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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26. 2022

반죽이

아이가 이름을 지어주다

오드리햅번.

나와 생일이 같다는 이유로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배우다.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스무 살 무렵, 새벽이면 영화 관련 라디오를 들었다.

그 당시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영화 잡지를 매달 사서 기자처럼 글을 읽었고 평론가처럼 글을 써댔다.

라디오는 새벽 2시에 시작하기 때문에 듣다 보면 비몽사몽이 되기 일쑤였다.

그날도 잠결에 오드리햅번의 이야기가 시작되던 터였다.

어쩌구 저쩌구 블라블라..자장가...블라블라...

"오드리 햅번은 0000년 5월 4일에 태어났습니다"

엥?

잠결에 우연히 알게 된 그녀의 생일. 그것은 나의 생일이기도 하다.

닮은 곳은 하나도 없지만 어쩐지 생일이 같다는 이유로 난 그녀와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나는 그녀에게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관심을 가지니 그녀의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흑백영화를 찾아봤고, 영화 속 그녀의 날렵한 허리선에 감탄했으며 허스키한 목소리에 놀랐다.

나이가 들어서는 아프리카에 봉사를 하러 다니던 그녀.

주름은 졌어도 어디 하나 고친 곳 없이 자연스럽게 늙어 가는 그녀의 모습이 근사했다.

화이트 셔츠만 걸치고 있어도 빛이 나던 그녀의 흑백 사진은 어느새 나의 로망이 되었다.


내 로망 그녀는 큰 눈에 짙은 쌍꺼풀을 가지고 있다.

서양인들은 어떻게 그런 구조의 눈을 가지게 되었을까.

눈을 떴다 감았다 할 수 있게 해주는 눈꺼풀이 눈의 구조에 따라 주름이 생기게 되는데 이것이 쌍꺼풀이다.

서양인들은 유독 안구 윗부분이 푹 들어가 있어, 눈꺼풀이 그곳으로 더욱 깊이 들어가게 되는데 그래서 커다란 쌍꺼풀이 생기게 된다.

볼 수록 신기하다.

움푹 들어간 짙은 쌍꺼풀.




우리 할머니 눈은 강아지 눈이었다.

눈꺼풀이 안구를 뒤덮어 눈동자가 반만 보이던 순둥순둥한 강아지 눈.

이런 것도 유전인가.

재작년쯤 아빠의 눈동자가 방향을 잃고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동시에 한 곳을 바라보지 못했다.

눈꺼풀이 눈을 덮었다.

나의 아빠도 강아지 눈이 되었다.


어느 날 아빠는 아무 말도 없이 쌍꺼풀 수술을 하고 오셨다.

눈이 영 불편했던 거다. 의료명 상안검 수술.

눈꺼풀이 눈을 덮어 일상에 지장이 있으므로 65세 이상은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눈에 의료용 테이프를 붙이고 벌건 살들이 보일랑 말랑 하던 아빠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아빠의 순둥순둥한 눈을 잃은 것 같아 내심 속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예상외로 눈은 금세 자리를 잡았고, 늘어진 눈꺼풀이 워낙 많았던 건지 눈은 언제 수술을 했었는지도 모를 만큼 금방 자연스러워졌다.

"아빠, 수술 안 했으면 어쩔 뻔했어. 너무 잘 됐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내 로망 그녀처럼 자연스럽게 늙어가리라고 결심했던 내 안에 균열이 일어난 것은.


내 눈은 크다. 아니 컸다.

물론 서양인들만큼은 아니지만 쌍꺼풀도 적당하게 있었고,

배두나 눈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은 적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눈이 침침하고 뻑뻑했다. 저녁이면 눈이 피곤해 눈 찜질을 하기도 했다.

'눈이 왜 이러지'

노화가 가장 빠른 곳이 눈이라고 한다.

몇 년 전부터 돋보기를 쓰는 나이가 되었다고 안과에서 들은 적도 있다.

자꾸 눈에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눈꺼풀이 점점 내려온다. 어 쌍꺼풀이 풀렸다. 강아지 눈이 되려 한다.


강아지 눈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건지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건 분명 유전이구나. 아, 그럼 나도 언젠가는 강아지 눈이 되는거네'

이런 생각에 이르렀을 때 난 조용히 수술을 했다. 아빠처럼 아무 말 없이.

'말 안 하고 수술하는 것도 유전이군'

그날 이후로 시뻘건 나의 눈꺼풀은 나조차도 볼 수가 없었다.

이건 뭔가 잘못된 거야. 울고 싶었지만 눈이 더 부을까 봐 울 수도 없었다.

아이는 이런 내 눈을 차마 볼 수 없었는지 집에서도 선글라스를 써달라는 부탁을 했다.

아이에게 달라진 엄마 모습이 가히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를 생각하며 기꺼이 선글라스를 껴주었다.






"엄마. 엄마 눈 반죽이야"

엥? 반죽이? 처음 들어보는 단어지만 알 것 같았다.

마치 내 눈이 밀가루로 마구 반죽을 해 놓아 어떤 형태인지도 모르겠다는, 어떻게 형용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의미 아니겠어. 나 혼자 이렇게 추측하며 피식 웃었다.

엄마의 자연스러운 눈을 잃은 아이의 마음을 익히 알고 있기에 더 이상의 대꾸는 하지 않았다.

아이는 그날 이후로 나를 엄마 대신 '반죽이'라고 불렀다.

'그래 너도 이름 짓는 걸 좋아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나는 순순히 반죽이가 되었다.


시간이 꽤 흐른 지금도 아이는 나를 반죽이로 부른다.

이제는 우리 둘 사이에서만 통하는 암호 같아 그 이름이 정겹기도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말했다.

"어. 여기도 반죽이가 있네"

뭐? 엄마의 애칭이 반죽이가 아니었어?

반죽이가 무얼 뜻하는 건지 궁금해 얼른 탭 화면을 보았다.

거기에는 움푹 파인 눈에 커다랗게 쌍꺼풀이 있는 서양인의 눈이 있었다.

오드리 헵번을 떠올리게 하는 커다란 쌍꺼풀을 가진 서양인의 눈.

'너, 부담스럽게 커진 엄마 눈을 보고 서양인들의 커다란 쌍꺼풀을 떠올린 거였구나'

그런 거였구나. 이제 풀렸다. 반죽이의 미스터리가.

미안하다. 엄마 눈이 반죽이가 되어서. 그렇지만 엄마도 강아지 눈이 되기는 싫었어. 이해해주겠니?


간절히 기도한다. 부디 나를 닮아 내 아이의 눈이 강아지 눈이 되지 않기를. 아니 반죽이가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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