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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개미 Oct 24. 2021

17. 내일을 쌓아 올리는 엄마

감정 기복의 낙차를 에너지 삼아 


출근을 하면 열심히 일하는 척했지만 매일 한 번은 메모장 앱을 켜고 일기를 썼다. 그 조차 하지 않으면 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왜 이리 하루하루 정신없이 사는지 모르겠어서 그날그날 있었던 사소한 사건과 감정들을 조그맣게 썼다. 


일기에 적힌 어떤 날은 내 몫의 책상과 내 이름이 적힌 사원증이 있다는 것에 만족했고 어떤 날은 내 처지가 서글프고 서러웠고, 어떤 날은 직장상사가 미웠고, 어떤 날은 아이 덕분에 크게 웃었다. 모아 보니 거의 뭐 감정 기복의 낙차에너지로 살아가는 것 같다. 


왜 이렇게 기복이 큰고 하니 회사일을 하는 에너지와 집과 아이를 돌보는 에너지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나에게 요구하는 덕목과 업무 성격이 다른 두 가지 일을 모두 잘 해내고 싶은데, 하루에도 몇 번씩 모드 전환을 해야 하니 둘 다 제대로 안 되는 기분이 자주 들었다. 더구나 가부장제가 공고한 우리나라에서 엄마가 바깥으로 나가려면 가족이나 이웃에게 반드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고, 폐를 끼친다는 생각에 이리저리 마음이 볶이는 경우가 많다. 혼자서 암만 힘을 내봐도 자기 개발서처럼 흘러가지 않는다. 경력보다는 우여곡절을 쌓는 편이랄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자주 생각한다. 내가 닿으려는 세계가 아주 멀고 거대한 것이 아니라고. 아이가 하루하루 커나가듯 나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나의 내일을 차곡차곡 쌓고 있는 것뿐이다. 아이에게도 나가서 돈을 많이 벌어오는 엄마, 악착같이 모아서 건물주가 되는 엄마가 아니라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해 뚜벅뚜벅 내 갈 길을 가는 인간을 보여주고 싶다.(물론 건물주까지 되면 좋음) 그러니 이 우여곡절과 엉망진창을 겪는 것 자체로 잘하고 있는 거라고. 아무도 이야길 안 해주니 스스로 마음을 달래곤 한다. 


브런치에 이것저것 쓰는 동안 내가 뭐라고, 내가 뭔데 일기장에나 쓸 법한 이야길 쓰고 있나 싶어서 종종 민망했다. 또 한편으론 우스갯소리도 쌓이면 목소리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내가 특정 세대를, 아줌마를, 워킹맘을 대표할 순 없지만 어딘가에 나 같은 처지의 동지가 또 있으리란 확신은 있으니까. 어딘가에 나와 같은 입장에 있을 동지들과 교신을 시도하는 마음으로 써나갔다. 마 인생도 엉망진창 같을 때가 많은데 겨우 쪽팔리는 게 대수냐.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감정 기복의 낙차를 에너지 삼아 용기를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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