관 홈페이지를 접속해 보았다. 합격 발표는 없었다. 남편이 채용 게시판의 목록을 쓰윽 보더니, 예전에 있던 모집 공고도 사라졌다며 혹시 발표가 났는데 우리가 확인하기도 전에 사라진 것이 아닐까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기가 막히게 네이버의 페이지 보관 기능을 활용해 관련 발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합격자는 응시자 13번. 내가 아니었다.
사과나무를 심었어야 했는데
불합격은 기분이 크게 나쁘지 않았다. 31명, 오죽 기고 나는 이들이 왔겠냐는 생각도 했고, 나보다 그 일에 더 적합한 인물이 어디 한둘이겠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말 어이없게 나의 일주일이 그냥 날아갔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마음을 비우고 내 일상을 그냥 살았으면 됐을 것을, 응시자에 대한 예의도 없는 곳에 합격 한다한들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그곳의 합격 발표를 그리도 기다렸던 걸까. 오로지 그것에만 마음을 집중했던 시간을 날려버린 것이 그렇게도 아까울 수가 없었다. 앞으로는 이런 우매한 짓을 하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서류 접수 확인, 서류전형 합격자 발표 모두 홈페이지와 문자로 동시에 했던 기관에서 당연히 최종 합격 발표도 문자로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따져 묻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나의 직장인 되기 도전기의 한 파트는 이렇게 끝이 났다.
원서를 내놓고 김칫국을 마시며 상상해 본다. 아니, 그래서, 출근을 하게 되면 집은 어디로 정해야 좋은 걸까? 아이들이 적응하기에는 괜찮을까? 남편의 출퇴근과 나의 출퇴근 길에 중간 즈음이 좋을까? 어머니께 아이들 하원 후 케어도 부탁드려야 하는데 오시기에 멀면 안 될 텐데... 갖가지 고려해야 할 내용들이 머리를 파고든다.
그러고 나서 깨닫는다. 아, 붙기라도 해야 유효한 생각들을 왜 먼저 하고 있는 거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면 될 것을. '늘 생각이 앞서서 일어나지도 않는 일을 붙잡고 근심하는 게 소용이 있냐.', '걱정한다고 키가 한자라도 늘더냐.'라는 어른들의 말씀이 귀에 맴돈다. 좌충우돌 경단녀의 새 일 구하기의 한 파트는 이렇게 매듭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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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쓴 이 글을 보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이 묻어나는 이 글이 새롭게 다가온다. 한 과정 한 과정이 소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