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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생미셸 Nov 01. 2020

제6화 장학금, 코리아노마드의 마중물

나는 운 좋게도 2010년 7월 영국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돼 돈 걱정 없이 영국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비록 격무에 시달리며 주경야독으로 어드미션을 준비하느라 내가 원했던 대학에 합격할 수는 없었지만 영국 10위권의 레드브릭(Red Brick) 계열인 대학교에서 오랜 유학의 꿈을 이루게 됐다.


2001년 미국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던 시절 우연히 놀러 간 버클리 대학 교정에서 난생처음으로 유학의 꿈을 키운 지 딱 9년 만의 결실이었다.


하지만, 빡빡한 기자 생활을 하며 영어 성적과 지멧(GMAT)점수를 준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원래 지멧 고득점을 받아 캠브리지나 옥스포드, 내지는 런던비즈니스 스쿨 같은 명문대학교 경영학 석사를 받을 계획이었다.


당시 국제부 기자로 근무했던 나는 내근을 해야하는 관계로 따로 '땡땡이'를 치며 시험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차장, 부장, 편집국장 등 모든 선후배들이 쌍심지를 켜고 있는 사무실에서 지멧 책을 꺼내 공부를 하겠다는 건 대단히 강심장에 저세상 텐션이 아니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종종 지멧 책을 한장씩 찢어 호주머니에 넣고 주차장에 내려온 뒤 어두컴컴한 차 안에서 문제를 풀곤 했다.


가뜩이나 하루에 기사 두세개를 처리하고 나면 다리가 후들 거리고 눈앞이 캄캄할 정도로 진이 빠지는데, 쉬는 시간마다 하는 공부가 신통할 리가 없었다.


결국 나의 지멧 성적은 600점대 초반을 맴돌기 일쑤였다.


한번은 주말에 40만원에 달하는 지멧 시험 등록비를 내고 시험을 신청해 놓고는 전날 야근을 하는 통에 까맣게 잊고 늦잠을 자다 큰돈을 날린 적도 있다.


지금이야 워크라이프 밸런스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나라에 살다보니 주말에 눈이라도 또렷이 보이지만, 당시엔 20대의 젊은 나이인데도 주말마다 좀비처럼 기운도 없고 눈도 침침했다. 주말은 주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에너지를 재충전하는 잠으로 채워졌다.


결국, 나는 700점 고지 달성에 실패했고, 명문대 석사 유학은 아쉽지만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대체로 영어점수 아이엘츠 7점 이상과 함께 지멧점수 700점대를 요구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나의 선택은 중상위권 대학으로 하향지원 하는 쪽에 모아졌다.


이런 주경야독 생활은 2008년부터 유학을 떠난 2010년 여름까지 거의 2년간 지속됐다.


밥벌이를 하면서 공부까지 한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각오와 희생이 필요한 일인것 같다.


당시 대학 동기 중에 영자 신문사 기자를 하던 친구가 있었는데 우린 둘만 모이면 "우리 꼭 '전직기자' 되자"며 탈출을 도모 했었다.


대학땐 여러 스터디를 전전하며 의욕 넘치게 "우리 꼭 기자되자"를 외쳤던 우리였다.


그 친구는 내가 유학을 가기 1년전 프랑스로 석사 유학을 떠났다. 그 친구도 그때의 탈출이 전환점이 되어 지금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기구를 다니며 남편과 아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렇게도 절실하게 퇴사와 탈출을 바랬던 우리는 결국 둘다 지금 '코리아노마드'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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