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부터 시애틀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트와일라잇의 배경이 되는 도시, 스타벅스 1호점, 킨포크의 성지 포틀랜드에서 가장 가까운 한국에서 유명한 미국 도시.. 시애틀이라고 하면 연관 검색어로 뽑을 수 있는 키워드가 꽤 되지만 내게 가장 와 닿는 키워드는 #너바나 #커트코베인 #그런지록 이 3개 키워드다.
첫 남자친구였던 친구는 뉴질랜드 유학파로 한국에 와서도 팝 씬을 손에 놓지 못하던 친구였다. 데이트할 때 자주 들려주던 음반이 Hole의 <Live Through This>로 내 음악 취향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Hole의 보컬인 코트니 러브의 남편이 바로 Nirvana의 커트 코베인이 되시겠다.
당시에는 코트니 러브라는 사람 자체가 너무 매력적이었고(연예인은 관종짓을 할 때 빛이 난다), Hole의 음반 또한 명반이었던지라 거기에 빠져 있느라 Nirvana의 음악을 들을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Smells Like Teen Spirit'을 들어 보기는 했지만 곡이 좋기는 하였으나 쉽게 질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이혼 소송을 시작하며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을 무렵 정말 우연히 다시 Nirvana의 노래를 듣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Smells Like Teen Spirit'이 아니라 사후 발매된 사실상 마지막 곡 ‘You Know You're Right' 부터 듣게 되었다. 마지막 곡부터 시작해서 첫 번째 앨범, 두 번째 앨범, 라이브 앨범, 다큐멘터리 OST까지 다 들었다. 한동안 그 묵직하고 건방진 사운드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어딘가 우울한 가사도 좋았다. 나만 우울한게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가 되기도 했다.
Nirvana - Lithium ▶ https://youtu.be/pkcJEvMcnEg?feature=shared
한창 우울할 때 들었던 곡이다. 커트 코베인이 인간관계에 상처를 받았을 때 신을 찾으며 쓴 곡이라고 하던데 나는 오히려 Lithium을 약물로 해석하고 너무 실의에 빠져 Lithium에라도 의존을 하는 사람의 심정으로 이해했다. 노래 마지막 부분에 ‘I'm not gonna crack (난 무너지지 않을 거야).’이라는 구절은 이미 마음이 무너졌는데 무너진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느껴졌다. 여전히 자신을 슬프게 만든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노래라는 건 듣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주관적인 감정이 포함되어 들리기도 하는 것으로 당시의 나는 가정이 깨졌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었고, 침울했다가 갑자기 분노가 일기도 했는데 그렇게 들은 노래는 바로 아래 노래다. IVE보다 몇 년 먼저 DIVE를 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전 남편이라는
작자와 상간녀를 불구덩이로 DIVE 시키고 싶었다.
Nirvana - Dive ▶ https://youtu.be/CSC0D_rm-l0?feature=shared
Nirvana - All Aplogies ▶ https://youtu.be/aWmkuH1k7uA?feature=shared
그렇게 한창 분노조절을 못하다가 감정이 허해질 때 즈음 들은 노래는 'All Aplogies'.
Married Buried
위 가사에서 크게 공감을 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저 가사에만 꽂혀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굉장히 강했다. 지금 글을 쓰며 다시 듣자면?
- 'All in all is all we are' 라는 가사에 꽂힌다.
기뻐하고, 분노하고, 사랑하고, 즐거워하고.. 모든 감정이 우리이고 사는 것, 인생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노래 제목처럼 딱히 모든 것을 용서하고 이해하는 마음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러려니 하는 감정, 그런 일도 있구나 하는 감정으로 노래를 다시 이해하게 되었다.
하늘 위의 커트도 코트니 러브, 아빠, 엄마, 세상 사람들을 이제는 그러려니 하는 감정으로 바라보고 있을까?
곧 만나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