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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일상을 잃어버렸다-2
01화
다가오는 연말과 따스함 사이, 그 어딘가에서 #20
길랭바레증후군, 스무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May 22. 2023
○ 2022년 12월 첫째 주
어느덧 2022년도 12월 한 달만을 남겨둔 시점.
연말을 맞아 치료실도 연말분위기를 내느라 분주하다.
"밍님, 잠깐 부탁할 거 있어요."
"부탁이요?"
"네. 여기 소원 좀 적어주세요."
"네? 소원이요?"
"네. 트리에 달아둘 거예요."
와 얼마 만에 적어보는 소원이지. 소원이 있긴 했나.
한동안 잊고 살았던 소원(?)을 찾아내기 위해 머리를 열심히 굴리기 시작한다.
일해라 뇌세포들아!
"밍님 소원 적은 거 다 봤어요."
"네? 그걸 다 보셨다구요?"
"당연하죠~ 밍님 치료사 분들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적어두셨던데 맞나요?"
"헉 진짜 다 보셨네요."
"아 당연하죠~ 밍님 맘 따뜻한 분이네요."
아니 이걸 다른 분들도 볼 줄 몰랐네. 내가 순진한 건가?
아무렴 어때. 특히 날 담당해 주시는 치료사 분들은 모두 많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트리모양 전구가 환하게 밝혀져 있다. 그 위엔 환자/치료사들의 소원으로 이뤄진 미니트리
덩달아 내리는 눈. 창문 너머 내리는 눈을 확인하자마자 잽싸게 옥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눈사람을 만들어볼까 하다 내려갔다간 눈길에 휠체어로 올라오지 못할 걸 알기에 이내 맘을 접는다.
근데 옥상에서 눈
보러 놀러 갔다가 고립되면 웃기긴 하겠다(?) 다음에 시도해 봐야지.
병원에서 눈 구경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 걸?
"지금 발목에 근력이 많이 떨어지고 신경도 다 재생되지 않아 움직임에 제약이 있지만, 힘은 올바르게 주고 있어요."
아침 첫 타임 작업치료사의 말.
아침마다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발목을 회전시킬 때마다, 얼굴은 시뻘게지고 마음은 답답함으로 가득 차기 일쑤.
그 와중에 발목을 움직일 때마다 꿈틀거리며 요동치는 살결을 바라보며, 힘은 어찌어찌 주고 있긴 하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쉴 틈을 찾아낸다.
"밍님, 발목 가동범위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네요."
"다 훌륭하신 치료사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당연하죠."
처음엔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던 분들의 반응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내심 뿌듯하다(?).
칭찬받을 때가 잘 없다며, 이럴 때 받아야 한다는 말과 함께. 아 이건 좀 씁쓸한 걸 :(
여타 다른 날과 동일하게 SCI FIT을 우직하게 돌린 지 얼마 채 지나지 않아, 왼쪽 발바닥에 낯선 통증이 찾아온다.
"선생님, 왼쪽 발바닥에 찌르는 듯한 통증이 있네요."
"발바닥 어느 부분일까요?"
"왼쪽 아치 부분이요."
"족저근막염일수도 있는데, 우선 발바닥 스트레칭으로 풀어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지금은 좀 괜찮으세요?"
"네, 스트레칭해 주시니까 금세 괜찮아졌어요."
"돌리다가 다시 통증 나타나면 말씀해 주세요."
"넵."
스트레칭으로 발바닥을 푸니 사라지는 통증. 흠? 이게 이렇게 간단히 사라질 것이었다고?
SCI FIT을 그만 돌릴 수 있단 희망(?)은 한순간의 비눗방울 마냥 톡톡 터지며 사라져 버렸다.
아 안돼!!! 돌아와 통증!
"선생님, 저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요??"
"계단 오르기요."
"오 좋아요! 그럼 같이 가봐요!"
보행보조기에 몸을 지탱한 채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안전하게 도달한 병원 비상구 계단 앞.
"선생님 오늘은 9층까지 가봐도 될까요?"
"오! 좋아요. 제가 뒤에서 보조해 드릴게요. 그리고 중간에 힘드시면 말씀하세요."
"넵."
한 계단 한 계단 꾸역꾸역 올라가 보는 비상구 계단.
지난번에 비해 수월해진 느낌은 있는데.. 그래도 아직 난간을 붙잡은 팔 힘에 많이 의지하고 있다.
난간을 붙잡지 않으면 이내 고꾸라져버릴 것이 눈에 훤하기 때문.
"밍님 계단 내려가는 건 아직인 거 같으시죠?"
"네. 내려가는 건 아직 무리입니다."
"그럼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요 우리."
두 개의 층을 올라가는 데 하지의 모든 힘을 끌어다 쓴 느낌이다.
계단을 올라가기 전과 달리 발목이 다시 흐느적거리고, 골반이 다시 빠지기 시작한다.
오후 내내 재활치료 중 이뤄지는 운동 퍼포먼스 역시 전에 비해 오히려 눈에 떨어졌다.
"오늘 왜 이렇게 힘들어해요?"
"아까 계단 9층까지 걸어간 게 컸나 봐요."
"아 그럼 힘들 수 있죠. 그래도 열 개 시작~"
운동 중 이어지는 한 마디.
"밍님, 이제 지팡이 짚고 걷는 거 해봐도 될 거 같은데요?"
"엥 그런가요?"
"지금 제 어깨 잡고 걷는데 왼손엔 힘을 거의 안 주고 계시잖아요?"
