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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생미셸 Nov 01. 2020

제7화 브리티시패스포트, 실종된 아이덴티티

영국에 와서 정말 신기했던 것 중 하나는 “Where are you from?”이라고 묻는 나의 질문에 “I have a British passport.”라고 대답하는 이들이 많다는 점이었다. 버밍엄에서 첫 보금자리로 마련한 학교 앞 기숙사 빅토리아홀에서 만난 플랫 메이트 둘은 국적을 묻는 나의 질문에 하나같이 이렇게 답했다. 난 당연히 “영국인”이라는 답을 예상하고 물은 질문이었다. 물론 한국식 사고방식에서 이들 부모 세대들의 출신지가 어딘지도 궁금했기에 순수하게 던진 질문이었지만 ‘영국 여권’은 절대 ‘국적’에 대한 답은 아니기에.


유창한 영국식 영어 발음에 생활방식과 사고방식까지 뼛속 깊이 브리티시인 이들이 이렇게 답한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이곳에서 소위 ‘Asian’ (영국에서 아시안이라 함은 인디언 파키 스타니를 칭한다.)이라고 불리는 인디언 브리티시, 방글라 데시안 브리티시 이민 3세였기 때문이다.


이상했다. 다문화주의 사회를 표방하는 영국. 과거 식민지에서 넘어온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들과 과거 정책적으로 받아들인 세계 각지의 취업 이민자를 포함, 영국은 단연 미국 다음으로 꼽히는 인종의 용광로, 다문화사회의 표본인데 왜 이들에게 아직 영국은 자신들의 나라가 아닌 건가. 미국과 영국은 많이 달랐다. 미국에선 피부색이 검고 희고 노랗고를 막론하고 “어디서 왔냐”라고 물었을 때 인종에 상관없이 하나같이 미국인이면 “I am American.”이라고 당당히 답했다.


빅토리아홀에서 만난 ‘아시안’ 플랫 메이트들은 내가 그 질문을 던진 것에 대해 굉장히 거북해했고 그 후로 줄곧 가까워질 기회를 마련하지 못했다. 난 마치 인디언 브리티시, 방글라 데시안 브리티시에겐 던지지 말아야 할 금칙어를 사용한 무례한 플랫 메이트로 낙인이 찍힌 듯한 죄책감에 줄곧 마음이 찜찜했다.


2011년에 또 한 번의 런던 올림픽을 치를 세계 속의 강대국 영국에서 문명사회와 어울리지 않는 ‘약탈’ ‘폭동’ ‘소요’ 급기야 ‘물폭탄’과 ‘플라스틱 총’이란 단어들이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도덕은 실종되고 치안 불안이 극에 달하고 거리엔 모자티와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십 대 이십 대의 ‘Hoodie’ 들이 ‘rioters’란 이름으로 이성을 상실한 채 날뛰고 있다.


 2005년 런던에서 7.7 테러 사태를 두 눈으로 지켜볼 때만 해도 이처럼 실망스럽진 않았는데 일부 테러리스트들의 폭탄테러 사건과는 다르게 런던 버밍엄 맨체스터 리버풀 등 영국의 도시 곳곳을 휩쓸고 있는 이번 폭동 사태에선 영국이 총체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씁쓸한 좌절감을 감출 수가 없다.


제레미 리프킨이 ‘유러피안 드림’에서 말한 것처럼 유럽은 약자에 대한 배려와 사회적 합의와 협력, 지역공동체를 통해 제대로 된 유럽식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그는 미국에 대한 대안으로 유럽을 가리켰지만 내 생각엔 유럽 역시 미국과 마찬가지로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2010년 프랑스 남부의 시골 마을, 까르까손(Carcasonne)에서 유리창이 산산조각이 나고 차 문이 활짝 열린 채 짐들을 몽땅 도둑맞으며 인생에서 처음으로 처참한 범죄의 희생양이 됐을 때,,, 시청과 경찰서를 출근하듯 드나들면서 일말의 도움과 관심을 구걸하면서 받았던 차가운 외면과 무관심에… 범죄 장소를 몇 번 차로 돌아본 뒤 그저 “It is because of immigrants’라며 손쉬운 변명을 앵무새같이 되풀이하는 프랑스 경찰들을 보면서… 이미 유럽이 그 ‘유럽’이 아니란 실망감과 분노로 치를 떨긴 했었다.


