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잘 먹는다고 좋아하던 시기를 지나 꿀떡굴떡 목구멍을 넘어갔던 음식들이 철썩철썩 아이의 배와 다리에 달라붙게 된 것이. 아이 음식만큼은 기름 한 방울 쓰지 않으려 노력했는데 어디에 구멍이 났던 것일까. 이런 생각을 꼬리 잡듯 따라 올라가 보면 2년 전 코로나 시기가 보인다. 그리곤 모든 탓을 조용히 코로나에게 돌려버리고 만다. 아니다. 사실 코로나는 잘못이 없다. 엄밀히 말하면 코로나가 데리고 온 한 사람에게 잘못이 있을 뿐이다.
학교를 가지 못하게 되자 제일 먼저 먹고 자는 시간이 흐트러졌다. 그렇다고 금세 살이 찌는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남편이었다. 먹는 것에 있어 나와 철저하게 맞지 않는 애 아빠의 식성이 아이에게 옮겨 붙었다. 평소 늦게 퇴근하던 사람이 코로나 덕분에 일찍 들어오기 시작하자 5시 반에 저녁을 먹은 아이는 아빠가 돌아온 9시쯤 아빠와 똑같은 양의 저녁을 먹곤 했다. 그때 말렸어야 했는데... 평소 저녁 시간에 아빠를 못 봐왔던 아이는 그 시간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 그리고 신나게 먹었다.
좋은 습관을 들이는 데는 몇 년이 걸리지만 나쁜 습관은 순식간에 달라붙는다.
평소에 먹지 않았던 초코파이와 과자를 밤마다 먹었다. 하루 한 개, 그래... 아빠와 좋은 시간이니까... 그 습관이 이렇게 오랫동안 지속될 줄은 몰랐다. 이쯤 되면 남편이 아니라 웬수라고 부르고 싶다. 남편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밤이 되면 과자를 까먹고 탄산을 먹어야 하는 사람. 몇 번이나 그런 습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지만 십 년이 지나도록 고쳐지지 않았다. 오히려 탄산을 먹어 본 적이 없던 내가 콜라를 마시게 되었다. 냉장고를 열면 콜라가 보이니 나도 모르게 한 캔을 따서 마셨다. 경각심이 느껴져 콜라를 탄산수로 바꿨지만 그나마도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줄 것 같아 끊어버렸다. 어른인 나도 이런 상태인데 아이는 말해 뭐 할까.
그 사이 인바디검사의 결과지를 받아 들 때마다 야금야금 올라가던 비만수치들. 말로 경각심을 주려했지만 쓰디쓴 말은 달달한 간식을 이기지 못했다.
더 이상 집에 과자 사 오지 마. 탄산도 안 보이게 해 줘.
이런 나의 부탁에도 남편은 나쁜 습관을 고치지 못한다. 아무리 신경을 써도 남편이 일찍 들어오면 차곡차곡 쌓았던 좋은 습관은 한낱 해변의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지고 만다.
그렇다면 내 손으로 없앨 수밖에...
젤리 한 봉지가 눈에 보인다면 기어이 봉지를 뜯어 제 입에 한 알을 넣고야 마는 아이를 보며 제일 먼저 달달한 간식퇴출을 결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