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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유 Jun 18. 2024

나는 매일 조금씩 죽어갑니다

[1965/1-∞], 오만 오팔카


프랑스 태생의 폴란드 화가 오만 로팔카. 그의 대표작은 그가 1965년 흰색 물감을 적신 얇은 붓으로 검은색 바탕의 캔버스에 아라비아 숫자 ‘1’을 적는 것으로 시작됐다. 작가는 캔버스의 왼쪽 상단에서 오른쪽으로 숫자를 계속해서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 작업은 그가 2011년에 세상을 떠날때까지 50년 가까운 세월동안 매일 반복되었다.



그리고 1969년부터 화가는 자신의 얼굴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다. 하나의 캔버스가 완성될 때마다 그림을 배경으로 선 자신의 모습을 찍었다. 늘 같은 백색 셔츠를 입고 무표정한 얼굴인 자신을 카메라에 담았다. 1972년부터는 일관된 촬영 결과를 얻기 위해 카메라와의 거리 등 촬영 조건을 엄격하게 정했다. 머리 모양이 달라질까봐 평생 이발도 스스로 직접 했고, 셔츠 모양이 달라질까봐 평생 입을 똑같은 셔츠 20장을 구매했다.


그렇게 그는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작품과 자신의 사진에 담았다. 80세 생일을 앞두고 세상을 떠날때까지 그는 매일 캔버스에 숫자를 그리고 또 자신의 자화상을 촬영했다. 마치 수도승과도 같은 그의 삶. 어찌보면 무용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그의 작품과 사진 촬영에서 이제는 다른 것이 보인다.


우리 모두는 매일 조금씩 늙어가고 그것은 우리가 느리게 죽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잡을 수 없는 시간의 흐름에서 우리는 죽음이라는 똑같은 도착점을 앞두고, 그 곳까지 걸어간 길을 나중에 돌아봤을때 무의미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매일 내 삶을 나답게 느끼게 해주는 어떤 행위를 벽돌처럼 쌓아올리는 것이다. 내가 리추얼을 하는 이유 또한 바로 이것이다.


작가의 노년의 얼굴은 깊은 주름과 백발로 덮여 있지만, 46년간의 세월을 악착같이 붙들고 자신의 삶의 가치를 매일매일 누적한 그 눈빛만은 젊은 시절과 다르지 않다. 그렇게 그는 죽었지만 그의 작품은 그의 눈빛과 함께 생생히 살아남았다.



우리 삶에서 시간은 가장 중요한 요소다. 시간이 죽음을 창출하기 때문이다. 죽음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밋밋하고 의미 없을지도. …내가 죽어서 더는 숫자를 쓸 수 없게 될 때, 비로소 작품이 완성될 테다. 어떤 의미에서 내가 첫 붓질을 했을 때, 이미 작품은 완성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시작’에서 ‘끝’을 내다봤으니까.”
 - 오만 로팔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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