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랭바레증후군, 마흔네 번째 이야기
양손에 5kg 아령을 하나씩 든 채 수행하는 덤벨 데드리프트. 무난히 세트를 소화하나 싶었으나 세트 막바지에 복압이 풀리며 등과 허리의 경계를 삐끗한다.
"억. 선생님, 저 허리 삐끗한 거 같아요."
"아이고 괜찮으세요? 남은 시간은 제가 좀 풀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아 자존심 상하네~~ 고작 5kg짜리 아령 2개에 등허리가 나가버리네.
"어떠세요? 좀 나아지신 거 같으세요?"
"네. 아까보다 좀 나아진 거 같아요."
"죄송합니다 밍님."
"아니에요~ 선생님이 죄송해하실 게 뭐 있나요~ 다 제가 부주의해서 생긴 일인걸요."
"아닙니다. 제 시간에 다친 게 맞으니까요. 제가 좀 더 주의했어야 했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에이~ 괜찮아요 선생님~ 며칠 쉬면 나아질 텐데요 뭐~"
연신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 치료사. 방심하고 복압을 풀어버린 건 나인데 말이지.
스트레칭을 해주시는데 생각보다 유연하다며 놀라는 치료사.
"밍님, 생각보다 많이 유연하신데요?"
"아 이거 많이 좋아진 거예요. 처음 왔을 땐 지금처럼 다리 쭉 편 채로 20도로 못 올렸어요."
"엥? 정말이요?"
"네. 매일같이 햄스트링 늘려주셔서 지금 많이 늘어난 거예요."
"아 그러셨구나~"
주치의 소견으로 급성염좌를 진단받고, 근이완제와 진통제를 처방받아 복용한다. 통증이 아예 없어진 건 아니나 그나마 버틸만한 정도로 통증이 완화된다. 먹으니까 좀 살 거 같다. 역시 이완제와 진통제가 최고시다.
다음 날, 등의 통증을 확인하는 치료사.
"밍님, 어제 삐끗하신 곳은 좀 어떠세요?"
"아직 불편감은 조금 남아있긴 한데, 병동을 걷거나 운동할 때 아파서 운동을 못하거나 하는 정돈 아니에요. 운동할 땐 딱히 불편함을 못 느끼고 있어요."
"아 나아지셔서 다행입니다. 당분간 데드리프트는 안 하고 다른 운동으로 대체하도록 할게요."
"네. 좋습니다."
여느 때와 같이 침대 프레임에 목을 살짝 걸친 채 누워있다가, 어깻죽지가 살짝 불편한 느낌이 들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든다.
아... 이거 백프로네. 어깻죽지가 결렸다. 아니... 월요일엔 운동 중에 등허리가 삐끗하더니, 주중엔 그냥 프레임에 목 기대고 누워있었을 뿐인데 이게 결린다고? 참 가지가지하는 한 주구만?
"선생님 저 어깻죽지가 결린 듯한 느낌이 있어요."
"엥? 거기가 왜요?"
"프레임에 목 기대고 누워있다가요."
"허 참.. 운동하는 데 아프거나 하진 않죠? 좀 풀어드려요?"
"아..아니요 괜찮아요. 운동하는 덴 지장 없습니다."
"왜요~ 시원하게 쫙 풀어드릴게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스트레칭을 빙자한 비명 지르는 시간인 사양 한다 이 말이야~
아무튼 스쿼트 자세에서 유지한 채 옆으로 이동해 본다. 몇 발자국 이동하지도 않았는데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고 만다. 왼쪽이야 골반엔 힘이 없지만, 허벅지는 상대적으로 튼튼해서 얼추 가긴 가겠는데, 오른쪽은 어우.. 한 번 움직이는 것마저 혼신의 힘을 다해야 겨우 뗄 수 있는 정도.
"이제 왼쪽 골반만 어느 정도 돌아오면 밖에서 생활해도 될 거 같아요."
"그런가요? 왼쪽 발목이랑 발가락은 아직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은데 괜찮겠죠?"
"발목이랑 발가락은 또 다른 거 라서요. 풋드롭은 없으니 괜찮을 거예요. 발목에 힘이 풀리면 쉬거나 다리를 좀 더 높게 들어 올려야죠."
"오 맞아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입원 후 쭉 치료를 맡아온 치료사가 소견을 조심스레 밝힌다. 안 그래도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치료사가 나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해 안심이 든다.
신도림 역사엔 크로켓 집이 하나 있다. 퇴근길에 우연히 먹어본 크로켓이 너무 맛있던 나머지, 친구에게 적극 추천을 해줬던 곳. 그 결과 친구는 그 가게 단골이 됐고, 해당 가게의 사장님과 안면을 틀 정도라고. 갈 때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신다고 한다.
그 크로켓을 먹을 때마다 자랑하던 친구. 하루는 크로켓을 사들고 병원으로 병문안을 왔다.
"너 머리가.. 무슨 조빈 같아."
"맞아, 내가 예술가 기질이 좀 있긴 해."
뻔뻔함은 기본이지.
"아유 좀 자를 생각은 없니?"
