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프지 않은 이유

by 새벽뜰
그림. 이연




거세지는 빗소리 속에 나는 서 있다. 증발해 버린 청춘의 수증기들이, 문득 비가 되어 이곳을 적시고 있는 느낌이다. 아직도 나는 그날의 눈 속에 서 있고, 지금도 나는 그날의 눈을 맞고 있다. 그런, 기분이다. 떨어지는 빗방울의 수만큼이나 나에게도 많은 일들이 있었다. 누구에게나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 p35 <박민규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中>



우리가 변해버린 모습 속에 슬퍼지는 이유는 어떤 시절에 대한 그리움이 있는 탓이다. 굳이 더 아름다워서, 유독 더 어렸기에 라는 이유 보다도 나를 둘러쌌던 그 시절의 사람들과 그날의 냄새와 공기가 지금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하늘이 맑아서, 내가 아꼈던 당신이 있어서, 공기가 좋아서, 사사롭지만 몹시도 값졌던 그 시절의 모습은 이제 더는 없기에 이렇게도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이다. 해피엔딩이지만 행복한 끝을 맞이 하려고 노력한 수많은 시간의 눈물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여전히 생생한 계절처럼 추억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누군가와 일상을 보내든 그 모든 통합의 시간은 해피엔딩이길 원한다. 사진처럼 남겨놓진 못했어도 어제처럼 선명한 기억 속 수레바퀴가 끊임없이 돌아가니 이것 또한 해피엔딩이다. 새끼손가락 끄트머리에 붉은 실로 메어진 사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그건 눈에 보이지 않고 느낄 수만 있어 더 귀하다 믿었다. 손을 잡으면 손가락 하나하나 얽혀 꽉 조여 잡았던 감각이 여전히 생생하듯이 나는 아름다운 이별을 한 사람이니 모든 것을 아름답도록 기억하는 게 어렵지 않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을 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