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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Apr 17. 2023

조용한 아이가 좋다

요 며칠 날씨가 이상하다. 벚꽃이 피었던 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쌀쌀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이제 아이도 제법 자랐으니 환절기 때마다 오는 감기는 걸리지 않겠지. 안일한 생각을 한 죗값을 받는 걸까. 고새 잠깐 콧바람을 쑀다고 감기에 걸려버렸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뜨끈함이었다. 




책을 읽던 아이가 의자에서 잠이 들었다. 방에서 컴퓨터를 하던 나는 유난히도 조용한 기운에 살짝, 아주 살짝 거실을 향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어라. 아이가 잔다. 쿨쿨. 제대로 잠이 들었다. 추웠는지 방에서 이불을 끌고 와 돌돌 말고 앉아서 자고 있다. 이게 웬 떡이냐. 이 시간에 이렇게 고요하다니.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조용히, 아주 조용히 나만의 시간을 가졌다. 아이가 잠들면 나도 같이 잠드는 패턴이라 뜻밖에 찾아온 저녁 시간의 고요함은 미라클 모닝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아이가 안 일어난다. 아휴. 덩치가 커버린 아이를 번쩍 들어 옮길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깨웠다. 일어나. 방에 가서 자야지. 읽던 책이 툭 떨어졌다. 곤한 잠을 깨웠는지 아이가 울먹거렸다. 꿈이라도 꾼 건가. 어서 들어가자. 방으로. 몇 번의 부름에 겨우 몸을 일으키더니 침대에 눕는다. 


추워 엄마. 추워. 침대에 눕히고 얼굴을 만져보니 볼이 뜨겁다. 엥. 이마도 뜨겁다. 이건 뭐지. 오랜만에 느껴보는 뜨끈함. 순간. 다 지나갔다고 생각됐던 코로나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독감도 왔다 갔다 했다. 아니야 아니야. 방정맞은 생각은 하지 말자. 급하게 타이레놀을 갈아먹였다. 자라자라. 


일 년에 두어 번 오는 감기. 그때만 조용한 아이. 솔직히 말하면 아이가 일찍 자주니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이런 마음에 벌이라도 내리는 건지... 아이는 그날 밤 자다가 벌떡 일어나 엉엉 울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봐도 말을 못 하고 서럽게 울었다. 물을 마시자 조금 진정된 아이가 겨우 잠들었다. 휴. 이번엔 한 시간쯤 지나자 다시 벌떡 일어나 누군가랑 대화를 한다. 나는 아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조카랑 아주 심각한 대화를 하는 중이다. 아니 이건 무슨 일이니. 몽유병이라도 걸린 거니. 한참을 떠들던 아이가 비틀대며 쓰러져 다시 잠을 잔다. 얼굴을 만져보니 열은 내린 듯했다. 잠깐 잠을 자던 아이는 또다시 벌떡 일어나 덥다고 난리였다. 선풍기를 틀고 창문을 연다. 드디어 열이 내렸구나. 축축한 옷을 갈아입혔다. 자라자라.


잠을 잔 건지 만 건지 모르는 아침이었다. 퉁퉁부은 눈으로 일어나 죽을 끓이고 아침을 먹이려는데 웬 걸 쌩쌩한 아이가 방에서 걸어 나온다. 뭐니 너. 


지난밤 잠깐의 자유시간을 주고 밤새 못 자게 만든 너. 

조용한 아이 좋아했다가 오랜만에 식겁한 나.

미안하다. 이제 시끄러워도 좋으니 아프지만 말자.




타이레놀만 갈아 먹인 엄마는 혼자 찔려하다가 주말에 병원에 갔다. 며칠 동안 쏟는 코피에 아이가 먼저 병원에 가야 한다고 읍소했기 때문이다.(나 엄마 맞는지 모르겠다) 가려면 일찍 갈 것이지 꼭 감기 끝물에 병원에 가곤 한다. 뭐. 결과도 한결같다. 알레르기. 다 안다고 여겼으면서도 결국 또 같은 결과를 듣자 아무렇지도 않은 양 마음이 편해진다. 이 약 5일 치만 먹으면 알레르기는 뚝 떨어질 테니. 잠깐 조용한 아이를 바랐다가 일주일 내내 기침과 코 훌쩍이는 소리에 두 손 두 발을 다 든 엄마다. 곧 종알종알 하루가 다시 시작된다. 시끄러운 아이가 코 막힌 아이보다는 낫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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