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자극과 깨달음 사이, 그 어딘가에서 #25

길랭바레증후군,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by 밍밍한 밍

○ 2023년 1월 둘째 주


"밍님 발목 한번 들어 올려 보실까요?"

"네."


이전까진 엄지발가락 쪽의 발목만 쓱 올라가는 모양새를 띄었다면, 이젠 새끼발가락 부근의 발등에도 힘이 조금씩 들어오며 발등 전체를 들어 올릴 수 있게 됐다.

물론 그것도 한두 번이 전부지만.


"이젠 발목 올리는 데 사용되는 근육이 수축하는 게 보이네요. 지난번 근전도검사 결과 때 나오지 않은 값들이 있었는데, 지금 검사하면 그 결괏값들도 나올 수 있을 거 같아요. 천천히이긴 하지만 분명 회복세는 보이거든요. 장기적으로 보행보조기 없이 걷는 걸 목표로 유지해 보도록 할게요."

"네. 알겠습니다."


주기적으로 하체 가동범위를 확인해 보는 회진시간.

아주대학교병원에서 경험하던 회진과 큰 차이점이 하나 있다면..
아주대학교병원의 회진은 행여나 상황이 악화되면 어쩌지에 대한 두려움이 컸던 반면, 현재 병원에서의 회진은 조금씩 나아지는 경과를 지켜보는 것으로 일말의 두려움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허나 마음 속 한 편엔 병원 밖 생활, 퇴원 이후 생활에 대한 미련이 늘 자리 잡고 있다는 공통점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직장인들이 품고 있는 사직서 한 장과 같달까? (?)




"오? 밍님 오늘은 종아리 근육 힘들이지 않고 잘 올라가지는데요?"

"잉 그러게요. 왤까요. 이상한데."

"잠시만 기다려보세요."


치료실에 비치되어 있는 베개를 치료에 쓰이는 보조테이블 위에 올려두는 치료사.


"자 이 위에 손 얹어보고 다시 해볼게요."

"헉. 선생님 안 올라가져요."

"!! 밍님 지금까지 상체 힘으로 올린 거잖아요!"

"어쩐지~ 하나도 안 힘들더라구요~"

"으휴 못살아 증말. 자 팔에 힘 빼고. 종아리에 힘주세요. 그래도 종이라에 근육은 좀 더 붙었어요."


어쩐지 지난주랑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동작 수행이 잘 이루어진다더니~ 그런 연유가 있었구나~

그 짧은 순간에 그걸 찾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진짜 멋있는 분이다.


오후 치료시간 중 텀이 있는 때에 혼자 병동을 거닐다 담당 치료사를 종종 마주친다.

그럴 적마다 치료 시간이 되면 걸음걸이에 대한 피드백을 해주는 치료사.


"밍님 걸음걸이 좀 더 좋아진 거 같네요."

"선생님께서 해주신 자세교정 피드백 신경 쓰면서 걸어보려고 하거든요."

"좋아요. 왼쪽 엉덩이도 이전엔 그냥 평평~ 했는데 지금은 조금씩 수축하는 것도 보이네요."

"그래도 아직 평지죠?"

"네. 오른쪽은 봉긋한 게 보이는데 왼쪽은 아직도 평평이에요. 그래도 이전엔 수축도 거의 안 되다시피 했는데, 지금은 조금씩 수축하기 시작했어요. 이제 근육 붙여나가야죠. 다 쉬셨죠? 열 개 시작~"


피드백은 피드백이고 할 건 해야지.

보바스테이블에 바짝 매달린 채 뒷다리를 들어 올린다.

엉덩이가 부들부들 떨리다가 힘이 떨어지면 이내 허벅지의 보상작용으로 다리를 들어 올린다.


유에서 뭔가 더 덧붙여나가는 것보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가는 것이 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다.

뭉쳐있는 눈덩이를 슥 굴려 부피를 키우는 것보다, 처음 눈덩이를 뭉치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더 까다로운 것처럼.




엎드려 뒤차기를 하는 데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긴다. 모래주머니의 무게가 1kg짜리에서 4kg짜리로 늘어났다는 것. 물론 오른발 한정.
왼발은 아무런 보조 없이 드는 것도 힘겹다. 치료사의 보조가 있어야만 제대로 된 뒤차기를 할 수 있는 행태가 지속되는 중.