"퇴원할 때까지 기를 거야. 나와 병원 생활을 함께 한 친구란다."
아무 생각 없이 냅두고 있던 머리 길이를 보곤 한 마디 하는 친구. 머리가 기니까 마치 예술하는 사람처럼 보였나 보다 ^_^
한 2~30분 남짓 대화를 나누고 서로 갈 길 가는 우리. 문 앞에 계시던 직원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나머지.. 크흠..
병실로 돌아오기 무섭게 새우맛 크로켓 하나를 해치운다. 하.. 이 맛이야. 나머진 냉장고로 직행. 밥 먹을 때 하나씩 반찬삼아 까먹어야지 히히.
양 발목에 1kg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치료사.
"계단 타러 가시죠."
"네?"
"에이~ 잘 들었잖아요. 계단 타러 가시죠."
"이거 차고요?"
"아 당연하죠~ 엄살은~"
아니 바로 직전 시간에 허벅지 탈탈 털려서 힘들어 죽겄는디 모래주머니를 차고 계단을 오른다고?? 내 허벅지를 아예 없애버리려는 속셈인가?
그래도 어쩌하랴. 시키는 데 해야지.
한 손에 지팡이를 짚고 치료사와 함께 비상구 계단으로 발을 옮긴다. 그렇게 비상구 계단을 하나하나 오르기 시작한다. 동시에 쭉 빠지는 골반.
"골반 빠지면 안 돼요~ 힘 빡 주세요~"
"허벅지에 힘이 없어서 빠지나 봐요."
"알죠. 그래도 다리에 힘 빡 주고! 골반 빠지지 않게 올라가세요!"
아.. 내 다리 살려줘.. 어찌어찌 꾸역꾸역 계단을 오른다.
"오 밍님 그래도 속도는 좀 빨라졌네요?"
"다 훌륭하신 치료사 선생님들 덕분입니다."
7층에서 9층까지, 2층의 계단을 올라가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니, 띵~ 엘리베이터가 바로 도착한다.
"오 타이밍 좋은데요?"
"아.........."
나에게 쉴 시간을 좀 줘, 엘리베이터야 ㅠ_ㅠ
브런치를 홍보한 바 있는 치료사가 글을 열심히 읽고 있다 한다.
"와 밍님 저 브런치 올리신 글 다 읽었어요!"
"헉 진짜요? 감사합니다."
"글 잘 쓰시던데요?"
"에이 아니에요~ 잘 쓰는 분들 많아요~ 저는 그냥 끄적일 뿐이에요."
"아니, 진짜 몰입감이 좋더라구요. 그리고 파친코 독후감 올리신 것도 봤는데, 요약을 진짜 잘 하셨더라구요. 저도 읽어본 책이거든요. 와 진짜 잘 쓰셨더라구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고 괜스레 쑥스럽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주말. 성격분석카페에서 같이 일했던 친구가 얼굴 본다며 수원까지 와주었다.
음식점 앞에서 봐도 된다 이야기했거늘 아니라며, 걱정된다며 병원 앞에서 만나 같이 길을 걷는다. 느으릿느으릿 걷는 발걸음, 한 손엔 우산을 쥔 채.
지하철 지하도를 건너, 작은 횡단보도를 지나, 오르막길을 오른 끝에 도달한 양꼬치 집.
양꼬치와 꿔바로우와 향라새우를 주는 세트메뉴를 시키고, 소주와 사이다를 시킨다. 친구는 소주를, 나는 사이다를. 가장 최근에 만난 게 2년? 3년? 전이었던가. 수년간 보지 못했던 세월이 무색하게 어색한 점 하나 없이 이야기를 이어간다. 변한 거라곤 세월을 피하지 못한 얼굴뿐.
"나 네 브런치 3 회독했어."
"어? 3 회독씩이나?"
"어. 글 몰입이 잘 되더라고. 너 글 잘 써."
"에이 누구나 다 쓸 수 있지."
"아니야. 너 글 진짜 잘 써. 술술 읽혀."
"헉 고마워."
책 한 권을 내밀어주는 친구.
"브런치에 책 선물 받았다는 거 보고 하나 골라왔다."
"어? 이 사람, 그 사람 아니야? '그런데 틀렸습니다!' 하는 그 사람."
"오 맞아! 너도 아는구나?"
"알고리즘 추천받아서 몇 번 본 적 있어. 재밌게 잘 설명하더라."
"맞아. 그 사람 책 나왔길래, 사 왔어."
"고마워, 잘 읽을게."
양꼬치를 먹고, 영통역 앞 홈플러스 내 아티제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병원으로 걸어오는 길.
왼 발목에 힘이 빠져 흐느적거리기 시작한다. 엎어지면 안 되니 조금 더 높게 들어 올리는 왼발. 그마저도 힘이 들어 잠시 쉬었다 가길 반복한다.
다행히 빗길에 미끄러지는 대참사 없이 나름 안전하게(?) 다녀온 외출. 누군가의 도움이나 보조 없이 온전히 혼자 다리를 이끌고 다녀온 첫 외출.
외출/외박이 되면 최대한 밖으로 나돌아 다니면서 적응해야겠구나 싶던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