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비워내고 얻은 것

by 새벽뜰


내가 게으른 이유도 있지만 규칙적인 패턴을 깨뜨리기가 쉽지 않아서 미뤘던 일들을 요즘 부쩍 성실히 해내고 있다. 꼭 한 번은 해야지 하는 생각만 2년 동안 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부지런히 실행으로 옮기는 일은 냉장고 청소와 정리였다. 엄두가 나지 않아 덮어만 두었고 무엇보다 호기심 대폭발 중인 아기가 있다 보니 또 불가능하게 느껴졌던 거다.

그랬던 내가, 에라 모르겠다 하며 일단 벌려놓게 된 동기는 체증처럼 남아있는 해묵은 과제를 얼른 해놓아야 마음 정리가 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정리하는 일과 냉장고 청소하는 일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 싶었지만 그것은 아마도 내가 결혼을 한 유부녀가 됐기 때문일 것이고 내 일상의 구심점이 육아와 살림에 집중되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로 나의 패턴과 생각과 일상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정'에 국한된 것이다. 결혼 전엔 누구의 간섭도 받을 일이 없었고 그야말로 야생마처럼 널을 뛰고 다녀도 붙잡히는 감정이 훨씬 적었다. 결혼 후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강요하지 않아도 당연지사 그것이 정답이라 믿으며 가정의 충실함에 매진하게 됐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딱 한 가지 생각이 드는 거다. '아, 나도 이제 아줌마 다 됐구나!'

책장을 정리하면 마음 정리가 되던 내가 냉장고를 청소하고 수납장을 정리하면서 마음 정리를 한다. 더 재밌는 건 정리하는 주체가 달라지니 마음 정리되는 과정도 바뀌더라는 사실이다.





과도기인가 싶은 것이다. 소녀가 사춘기를 겪고 어른이 되듯이 여자가 주부가 되고 며느리가 되고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어야 하는 입장에서 오는 두 번째 사춘기인 건가 싶은 것이다. 감당하고 책임져야 할 직급이 엄청나게 높아진 탓에 업그레이드된 성장이 필요한 거겠지. 내 안엔 내가 너무도 많다는 말은 노래 가사에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늘 싸우고 이기고 지고를 반복하지만 새로운 걸 받아들이려면 당연히 전에 것은 말끔히 비워내야 했다. 못해도 새로운 게 반 이상은 채워져야 내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냉장고 안 묵혀둔 것을 버리고 청소를 했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개운해졌다. 마음 정리에 냉장고 정리가 필요했다니,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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