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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생미셸 Nov 01. 2020

제9화 승률 2.5%, 해 볼 만한 게임

나는 가뜩이나 더운 싱가포르란 나라에서 시시때때로 열불이 났다. 이 좁고 무덥고 후텁지근한 나라가 뭐가 좋다고 전세계 굴지의 내로라하는 기업들이 비싼 임대료를 버티며 비집고 다닥다닥 들어와 있는지 궁금하고 샘이 나서였다.


싱가포르에서 소위 3류대를 나오고도 한국에서 SKY대학을 나오고 미국에서 하버드 케네디 비즈니스 스쿨 MBA를 마치고 집안 배경까지 금수저인 최강 스펙자들만 들어간다는 굴지의 기업에 척척 붙는 싱가포르 친구들을 보면 배알이 꼴렸다.


개인적으로 느낀 싱가포르의 체감 취업 성공률은 100번을 지원해 30번 필기시험 기회를 얻고 10번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던 ‘바늘구멍’ 한국에 비하면 월등히 높았다.


물론, 내가 당시(2000년대 중반) '기레기' 및 '인터넷 황색언론' 등장 이전, 나름 인기 직종이었다는 기자에 도전했기 때문에 취업 체감 난이도가 월등히 높았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공기업이나 일반 대기업 서류 면접에서는 더더욱 문전박대를 당했다는 걸 생각하면 다른 분야라 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반면, 싱가폴에서의 성적표는 어떨까. 나는 영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80개의 지원서를 날린 뒤 10번의 인터뷰 기회를 통해 두 군데에서 오퍼를 받았다.


승률 2.5%인 셈. 반면 100번을 지원해 겨우 한군데에서 최종 합격을 했던 한국에서의 취업성공률은 1%에 그쳤다. 싱가포르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게다가 해외에서는 석사 졸업 후 취업까지 불과 1년 남짓이 걸렸다면, 한국에서는 학부 졸업 후 첫 직장에 들어갈 때까지 무려 3년여가 걸렸다. 인턴십 등으로 인한 긴 휴학으로 졸업을 미루고 또 미룬 걸 감안하면, 실제로는 3년 이상이 걸렸단 계산이 나온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토종의 성적표가 2.5%라면 나쁘지 않다. 난 사실 영어가 달리기에 한국보다 더 한 바늘구멍을 각오했었다. 만약 영어에 문제가 없는 조건이라면, 취업 피로도 및 시간은 확연히 줄어들 것이다. 만약, 취업비자가 필요없는 싱가포르 국민이라면, 취업의 기회는 대폭 확대된다.


우스갯 소리로 싱가포리안들은 대체로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투자은행, 다국적 기업엔 문제없이 들어간다. 그만큼 싱가포르에 들어와 있는 글로벌 기업의 숫자가 많고, 오피스 규모가 큰 덕분이다.


싱가포르에서의 풍부한 취업 기회는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히 낮은 실업률로도 설명된다. 싱가포르의 전체 실업률은 금융위기 여파가 사그라들기 시작한 2009년 이래 현재까지 1-2%대에 머무르고 있다. 사실상 완전고용이다. 2016년 2분기 실업률은 2.1%[1]로 집계됐다. 실업률이 3%대에 달하는 한국에 비해 월등히 낮은 수치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변되는 부의 양극화와 계급화 고착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청년실업률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기준 청년(15~29세) 실업률은 8.5%로 외환위기 당시인 1999년 10월(8.6%)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헤럴드경제


싱가포르가 한국보다 취업하기 쉬운 나라로 손꼽히는 데에는 법인세 인하와 영어 공용화를 통해 외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 양질의 일자리와 취업 기회를 큰폭으로 늘린 초대 정부의 정책 덕이 컸다.


한국의 박정희에 비견되는 싱가포르의 '독재자', 리콴유는영국과 말레이시아에서 독립, 작은 점에 불과한 무일푼 빈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국 자본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했다.


싱가포르 경제개발청(EDB)은 세계에서 가장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 외국 기업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EDB는 제1차 공업개발 계획(1961~1964)을 추진했다. 정부가 똘똘 뭉쳐 외국 기업 유치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했다. 제조업의 경우 관세를 3%까지 내렸으며, 법인세는 40%에서 4%까지 낮췄다. 수입 설비에 대해서는 아예 수입세조차 면제했다. 싱가포르가 단순한 무역·생산 거점에서 국제 금융과 물류 및 서비스 부문의 허브로 성장한 가장 큰 동력 중의 하나는 바로 영어가 싱가포르의 공용어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콴유는 국제적인 무역 거점으로서 싱가포르를 살리고 제1세계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밀어붙였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의 국민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1990년 1만2750달러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난해 싱가포르의 국민 1인당 GDP는 5만6113달러(약 6530만원)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


몇년 전 한국의 법인세가 17%대에 달하는 데도 내리긴 커녕, 정부가 법인세 인상안을 만지작 거리자,  영어 공용화 얘기를 꺼냈던 모 소설가가 대중의 집중포화를 맞으며 크게 욕을 먹었던 한국의 상황과는 대조적이다. 


개인적으로 나도 영어공용화는 반대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들을 다양하게 유치해 아시아 경제 비즈니스 중심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양질의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은 일자리 가뭄에 시달리는 한국이 눈여겨 볼 만 하다.