"흠 그렇죠."
"그럼 이제 조금씩 지팡이 짚고 걷는 거 해봐도 될 거 같아요."
"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병실에서 시도해 보다 싸함을 느끼곤 지팡이는 다시 집어넣었다는 후문.
"여보세요. 선임님 혹시 부탁 한 가지만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오 밍 선임님! 몸은 괜찮아요? 어떤 부탁인가요?"
"네네. 몸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너무 조금씩이라 탈이지만 허허. 제 책상에 있는 짐을 택배로 부쳐주실 수 있을까요?"
"어? 퇴원하고 직접 찾아가기로 약속했잖아요."
"유동적이게 살아야죠~ 저도 그러고 싶지만.. 생각보다 길어질 거 같아 언제까지고 거기 둘 순 없을 거 같아서요. 또 새로 오신 분한테 실례될 거 같기도 하고."
"에이 괜찮은데~ 짐은 우리가 잘 보관하고 있으면 돼요."
"헤헤 물론 그래주시겠지만, 그래도 기약 없는 보관을 할 수는 없기도 해서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주소 알려주시면 택배 보내드릴게요."
그렇게 도착한 회사자리에 비치되어 있던 내 짐.
택배로 받은 나의 짐. 빼빼로는 간식으로 껴 넣어주셨다.
무슨 우연이었을까?
이 짐을 받기 하루 전, 사내강사직을 시작했던 직장의 선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 밍아 몸은 좀 어떠냐?"
"이전에 비해선 운동기능이 조금씩 향상되는 거 같아요. 근데 그 회복속도가 너무 느려서 탈이네요 허허."
"그래도 나아지고 있다니 다행이다. 병원에선 다른 얘기는 없고?"
"예. 퇴원일도 아직 깜깜이입니다."
"그렇구나. 네가 고생이 많다. 다른 건 아니라 꿈에 네가 나오더라고."
"꿈이요?"
"응. 네가 우리 팀에 복직하는 꿈을 꿨어."
"헉 ㅋㅋㅋ 강사님 제 자리 하나 남아있을까요?"
"그럼 그럼 당연하지! 네가 오면 언제든 환영이지."
"염치 불구하고 복귀할 수도 있겠는데요?"
"꼭 와라. 언제나 환영이니까. 몸조리 잘하고."
"네. 감사합니다."
퇴원하고 복귀해야겠군. 기다려라 부천아.
이번주도 아주대병원으로 외래를 다녀온다.
지난번엔 신경과 외래만 다녀왔다면, 이번엔 재활의학과 외래를 보러 간다.
진료를 기다리던 중, 아주대학교병원 입원 당시 잠깐 물리치료를 담당해 주신 치료사와 마주쳤다.
"오! 오랜만에 뵙네요!"
"어 안녕하세요!"
"몸은 좀 많이 좋아지셨어요?"
"네. 재활치료 계속 받고 있고, 가동범위 같은 것도 점차 좋아지고 있어요."
"다행입니다. 길랭바레증후군은 꾸준히 좋아지는 병이니까 앞으로 더 좋아지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치료실도 유유히 들어가시는 치료사.
차도가 있다는 말에 덩달아 좋아해 주시니 내심 맘이 편해진다.
진료 차례가 다가오고, 휠체어에 앉은 채 몇 가지 동작을 테스트한다.
앉았다 일어서기,
앉은 채로 다리 펴고 들어 올리기, 팔 접었다 펴기 등.
"밍님 좋아지셨네요. 계속 입원해 계신 거죠?"
"네. 베데스다병원에서 계속 재활치료받으며 입원 중에 있습니다."
"그래요. 재활치료 계속 받으시면서, 왔다 갔다 하기 번거로우실 테니 퇴원하고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입원 중인 베데스다병원 주치의 선생님도 회진 중 한 말씀해 주신다.
"밍님 근전도검사 결과치에 비해 임상이 훨씬 좋게 나오고 계시거든요. 근력도 꾸준히 좋아지고 있습니다."
근전도검사 결과치론 회복치가 썩 좋게 나오질 않은 것 같아 내심 신경이 쓰이셨던 걸까.
아무렴 어때. 호전되고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는 셈이지.
인스타그램에도 매주 병원에서 있던 것들을 조금씩 기록하는 중이다.
그러던 중 예상치도 못한 DM 하나를 받았다. 아래 사진은 해당 DM 전문.
거진 내 일기장이나 다름없는 글임에도 정성스러운 DM을 보내주신 선생님 한 분.
자신의 투병과정을 서술해 주시며, 그때의 시기를 무사히 견뎌내고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는 말씀을 남겨주셨다.
어려웠던 시절의 기억을 꺼내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되는데, 일면식 없는 누군가를 위해 그 어려운 것을 해내는 이 분이야말로 진정 멋있는 분 아닐까.
예상치 못했던 따뜻한 연락을 받으며, 지금 주어진 재활치료에 최선을 다하기도 마음을 다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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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일상을 잃어버렸다-2
01
다가오는 연말과 따스함 사이, 그 어딘가에서 #20
02
자취방 정리와 아쉬움 사이, 그 어딘가에서 #21
03
쪼그려 앉기와 즐거움 사이, 그 어딘가에서 #22
04
새로 뜨는 해와 가벼움 사이, 그 어딘가에서 #23
05
또 장염과 고마움 사이, 그 어딘가에서 #24
어느 날, 일상을 잃어버렸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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