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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 Nov 28. 2022

아빠는 칸트

이 남자가 사는 법

아침 7시. 어김없이 티비 소리와 함께 요란한 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6시부터 시작된 아빠의 아침 운동 시간.

짝짝짝 이번엔 마무리 박수소리가 나기 시작한다.

'이제 거의 운동을 마쳤군"

정확히 7시 20분이다.

내 입가엔 잠결에도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부스스하게 일어나 양치를 하고 주방으로 향한다.

굿모닝.

시원한 물 한잔을 마실 시간이다.

그 시간 아빠는 각종 야채를 정성스럽게 칼질하고 있다.

정확히 7시 30분이다.


아빠의 아침 식사 메뉴는 주로 야채와 과일이다.

이렇게 말하면 뭐 채식을 하시는구나 싶겠지만 그 양을 보면 다들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야채 가짓수만 16가지에 두어 가지의 과일이 더 포함된다.

야채와 과일을 다 드시면 단백질 파우더와 콩가루, 꿀이 기다린다.

앗, 칼슘의 보고라고 불리는 마른 멸치도 대령한다.

여기에 무려 한 시간을 데운 따뜻한 우유 한잔과 삶은 계란 하나로 아침 식사를 마무리한다.

이 식사가 끝나는 데는 정확히 30분이 걸린다.

조용한 아침, 누가 차려주는 밥이 아닌 매일 손수 차리는 본인만의 아침식사 루틴이다.






아빠는 시간관념이 정확한 분이다.

약간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정확한 걸 추구한다.

아침 루틴만 봐도 알겠지만 시간대별로 하는 행동의 패턴이 있다.

어릴 때는 이런 아빠의 시간 강박증이 우리를 괴롭혔다.

어디라도 외출할라치면 정확히 몇 시 몇 분에 나와 기다려야 했고 조금이라도 늦으면 

불같은 화를 내시곤 했다. 

아빠의 이런 성향을 너무나 잘 아는 우리 가족은 누구나 조금씩 강박증을 앓고 있는 듯하다.


뭐 그렇다고 강박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너무나 강박 교육이 잘 되어 있어 우리 형제는 지각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다.

친구들과의 사소한 약속이라도 10분 먼저 나가 기다리는 건 기본이다.

강박증 유전자가 지각이라는 걸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아빠를 보면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칸트.

근대철학을 아우르고 현대철학에 지대한 공로를 한 인물.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부분이 있다.


칸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매일 정확히 오후 3시 30분에 산책을 했다고 한다. 회색 옷을 입고 등나무 지팡이를 짚은 칸트가 나타나면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보고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 지금도 사람들은 칸트를 기념해 그 길을 '철학자의 길'이라고 부른다.



어, 이분 어디서 많이 본 분이다.

혹시 우리 아빠 아니세요?


더 놀라운 건 칸트와 아빠의 키 또한 같다는 것. 157cm


이제는 강박 주의자 아빠의 아침 시간을 보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혼자 중얼거리듯 "칸트 씨 안녕히 주무셨어요"라는 인사를 한다.

그리곤 혼자 큭큭 대며 웃는다.

재미있는 아침이다.

요 며칠 칸트를 더욱 알고 싶어졌다.

책이라도 빌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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