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sy Sep 30. 2024

사랑에 대한 외면하고 싶은 진실

"사랑이라는 것이 진행될 때에는 존경도 모르고 이성의 한계도 지키지 않을뿐 아니라, 조건에 있어 죽음과 똑같다는 말일세. 사랑은 목동의 초라한 오두막이나 왕의 높은 성이나 가리지 않고 덮친다네. 그리고 한 영혼을 완전히 장악했을 때 제일 먼저 하는 짓이 바로 두려움과 수치심을 빼앗아 버리는 일이지"


사랑에 대한 수많은 서사와 해석을 접하면서도 이 글만큼 공감한 내용은 없다. 이처럼 통렬하게 사랑의 본질에 대해 주저없이 내지른 사람은 누굴까? 정답은 돈키호테이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의 입을 빌어 사랑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사랑의 아름다움이나 위대함을 칭송하는 대신 사랑할 때 인간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묘사함으로써 사랑의 강대함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세르반테스가 살았을 때는 1600년대이다. 그로부터 400년이 지났는데 사랑이란 몹쓸 감정이 외면하는 '수치심'과 '두려움'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어찌 이리 변하지 않는 것이냐.


시 아니라고 생각하나?  그런 당신에게 나는 이리 말하겠다. 

"수치심이나 두려움이 남았다면 넌 아직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


소설을 쓰다보면 사랑이란 주제는 아무리 외면하려 해도 쉽게 뺄 수 없다. 복수나 운명, 인간과 신 등 다른 주제로 소설을 쓰려 해도 사랑은 스물스물 피어난다. 누구와 누구는 썸을 타고 밀당을 하며, 그 사랑은 결국 전체 줄거리에 영향을 미친다. 미칠 일이다. 선배 작가인 어머니에게 물어본 적 있다.

"사랑이 뭐? 지겹지도 않나요? 왜 아직도 다들 사랑 타령이야? 사랑 말고는 정말 쓸 게 없나요?"

"문학이 생기고 3천년동안 울궈 먹은 주제야. 그게 어디 쉽게 끝나겠니?"


이런 유사한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템플스테이에서 뵙게 된 해인사의 스님에게 물었다.

"저는 샤머니즘 안 믿는데요.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아요."

"글쎄, 인간들이 수천 년 동안 믿어왔다면 뭔가 있는 게 아닐까?"


그렇다. 천 년의 세월을 이겨낸 것은 그게 무엇이든 무의미하지 않다. 인간의 사랑에는 뭔가 있다.  


플라톤의 대화편 <향연>에는 사랑에 대한 다양한 고찰이 소개돼 있다. 파이드로스는 사랑이 용기를 부여해 영웅적 행위를 할 수 있게 한다 말했고, 파우사니아스는 사랑을 지식과 덕을 공유하는 '우라니아의 사랑'과 육체적 욕망에 기반하는 '판데모스의 사랑'으로 구분했다. 아가톤은 아름답고 젊으며 영원히 새로운 것이 사랑이고 사랑이 어떻게 사람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드는지 설명한다. 등등. -이쯤되면 사랑에 대해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기원전 400년에 작성된 <향연>에서 이미 다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중 아리스토파네스의 이야기는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는 인간이 원래 각각 네 개의 팔과 다리, 두개의 얼굴을 가진 존재였다고 설명한다. 즉 지금의 인간 2명을 붙여놓은 것 같이 생겼다는 것인데 당연히 성별이 3종류였다. 남-남성, 남-여성, 여-여성. 상상이 되나? 머리가 두 개니 지금보다 2배 이상 영리하고, 팔 다리가 많아서 힘도 엄청 셌다. 그러다보니 교만해지고 신을 우습게 보고 까불다가 제우스의 분노를 샀다. 

제우스는 번개로 교만한 인간들을 모두 두 개로 쪼개버렸는데 그 결과 지금의 인간 형태로 변한 것이다. 

자,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원래 한몸이었던 인간이 둘로 쪼개졌으니 남은 평생을 갈라진 반쪽을 찾아 헤매는데, 어쩌다 그 반쪽을 찾으면 환희 속에서 오직 사랑에만 골몰 하느라 신에게 대들 생각을 못한다는 것이다. 제우스로서는 아주 흡족한 결과이다. 


