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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Oct 12. 2023

분갈이하는 아빠

1949년생인 우리 아빠. 내 나이도 이제 세는 걸 잊어버려 아빠나이는 70 중반으로 기억하고 사는 딸이지만 아빠의 주민번호는 외우는 딸이다. 자상함과 다정함이라곤 애초에 찾아볼 수 없었던 아빠가 변하기 시작한 건 6년 전부터였다.


술을 좋아한(정말 좋아했나 모르겠지만) 아빠와 엄마는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불 같은 성격이기도 했지만 술에 취해 들어온 아빠는 주사가 심했다. 참고 살던 엄마는 종종 그 꼴을 보지 못하고 폭발했다. 그러면 어김없이 집 안엔 무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술이 싫었다. 도대체 왜 마시는 거냐고 나는 안 마실 거라고 그리고 술 마시는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었더랬다. 그랬었다. 그러던 나는 마흔 즈음 술맛을 알아버렸고 술을 좋아하게 되었고 심지어 그렇게 결심했던 술 마시지 않는 남자와의 결혼에 실패했다. 남편은 술을 마신다. 심지어 아빠를 닮았다. 그러니 나 또한 엄마와 닮아간다.


그렇게 피하고 싶던 엄마, 아빠의 모습이 나의 모습이 되었다. 이건 대물림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간절히 피하고 싶던 웅덩이에 나도 모르게 빠지게 된 걸까. 설마 이건 운명인가.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린 시절의 내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이 묘하게 교차한다.


그 안에서 엄마를 본다. 팍팍한 시절을 참고 견디며 살아온 엄마의 모습.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 모습을 떠올리면 그 안엔 어느새 내가 앉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엄마와 나는 말하지 않아도 통한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굳이 엄마에게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공기의 질감만으로도 귀신같이 알아채고 걱정의 뉘앙스를 풍긴다.  


애주가였던 아빠는 건강이 안 좋아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한다. 술을 좋아하게 된 나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클지 알기에 아빠를 생각하면 아이러니하게도 서글픈 마음이 든다. 


밖으로만 돌던 아빠는 술을 끊고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 남자는 여성스러워지고 여자는 남성스러워진다더니 믿을 수 없었던 어른들의 말이 그대로 현실이 되었다. 급기야 아빠는 화분을 집에 들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로지 엄마만의 영역이었는데 이제 엄마의 영역을 침범하는 중이다. 엄마의 영역에서 자그마한 아빠만의 화단을 가꾸는 중이다. 그리고 꽤 깐깐한 식집사가 될 싹이 보인다.


분갈이를 해본 적 없는 아빠가 나와 분갈이를 함께 하며 자신의 뜻을 고집한다. 식집사 생활 10년이 넘은 나는 콧방귀를 지만 내색할 순 없다. 결국 부녀간의 아웅다웅은 식집사 대장 엄마가 나타나 한 마디로 제압해 버린다. 그건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속이 다 시원하다.


그나저나 아빠는 점점 엄마가 되어가는 것 같다. 설거지도 도맡아 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 신경 쓰지 않았던 세세한 집안일들을 살피느라 늘 바쁘다. 반면 엄마는 친구들을 만나 여기저기 놀러 다니느라 하루가 멀다 하고 외출 중이다. 어른들이 하시던 말씀이 맞다는 걸 삶에서 배우는 중이다.


나에게도 이런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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