 하지만 영국은 프랑스보다 더 날 실망시킨다. 마치 억눌려 왔고 오랫동안 연기됐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한 듯 이번 폭동은 예견된 수순과도 같았다.


 내가 1년을 지낸 버밍엄 얘기를 좀 하자면… 버밍엄 인구의 50% 이상은 인디언 방글라 데시안 파키 스타니 등 아시안과 흑인이다. 이들이 과거 식민지에서 싼 값에 노동자로 데려온 이들의 조상들이 이곳에 뿌리를 내렸고 그들의 2세 3세 4세 (?) 등이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곳이다. 산업혁명 시절부터 영국 제조업이 무너지기 전인 1990년대 초반까지… 버밍엄은 인근 코벤트리와 함께 자동차의 메카로 통했다. 미국에 디트로이트가 있다면 영국엔 버밍엄 코벤트리가 있었다. 하지만 영국의 제조업이 공동화되고 자동차 강국의 명성이 무너지면서 영국의 자존심 랜드로버가 인도 타타에 팔려나갈 정도로 자동차 산업은 퇴로를 걸었고 버밍엄의 경제난도 점점 가중됐다.


그 사이 버밍엄의 토박이나 다름없는 인디언 브리티시, 방글라 데시안 브리티시, 파키 스타니 브리티시, 일부 아프리카계 이민자들 중 상당수는 실직과 생활고에 시달렸고 더구나 이들의 자녀들은 영국인이지만 영국인이 아닌 ‘아이덴티티의 실종’ 속에서 사회와 동화되지 못하고 거리를 활보하는 갱으로 양아치로 그들만의 그룹을 형성해 갔다.


물론 버밍엄엔 그리고 영국엔 성공한 이민자들이 많다. 버밍엄에서 집을 보러 다니면서 만난 집주인 2명 중 1명은 파키 스타니였고 백인들보다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아시안들이 더 많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인디언 브리티시 등은 넘치고도 남는다.


하지만 이들에겐 아직도 ‘British Passport’가 있을 뿐 ‘British Nationality’는 없다. 난 이번 폭동 사태가 어찌 보면 영국인이면서도 영국에 동화되지 못하고 잠재적 범죄자, 가난한 불법 이민자 취급을 받으며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소외된 이민자들의 불만과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사건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범죄 심리학적으로 볼 때 마이너리티들은 군중 심리와 집단주의에 경도된 불법행위를 저지르면서 권력과 힘을 얻은 것과 같은 착각을 갖는 다고 한다. 이들 십 대 이십 대들에게 영국이 단지 British Passport를 찍어주는 그들의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 ‘내 나라’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과연 이들의 정체성과 하나인 이곳에서 지금과 같은 파괴적이고 무자비한 폭동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을까.


난 이번 사태가 단순히 CCTV와 사진, 동영상에 찍힌 이들의 얼굴들을 샅샅이 찾아내 모조리 감옥에 가둔다고 해결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랜 시절 곪고 곪은 영국 이민정책의 모순의 일부가 이번 폭동을 통해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라면 모를까.


 영국 정부가 이민자들을 대하는 구체적 정책이 어떤 건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동안의 내 작은 경험들에 의하면 영국의 이민자들은 그들만의 커뮤니티, 소위 ‘끼리끼리’ 뭉쳐 다니면서 절대 영국인으로 제대로 녹아들지 못한 마이너리티로 오랜 세월을 살아온 것처럼 보였다.


영국은 그동안 겉으론 다양한 커뮤니티의 공존을 부르짖으며 아시안 아프리카계 무슬림 등 다양한 커뮤니티로 이민자들을 분류하는 정책을 펴 왔다. 그들의 당초 목표는 물론 말처럼 쉬운 ‘다양한 문화의 공존’ ‘다양한 커뮤니티에 대한 존중’이었을 게다.


하지만 내가 느낀 영국의 이민 정책…그리고 이민자들을 대하는 그들의 정서는 ‘타자화’ ‘주변화’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용광로는커녕..."난 당신들의 존재를 묵인하겠으나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영국 여권은 주겠으나 영국인으로는 인정할 수 없다"라는  '모래알' 정책이라면 모를까...


결국 영국인도 인도인도 아프리카인도 아닌 경계 어디쯤에서 방황하고 차별받던 이민자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 고립 속에 영국을 지역적으로 나누고 또 동네로 나누고 구역으로 나누어 왔을 것이다. 아마 영국만큼 인종별로 정확하고도 다양하게 끼리끼리 무리 지어 사는 이민사회는 드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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