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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정 Sep 18.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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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은 나의 야심을 못 견뎌했다



“거기서 뭐하고 있어?”

그의 물음에 책장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아서 C,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을 읽던 중이었다. 오버로드의 정체가 묘사되는 결정적 장면이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자다가 왜 지금 깬 거야. 내가 옆에 없는 줄도 모른 채 5시간 동안 깨지도 않고 쿨쿨 자놓고.’  


그는 내가 무얼 하는지 몰라서 물은 게 아니었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섹스가 끝나면 금방 잠이 들어버리는 그와는 달리, 상대방이 먼저 잠들어 버리면 나는 잠들지 못했다. 밤새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진 남자 곁을 지키고 잠결에 뒤척이다 잠깐 안아주는 것으로 그의 애정을 확인하며 안도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손을 꽉 붙잡고 잠든 그의 손아귀에서 조심스럽게 빠져나와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책을 읽고 있곤 했다. 


“잠이 안 와? 안 피곤해?”

“응. 괜찮아. 더 자.”


그에게 내가 잠들 때까지 버텨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었다. 그건 내 문제였으니까, 그가 피곤을 무릅쓰고 나를 먼저 재우려고 애쓰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서운하지 않았다. 바란 적도 없었다. 이미 그런 노력을 했던 사람들도 죄다 실패하고 말았으니까. 애써서 해결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다시 자려고 등을 돌리고 누운 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가끔 섬뜩한 거 알아? 나는 자고 있는데 누군가 잠든 내 곁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거.”

“섬뜩하다고?”

“표현이 너무 과했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아.”


너를 보고 있는 게 아니야. 너의 잠든 모습 따위 궁금하지도 않아. 잠든 모습마저 나의 시선을 빼앗을 만큼 자신이 내게 대단한 존재라고 믿고 있는 것일까? 코를 드르렁 골고, 미간을 찌푸리며 잠든, 방심해서 못난 표정이 드러나고, 허벅지를 벅벅 긁어대는 거 내게는 결코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나는 인간의 아름다움만 보려고 애쓰는 필터가 장착되어 있다구!


자신의 사정감을 참지 못해 내 몸을 이용하는 듯 교감이랄 게 하나도 없었던 서툴고 성급한 섹스를 해놓고 내가 지쳐 잠들길 바란다는 게 우스웠다. 그에 대한 애정으로 내가 견디고 있는 무료함에 대한 대가가 이런 것이었다. 


“유난스러워. 그렇게까지 읽거나 쓸 만큼 대단한 걸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의 말이 틀리진 않았다.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 오히려 이 일을 시작하고부터 끊임없이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을 훨씬 더, 자주, 많이 느끼고 있었다. 쓰면서 사는 삶이란 그리 행복한 것도, 엄청난 성취를 느낄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내가 그 사실을 자각하고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남자들은 나의 야심을 못 견뎌했다. 청춘이라고 불리는 20대가 지난 뒤 현실과 타협해 꿈 없이 늙어가는 자신과 늙어가면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내 마음의 요동침 같은 걸 질투했다. 자신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그렇기에 날 비난하는 게 가장 쉬운 일이었다. 은밀히 내 실패를 바랐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자신의 침대에 갇혀있길 바랐지만, 거친 섹스가 끝나고 그들이 잠들고 나면 난 약간의 불빛에 의지해 책을 읽거나 글을 썼다. 그들은 자다 깨서 그런 나를 발견하면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걱정이라는 형태로 말을 건네지만 내가 쓰는 것들이 자신을 겨냥할까봐 두려워한다는 것이 느껴졌다. 남자의 무능을 탓할 수도 있는 것이 내가 쓰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내 욕망은 자신이 필요할 때는 분출되길 바랐다. 그런 남자들 곁에서, 그런 남자들을 사랑했던 대가로 나는 나만의 시간을 갖고 내 방식대로 쓰기 위해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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