법인세 17%.

전세계 굴지의 기업들이 한국에 들어오기를 꺼리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했다.


한국이 1994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세계화를 추진한 지 22년이 지났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외국인에게 문을 걸어 잠근 채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세계화 전략을 취하고 있어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자칫 잘못하면 자국 이기주의로 비칠 수 있어 해외시장을 잃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다녔던 미국계 다국적기업은 한국의 과도한 법인세를 피하기 위해 정식 법인 형태가 아닌 직원 10명이내 소규모 유한회사 형태로 한국에 진출해 있다.


향후 한국 오피스 추가 설립과 관련 내가 질문을 할 때마다, 회사 디렉터나 CEO 등은 “한국은 법인세가 높고 시장이 크지 않아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답변을 내놨었다.


하지만, 동북아시아 매출의 상당 부분이 한국에서 나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이유는 높은 세금 및 기업하기 어려운 환경 등 탓에 진출을 꺼리는 것 같아 보인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2009년 90억2,190만달러이던 한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 금액은 2015년 50억4,200만달러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그만큼 한국 시장이 외국인들의 투자처로 매력이 없단 소리다.


이같은 한국의 폐쇄성은 우리가 수출에 주력하고 있는 제조업 보다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2015년 서비스업 노동생산성지수는 99.9로 2011년 100.1을 기록한 뒤로 5년 넘게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는 2010년을 100으로 놓고 산출한 수치다.


 게다가 해고와 재취업이 용이한 싱가포르의 유연한 노동시장 덕분에 외국인들도 노력만 하면, 기회의 문을 열 수 있다는 점에서 '코리아노마드' DNA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


헤리티지재단에 따르면 싱가포르의 경제자유지수 순위는 2016년 기준 홍콩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반면 한국은 27위다.


물론, 싱가포르도 최근 몇년 새 경제성장률이 둔화되면서, 보호주의가 불어 닥친 게 사실이다. 싱가포르 국민들을 중심으로, 외국인 고용을 줄이고 자국민 채용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이미 정부에서 관련 정책을 시행 중이다.


최근엔 기업들이 외국인을 뽑아 놓고도 취업비자 승인이 나지 않아 채용이 취소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멀쩡히 회사를 다니던 사람조차도 2년에 한번 갱신해야 하는 취업비자가 연장이 되지 않아, 별안간 일자리를 잃고 싱가포르를 떠나야 하는 외국인 숫자도 크게 늘었다. 예전보다는 취업이 어려워 진 것이 사실이다.


취업과 사직, 재취업과 해고가 빈번해 턴오버(Turnover)율이 비교적 높은 노동시장의 특성 때문에 입사 지원 방식도 우리나라에 비해 간단했다.


나는 주로 글래스도어(Glassdoor.com), 잡스디비(Jobsdb), 잡스트리트(Jobstreet) 등 구직 사이트를 통해 클릭 몇번으로 다양한 회사에 지원서를 '대량살포'할 수 있었다. 단순 클릭 몇번으로 불과 한달 안에 80여개의 입사 서류를 냈다. 그리고 열흘새 10군데에서 인터뷰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나는 운 좋게도, 영국에서 버밍험 대학을 졸업한 방글라데시안계 영국인인 디렉터에게 발탁돼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해외에도 학연이란 게 있는 모양인지 훗날 디렉터한테 왜 날 뽑았냐고 물었더니, "버밍엄 대학 출신이라 유능할 줄 알았다"란 답이 돌아왔다.


 회사는 싱가포르의 랜드마크인 마리나베이 호텔이 보이는 마리나 베이 입구의 최신식 빌딩촌, 마리나베이 파이낸셜 센터(Marina Bay Financial Center)에 자리잡고 있었다. 1시간 가량의 필기시험에서는 분석 보고서용 글쓰기와 기본적인 경제 및 경영 상식 문제, 몇가지 수학 문제가 나왔다.


이후 이어진 인터뷰에서는 싱가포리언 여자 매니저와 버밍엄 대학 동문인 디렉터가 나와 심층 압박 면접을 실시했다.


나는 한국에서 경제지 기자 생활을 하면서 익힌 폭넓은 산업 지식과 빠른 습득 능력, 논리적인 분석과 시장을 보는 통찰력에 대해 열심히 어필했다.


나름 빡센 전형이었지만, 깐깐한 서류, 3시간 가량의 필기, 라루종일 걸린 실무 면접과 2박3일간의 합숙면접, 최종 임원 면접까지...사람 하나 뽑는 데 엄청나게 '뺑이'를 돌려댔던 한국에 비하면 수월했다.


 이윽고 인터뷰를 본 지 일주일이 되던 날, 쇼핑몰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던 중 졸지에 2차 인터뷰를 보게 됐다.


여러 과정을 혹독하게 거치는 한국과 달리, 싱가포르에서는 대부분 두어 번의 인터뷰로 모든 것이 판가름 난다. 보통 모든 면접은 대면으로 진행되지만, 더러는 이렇게 전화 인터뷰만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었다.


 갑작스럽게 걸려온 전화였지만, 차분히 대답한 나에게 운명의 여신은 문을 열어 주었다.


토종, 흙수저 출신이지만 전세계 200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미국계 다국적 기업에 당당히 입사한 코리아 노마드, 미셸(Michelle) 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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