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다 Jun 09. 2023

매일 저녁 상추 50장을 먹으면

요즘 나의 저녁 메뉴는 풍성한 샐러드다. 풍성함이 도대체 얼만큼이냐고 묻는다면 족히 상추 50장은 된다고 말해주겠다. 많죠? 맞다. 너무 많다.


그렇다고 무슨 텃밭 농사를 짓는 건 아니고, 얼마 전 우연히 텃밭 농사를 짓는 지인에게 세 봉지의 샐러드거리를 얻었고 곧이어 엄마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상추와 치커리, 시금치를 얻었다. 


코끼리도 아니고 이걸 언제 다 먹는담. 나의 저녁식사 시간은 나와 아이 단 둘인데 말이다. 그날로 결심했다. 샐러드거리가 다 사라지는 날까지 나는 매일 저녁 풍성한 샐러드를 먹겠다고.


샐러드 만드는 법

흐르는 물에 한 장 한 장 씻어 놓은 야채들을 칼로 먹기 좋게 잘라 집에 있는 가장 큰 접시에 담는다. 그 위에 소금과 후추를 칙칙 갈아주고 올리브오일을 한 바퀴 두른다. 미리 절여 놓은 토마토 마리네이드를 몇 알 올려주고 쫄깃한 질감의 파스타를 후드득 뿌리면 완성이다. 


매일 저녁 우리 식탁 가운데 자리 잡는 풍성한 샐러드 한 접시. 그 옆으로 김밥이 놓일 때도 있고(말 그대로 밥에 김을 말았음) 구운 소고기가 놓일 때도 있다. 딱 이 정도 심플한 차림으로 아이와의 저녁식사를 준비한다.


아이로 말할 거 같으면 샐러드도 나름 잘 먹는 아이다. 거기에 고기 몇 점 구워주고 틈틈이 "야채도 같이 먹어"라는 말을 해주면 자동으로 풀때기를 입으로 넣는다. "오호. 야채도 잘 먹는데" 추임새 한 방이면 야채들이 줄줄이 비엔나처럼 입으로 끌려 들어가는 진풍경을 보게 된다. 


일주일을 내리 풍성한 샐러드를 먹으니 이제 슬슬 질릴 때인가. 어제는 급 메밀을 삶아 풀때기 위에 엄청난 양의 메밀면을 올리고 들기름을 한 바퀴 둘렀다. 간장 같은 건 따로 없고 오로지 풀과 메밀면 그리고 계란후라이 두장을 올렸다. 그렇게라도 안 하면 아이가 기겁하니까, 또 단백질도 먹어야 하니까. 엄마 마음이 이렇습니다.


난 이렇게 아무런 간이 베이지 않은 음식을 좋아한다. 심심한 간으로 메밀의 쫀득거림을 느끼고 싶고 사각거리는 풀때기들을 연신 입으로 씹는 느낌이 꽤 뿌듯하다. 그런데 어제는 너무 과한 양의 샐러드를 담았는지 한참을 먹다 보니 입이 아플 지경이었다. 게다가 메밀은 무슨 정신으로 3인분이나 삶았는가. 먹다 지친 아이는 슬그머니 자리를 뜨고 식탁엔 어떤 여자가 연신 풀을 뜯으며 메밀을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 무리데스네. 거기에 맥주 한 잔까지 더했으니 배는 뭐 빵빵 그 자체였다. 


풀을 먹고 배가 다 부르네.라는 생각을 하며 설거지를 해치웠다. 그 사이 아이는 과일을 한 아름 먹고 있는데... 그렇게 맛이 없었니...


무리해서 너무 많은 양의 샐러드와 메밀을 먹었는지 잠을 잘 시간인데도 배가 가라앉지 않았다. 와. 샐러드를 먹고 이렇게 배불러 보긴 처음이야. 샐러드 메밀/샐러드 메밀/샐러드 메밀. 이런 조합으로 내 배를 가득 채우고 있는 샐러드 메밀 지층이 내 배 안에... 그러면서도 내일은 어떤 조합으로 샐러드를 먹어야 하나 생각을 하다가 겨우 잠들었다는 이야기. 


아직도 커다란 두 봉지의 샐러드 거리가 남아있다. 으악. 하지만 난 샐러드를 사랑한다. ㅋㅋㅋ



작가의 이전글 오디오북이 되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