"선생님 오른발이 자꾸만 저절로 내려가요."

"밍님 잘하고 계세요. 그래도 잘하시는걸요!"


흠. 찡얼거리는 건 통하지 않는군. 좋지 않아.


다른 시간에 여전히 이어지는 1kg 공 주고받기.

처음 했을 때와 차이점이 있다면, 그 1~2주라는 시간 동안 주고받는 속도가 좀 더 빨라졌다는 것이다.

몸이 공 주고받는 반응에 금세 적응한 셈.

아 이래서 몸이 다양한 자극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한 거였구나.

가동범위 내에선 최대한 효율적으로 무언가를 행하려고 금세 적응하는구나.


다른 활동으로 롤러 위에 발을 올려놓고 앞뒤로 슥슥 밀어 본다.


"밍님 발바닥 전체가 롤러에서 떨어지지 않게 굴리시면 돼요. 발등도 들어 올린 상태를 유지하셔야 해요."

"선생님 뭔가 삐그덕 거러요."

"그쵸? 별거 아닌데 힘들죠?"

"네. 이게 왼발을 안 그러는데, 오른발을 굴릴 땐 허리 쪽에 부담이 가요."

"잠시만요."


발목을 곧장 잡아주시고 다시 자세를 취해보는데..


"왼쪽은 힘이 없어서 그렇지 잡아드리면 일자로 잘 움직이거든요. 근데 오른발은 안쪽으로 휘네요."


그리고 손수 발목과 골반을 잡아주신다.

몸이 제멋대로 엉망진창 움직이는 건 여전하군. 난 분명 바르게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지난주 앓았던 장염도 어느덧 열흘 남짓의 시간이 지나가는 중.

추가 마비증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맘이 한결 편안해진다. 지난 열흘 간 혹시나 악화되면 어쩌지 싶어 내심 맘 졸였던 시간은 눈 녹듯 사라져 내린다.


이를 기념하고자 옥상에 올라가 아직 녹지 않은 눈을 가지고 자그마한 눈사람을 만들어 본다.

손이 너무 시린 나머지 기왕 만드는 거 눈사람을 크게 만들어야겠단 생각은 단 1초 만에 사라져 버린다.

눈코입과 팔, 다리 등으로 쓸 마땅한 건덕지가 없어 눈사람의 형태만 덩그러니 만든 채 헤헤 좋아라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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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 뿐인 눈사람과 기념으로 찍은 손도장.


같은 병실을 쓰는 분께서 드립커피를 선물로 받았다며 몇 개 나눠주셨다.

병원에서 이런 커피를 마실 기회가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커피포트로 물을 끓임과 동시에 냉큼 받은 커피 한 팩을 뜯어 컵에 비치해 둔다.

포트로 끓인 물을 조금씩 조금씩 따를 때마다 스멀스멀 올라오는 향긋한 커피 향.

오전 라운딩하는 간호사 선생님들이 커피 향이 좋다며 감탄을 연발한다.

KakaoTalk_20230609_085308066_02.jpg 향긋한 커피 향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김밥이 너무 먹고 싶어 배민을 켠 후 김밥을 주문한다.

김밥맛이라도 나면 됐지~라는 생각에 큰 기대는 안 했는데, 웬걸 속이 가득한 김밥이 배달 왔다.

김밥 하나를 입 안에 넣을 때마다, 입 안을 가득 채우는 내용물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아~ 그래 김밥이 이런 맛이지.

이게 진짜 김밥이지.

KakaoTalk_20230609_085308066_01.jpg 일반 김밥이랑 대패김밥. 속이 보이는 건 일반 김밥.


"신체에 다양한 자극을 주어야 해요."


처음 이 말을 치료시간엔 들었을 땐 그저 단순하게 생각했다.

일상생활에 조금이라도 더 익숙해지기 위해 치료실에서 이것저것 다양한 각도의 자세를 활용하여 많은 자극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려는 거구나 하는.

지극히 일차원적으로 생각했던 때였다. 하지만 하루하루 재활병원에서의 시간이 늘어갈수록 이 한 마디에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수많은 자극에 대한 것을 주입하려는 것도 있거니와 다양한 시도를 통해 낯선 자극을 최소화하여 몸이 더 빠르게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는 것.

잘 쓰지 않는 근육을 활성화하여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환경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적응할 수 있는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 (결국 똑같은 말이네..?)


사뭇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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