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택시를 타면 유난히 많이 받는 질문이 있다. 기사님이 룸미러를 통해 뒷자리의 건너보며 하시는 말씀. "하나예요?" 그렇다고 대답하면 그다음은 내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아유, 하나 더 낳아야지."로 이어진다. 그냥 하나 더 낳아야지, 한 마디로 넘어가면 다행인데 애국 운운하며 인구감소를 걱정하는 분도 계시고 내 옆에 말귀를 알아듣는 아이가 버젓이 있음에도 크면 외롭다거나(형제자매 많아서 외롭지 않게 사는 분들 계신가요??), 아들 역할은 따로 있다며 실존하는 딸아이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발언을 하시기도 한다. 무려 21세기에! 농경사회, 산업사회를 넘어 5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시대에도 여전히 아들 발언은 이 땅에서 멸종하지 않았다.
한 번 만난 택시기사님을 다시 만날 우연은 흔치 않으니 대부분 그 순간만을 모면하려 애쓴다.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지 않으려 "네" "네네" "넹" 영혼 없는 '네' 돌려막기로 넘기지만 마음속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물음표 대잔치다. (제가 임계점을 넘기면 기사님도 성치 못하실 거예요...) 아니, 이 나라의 미래를 왜 내 자궁이 책임져야 하는 건가. 나랑 평생 한 번 만날 분이 가족계획에 너무 관여하시는 것 아닌지? 다시는 그런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가슴 뜯는 메서드 연기를 펼치며 기구한 사연이 있다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이야기 함부로 꺼내는 거 아니라며 울며불며 잊지 못할 추억 하나 만들어 드릴까 싶기도 하다.
아마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여성들이 많을 것이다. 평생 한 번 마주칠 가능성이 높은 택시기사한테도 반복적으로 들으니 동네 어르신, 일가친척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다. 인생선배의 조언 형태를 띠고 있지만 강요와 힐난을 숨긴 질문들. 우리를 둘러싼 사회는 점점 다양한 형태를 띠는데 유독 가족이란 모름지기 남녀가 만나 아들, 딸 각각 한 명씩 낳고 양손을 붙잡고 다녀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고정관념들.
나는 아이를 하나 낳고 질문을 받기 시작했지만 사실 이런 질문 형태의 요구는 4인 가족이 완성될 때까지 이어진다. 결혼을 하지 않을 땐 '결혼해야지?' 타령으로 시동을 걸고, 결혼을 하면 '애는 언제?' 가족계획에 이웃들이 참여한다. 하나를 낳고 나면 기다렸다는 듯이 '둘째 낳아야지?' 돌림노래. 그렇다면 자녀를 셋이나 넷을 낳은 여성은 박수갈채를 받고, 애국자 대접하며 우러러보는 것이 마땅한데 우습게도 셋을 낳으면 요즘 세상에 셋 쉽지 않다고, 키우느라 힘들지 않으냐고 물어온다. 둘을 낳으면 어디 끝날 줄 알고? 웬만하면 딸을 먼저 낳는 게 좋다는 소릴한다. 예전엔 딸-아들 순서는 금메달, 아들-딸 순서는 은메달이란 농담도 있었지.(그게 웃깁니까? 웃겨요?)
정상가정이란 것은 무엇일까. 영원히 혼자 살고 싶다는 비혼 남녀가 50%에 가까운 시대. 이미 1인가정이 넘쳐나는 시대, 20, 30대 여성 중 과반 이상이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는 시대! 불임이 치솟는 시대에도 여전한 4인 가족 판타지. 농경사회에서는 태어난 자녀가 곧 일손을 거들 노동력이니 다다익선이라 치자. 산업사회에는 한 명이 노동을 하면 나머지 3~4명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게 가능한 구도였다고 치자. 지금은 가족의 형태도, 산업도 다양해지고, 갑자기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돌질 않나, 우리 자신도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시대다.
서로에게 나이와 연봉을 대놓고 묻는 것이 실례인 것처럼 출산 계획에 대해 묻는 것이 심각한 실례라는 것을 인식했으면 좋겠다. 비단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르신뿐만 아니라 또래 여성들도 낳는 김에(?) 하나 더 낳아라(1+1 상품인가요?), 둘째 낳으니 둘이 같이 놀아서 너무 좋다 등등 내 삶에 조언을 하는데 우리끼리 그러지 말자. 영원한 진리는 인생 누구나 혼자 산다는 것 아니오? 낳아서 길러봤자 뭐, 남의 인생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