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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key Feb 13. 2024

하이힐, 동경


 또각 또각 들리는 명쾌한 하이힐 소리에 졸음에 빠지던 정신이 듭니다. 경쾌한 발걸음과 선명하게 귀에 들리는 구두 소리,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오후의 소리입니다. 도회적인 소리를 묻는 다면 단연 하이힐 발걸음 소리입니다. 그만큼 제게 도시의 회색 느낌을 느끼게 해주는 건 하이힐만한 게 없습니다.


 어른에 대한 동경과 도시 야경을 좋아하게 된 건 중학교 때부터였을 겁니다. 당시 살았던 아파트가 13층이었는데 밤이면 밖을 바라보며 한참 야경을 보곤 했습니다. 그 야경을 만드는 수많은 불 빛 속에 하나를 응시하며 미래의 나를 상상했었습니다.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도시의 남자, 뭐 그런 느낌. 그리고 그런 상상은 부모님을 보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아버지는 늘 근사한 슈트 차림에 진한 코롱을 뿌리셨습니다. 어머니는 늘 하이힐이 아니면 시내로 가질 않으셨죠. 부모님은 차려 입는 것이 외출의 기본 전제였습니다. 옷차림이 좋아야 어딜 가든 문제가 없다고 어릴때부터 말씀하셨습니다. 덕분에 초등학교 때 코듀로이 슈트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부모님은 차려입는 것을 좋아하셨고, 저에게도 어릴 때부터 잘 입히시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이힐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가 늘 차림의 끝에 하이힐을 신으셨던 것에서 올라옵니다. 또각또각 아파트 복도에 울리는 어머니의 하이힐 소리는 명쾌하고 멋지고 근사했습니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기대했던 건 하이힐 소리였습니다만, 생각보다 제 주위에 하이힐을 신는 여자분은 많지 않았습니다. 패션 회사이기 때문에 더 없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트렌디한 스타일을 제쳐두고 매일 정신없이 쏟아지는 업무에 차려입는 건 사치일 때도 가끔 있거니와, 제가 패션 업계에 들어올 때부터는 여성분들이든 남성분들이든 슬랙스에 아디다스 스탠스미스를 신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쿨(Cool)함의 척도였거든요. 저는 참 싫었지만.


 30대 후반에 들어서고는 첼시 부츠의 매력을 깊이 느끼게 되어 여러 스타일을 사들입니다. 그 중 시크한 스타일과 잘 어울리는 힐이 남성 구두치고는 얇은 부츠를 구매했습니다. 그 부츠를 신을 때는 카라가 얇은 셔츠와 재킷, 그리고 블랙 컬러에 샤프하게 떨어지는 매력의 울 트라우저를 입습니다. 젠더리스가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브랜드로 치면 생로랑이 떠오릅니다. 전 그 착장을 슈트 다음으로 즐기고 좋아합니다.

 그 스타일에 첼시 부츠를 신고 걸을 때 어디 선가 소리가 들립니다. 또각 또각. 멀리서 들리는 그 소리는 점차 가까워집니다. 다름 아닌 제 발 끝에서, 명쾌한 하이힐 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지하철 플랫폼을 걷는 저는 잠시 멈추고 거울을 봅니다. 도시를 닮은 블랙과 그레이를 한데 섞어놓은 스타일의 남자가 있습니다. 도회적인 말이 어울리는 남자는 발 끝에 하이힐 같은 얇고 날카로운 부츠를 신고 있습니다.

출처 : 필자 사진 / 힐부츠를 신은 필자의 모습

  동경했던 그 모든 것들을 온 몸으로 받아들인 제 모습입니다. 슈트를 입을 때의 남성성과 다른 중성적인 모습의 제가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가 저의 모습입니다. 어떨 때는 어떨 때는 중성적인 제가, 어떤 때는 남성적인 제가 있습니다. 하이힐 소리를 낼 수 있는 부츠를 신고 여성보다 더 얇은 선의 아웃핏을 가질 때도 있습니다. 동경했던 이성과 동성의 모습 모두를 가진 것에 행복합니다. 패션이란 것은, 성별을 넘어 멋진 것을 모두 가질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 매력에 오늘도 패션 안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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