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연
무언가 그리울 때가 있다. 대상이 사물이면 조금 덜 막막하지만 대상이 어떤 특정 장소라거나 사람이라면 막막함은 이루말할수가 없다. 그리움이라는 말 앞엔 여러가지 단어가 오갈수 있겠지만 유독 굳세게 심어진 나무처럼 빠지지도 치워지지도 않는 단어도 있기 마련이다. 가령 기억에 오래 남아있는 사람 또는 아주 좋아했지만 당장은 갈 수가 없는 장소가 그렇다. 나는, 내가 까무라칠 정도로 좋아했던 장소에서 되도록 한결같이 일정한 시간을 보내며 책을 읽던 네가 그리워, 마음이 아주 슬퍼진다. 왜 이 모든게 해당되는 기억이 내게는 있어서.
외유내강의 마음일땐 '그래, 추억이란 게 다 그런거지 뭐, 너로 인해 좋은 선물을 얻었다.' 하면서도 외강내유의 마음일땐 '나이 먹어서 마음대로 울지도 못하겠고 떼도 못 쓰겠고.... 아니 만난만 못하구나.' 추억인지 기억인지 모호한 감정찌꺼기를 닦아내려고 애를 쓴다. 그리움이란 감정은 참 알수가 없다. 마음 깊숙하게 잘 숨어 있다가도 예고도 없이 내리는 소나기처럼 무방비하게 나만 따라다니면서 비를 퍼붓는다. 당황스러운 마음을 달래며 가까스로 우산 비슷한걸 만들어 머리위를 가려도 살 한 쪽이 찢어져 재구실을 못하는 엉성한 비닐에 불과한건지 발휘된 기지가 부끄럽도록 나만 향해 세게 퍼붓는다.
당연히 너의 연락처와 너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모두 삭제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랬던 나여서, 너와 나는 더 이상 내가 바라는 관계가 될 수 없음을 정확히 인지한 후부터 내 핸드폰엔 너란 사람 자체가 지워졌다. 때로는 너와 보낸 시간이 과연 현실이었을까 싶을 만큼 꿈처럼 느껴진 적도 있지만 그 기억은 분명히 어느 시절 각인된, 너와 내가 그 자리에 있었음을 보장하는 증거 같은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몇 해의 시간이 손틈새로 빠져 나가고 있다. 내 기억 속 그의 모습이. 창 밖을 바라보고 웃으며 나에게 무어라 말을 하던 그의 모습은 이제 아련하다는 표현을 써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천둥이 치고 바람이 불며 비가 내리던 밤. 나는 그가 난감할만큼 궁금해졌다. 이뤄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이라기엔 내가 가진 그리움이란 감정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이뤄지지 못한 사랑이라면 적어도 서로를 물고 뜯고 악랄하리만치 파고들 각오 정도는 되어 있었겠지만 나는 봄날에 흩날리는 벚꽃처럼 그의 걸음걸음에 소리도 없이 내려 앉다 오도카니 그의 발걸음만 세어 본 느낌이었다. 어쩌다 그의 머리칼에 내려 앉고 어떤날엔 옷깃에 내려앉아 내 마음에 바람이 불면 자연스럽게 그와 멀어지며 거리를 유지 했었다. 그리운 이유는 아련하지 않다. 그렇게 감쪽같이 멀어진 건, 내가 먼저였나 싶긴하다. 우리의 타이밍은 처음부터 아주 엇갈려 있었다는 걸 나는 이미 그때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그 곳엘 가면 여전히 그가 있을까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자리에 그가 없기를 바란다. 그가 그 자리에 더는 없고 더 높은 어딘가, 원하는 곳 어딘가에서 나에게 열지 못했던 마음을 열고 지내길 바란다. 나의 그리움은 온전한 나의 몫, 추억과, 거기에서 파생된 감정의 파장까지 온전히 내가 책임지고 거둬가야 한다. 짜증나게 서글픈데, 다 그런 거란다. 추억은 추억이라 아름답다고. 첫사랑은 첫사랑으로 남겨두는게 정답인 것처럼.
내가 그렇듯, 어디에선가 그도 잘 지내고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