개인적으로 아리스토파네스가 맞다고 생각한다. 이 정도는 돼야 사랑에 미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 우리는 아직까지도 사랑을 잃어버린 반쪽을 찾는 과정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그녀는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매력적이었으며 보통 사람들과는 너무나 달라 보였다. 그래서 그는 그녀의 구두가 딱딱거리면서 돌길 위를 걸을 때 왜 아무도 자기처럼 정신을 잃지 않는지, 그녀의 베일에서 나오는 숨소리에 왜 아무도 가슴 설레하지 않는지, 그녀의 땋은 머리가 바람에 휘날리거나 그녀의 손이 공중으로 날아오를 때, 혹은 황금 같은 미소를 지을 때에도 왜 모든 사람이 사랑에 미치지 않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르케스가 쓴 이 글귀는 사랑에 빠져본 사람만 이해할 수 있다. 

사랑은 끝났어도 정말 사랑했던 순간은 잊혀지지 않는다. 음악이든 뭐든 그 시간을 환기하는 촉매만 있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순식간에 그때 그 감정으로 돌아간다. 마법 같은 일이다. 미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Though lovers be lost love shall not;  (사랑하는 이들이 죽어도 사랑은 그렇지 않다)

And death shall have no dominion.  (죽음은 결코 사랑을 지배하지 못한다)


딜런 토마스가 썼듯이 죽어서도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그만큼 인간의 사랑은 치명적이다. 말 그대로 치명적, 때문에 사랑은 나머지 모든 것을 망치기도 한다. 사랑 때문에 인생 망친 사례들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괜찮을 듯 싶다. 많이들 그러지 않나? 

문제는 인생에는 사랑 말고도 챙겨야 할 게 너무 많다는 사실이다. 사랑이 밥 먹여 주냐? 맞는 말이다. 돈 많은 연인을 사귀지 않고서야 사랑 자체가 생존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인간의 뇌는 어떠한 순간에도 생존을 최우선시하게 설계돼 있다. 기쁘고 슬프고 화내는 감정도 방향은 정확히 하나의 목적을 가리키고 있다. 생존! 그러나 사랑은 이상하다. 사랑 때문에 스스로를 파괴하고 죽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 이 감정은 좀 문제가 있다. 정상적인 인간의 감정이 아닌 것 같다. 


"그대는 나아가시오. 나는 한 걸음 물러나니."


<미스터 션샤인>의 미해병대 대위 유진 초이(이병헌)는 자신을 버린 고국에 돌아와 애국하는 마음은 1도 없으면서 오직 사랑하는 한 여인을 위해 온갖 애국적인 일을 다하다가 목숨까지 버린다.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그럴 듯하다. 나라도 저런 처지라면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 아니라고?

좋다. 만약 현실에는 사랑 때문에 목숨까지 희생하는 일이 없다면 다행일 것 같다. 그게 논리적으로 맞다. 


당신은 사랑 때문에 인생의 중요한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박수 쳐주고 싶다. 진심이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어이없을 정도로 유동적이어서 편의점 우유만도 못하다. 게다가 사랑의 감정을 다 쓰고 나면 밀린 카드빚처럼 엄청난 후회와 수치심이 돌아온다. 


사랑은 제우스가 그랬듯이 신이 인간을 망하게 할 목적으로 끼워 넣은 환각제이며 시한폭탄이다. 나도 그리 생각한다. 그러니 아직 사랑에 발목 잡히지 않았다면 멀찌감치 도망가라. 혹시 사랑의 불씨를 품었다면 절대 터지지 않게 매사 조심하기 바란다. 먼저 사랑하지 말고 더 많이 사랑하지 말고 스치는 감정으로 지나가게 내버려 둬라. 그러면 당신은 인생의 승리자로 남을 수 있을 것이다. 

사랑에 빠지는 못하겠지만. 사랑 뭐 그딴 게 그리 중요하나?      

 

곱씹어 생각해 봐도 사랑은 미친 짓이다. 그러나 미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